339화
재정비
달도 구름에 가려져 빛이 희미한 한 밤중이었다.
본래라면 문득 배고파진 배를 움켜쥐면서 사냥에 나섰을 오우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명백하게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었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검푸르게 빛나고 있는 듯한 수풀과 나무들 뿐이었다.
주변 광경만으로는 분명히 그에게 위협을 주는 것은 무엇도 없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우거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오우거의 태도는 틀리지 않았다.
쉬익-!
날카로운 물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에 오우거는 '왼발'을 움직이겠다는 생각으로 '오른팔'을 움직였다.
퍽-!
"크르윽?!"
팔의 단단한 근육과 뼈로 날아들던 도끼가 막혔지만 오우거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의도와는 다른 움직임에 당황한 그는 이번에는 '오른발'을 움직이려했지만 정작 움직인 것은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것이었다.
다시 왼발을 움직이려하니 이번에는 오른발이, 왼팔을 들어올리려하니 발가락이 구부러지는 등 오우거의 몸은 생각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우거가 그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그 때.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오우거의 적이 다시 움직였다.
쉬이익-
다시 바람을 가르고 그에게 도끼가 접근했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하나가 아닌 동시에 세개가 각각 그의 목과 가슴어림, 그리고 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의 오우거는 그저 몸을 허둥거리다가 모든 공격에 노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퍽-
목에 적중한 도끼에 의해서 목이 날아갔으며,
콰드득
가슴께부터 파고든 도끼에 의해서 몸통의 절반 이상이 잘렸고
콰직
다리마저도 도끼에 의해서 토막이 나버렸다.
오우거가 죽자 어느틈에 낀건지 모를 안개 속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살짝 검은색이 감도는 어딘가 불길해보이는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것은 검은 피부의 고블린, 루프스였다.
"이정도인가"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오우거의 시체를 보면서 짤막하니 감상을 내뱉었다.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는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뱉은 그는 다시 숲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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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을 매꾸기 위해서 루프스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몬스터들을 찾아헤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역시라고 해야할지 군락지에는 무수한 몬스터들이 있었고, 그의 연습 상대가 되어줄만한 몬스터와 실전 상대가 되어줄만한 몬스터의 수는 충분했다.
루프스는 능력을 여러모로 이용하면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사용해보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어떤 때는 감각을 교란시키는 것 만으로 적을 상대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온전한 분신으로 상대를 해본다거나, 혹은 섞어보기도 하며, 온전치 못한 일부분만 형성된 분신으로 상대하기도 해보았다.
다수의 상대를 서로 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해보았으며, 그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가짜 도끼만을 이용해서 상대해보기도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자신의 능력을 다루는 감각을 조금씩 일깨워갔다. 권역을 펼치는 순간 그가 소모하는 힘은 대부분 권역을 생성하고 유지하는데 들어간다. 대신에 권역은 그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며, 그 때 뿐이지만 그의 능력을 다루는데 필요한 힘도 그 소모량도 극도로 줄여준다.
즉, 그가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본래 그가 한계라고 느끼고 있는 벽을 일순간이나마 뚫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루프스는 조금이라도 더 힘을 잘 다루기 위해서 계속해서 훈련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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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가 훈련을 하는 한편 고블린들은 그 동안 요새의 재건을 서둘렀다. 현재로서는 루프스와 프리트의 판단으로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말 할 수 있었지만, 한없이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언젠가는 다시 드란이 이끈다는 식귀들에 의한 침공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요새를 재건하는 한편 주변에 어그러져있는 함정들을 다시 뜯어고치고, 지하는 다시 이용해먹기도 어렵게 다시 개편해나갔다.
식귀들을 처들어올 때를 대비한 함정들은 대부분이 알람을 울려주는 함정들이었다. 고블린들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함정들 대부분이 놈들에게 그리 소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하로 빠트리는 구덩이 함정은 굴을 뚫어서 빠져나와 버리고, 통나무로 기습을 가하는 함정의 경우는 그저 피해 자체를 별로 입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화살 함정에도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기에 놈들의 출현을 놓치지 않기 위한 함정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하의 경우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요새의 지하는 거대한 공동으로 이루어져있다. 거대한 공동에는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를 견디기 위한 기둥과 식귀들이 나타났던 통로, 그리고 자욱하게 퍼져있는 독연과 독안개로 이루어진 장소였다. 그야말로 지하고 처들어오는걸 막기 위해서 고블린들 스스로가 거대한 공동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허나 이번에야말로 다시 처들어오는 식귀들이 없도록 다시 지하 전체를 뒤바꾸고 있었다. 독연과 독안개는 여전히 자욱하니 퍼져있었지만, 지하로 파고들어간 스콘드는 이미 그에 대한 해독약을 복용해 두었다. 애초에 지하에 뿌려둔 것은 몸을 마비시키고 천천히 죽어가게 만드는 따지고 본다면 고블린들이 지니고 있는 독 중에서는 그리 강한 독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곳으로 들어오는 이성이 없는 식귀들은 하나같이 공중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상처를 입게 될것이며, 주변에 퍼져있는 독 안개는 상처입은 놈들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 더욱 효과를 보도록 장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당연히 고블린들은 이에 대한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고, 그게 스콘드가 태연하게 지하로 들어 설 수 있는 이유였다.
지하로 들어선 스콘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가루를 주변으로 흩뿌리는 일이엇다. 제법 양이 되었던 듯 한참을 주변으로 뿌렸더니 전체에 비해선 그리 많은 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하 전체의 독 안개를 더욱 자욱하게 만들어냈다.
그렇게 지형을 살짝 뒤바꾼 그는 하나씩 지하 공동으로 그가 만들어낸 시체들을 불러냈다. 살아있긴 했으나 죽은것과 마찬가지의 시체들을 모조리 바깥으로 꺼내면서 텅 비었던 지하 공동이 그의 시체들로 가득 들어차게 바뀌었다.
그 중 절반은 땅으로 한차례 파고들어갔으며, 또 남은 시체들 중 절반은 벽을 파고들어 몸을 숨겼다. 그리고 또 남은 이들 중 일부가 기어올라가 식귀들이 만들어놓은 통로 주변으로 잠복했다.
그렇게 남은 시체들은 최초 들어찼던 것에 비해서 대략 10분지 1에 달하는 숫자만이 공동에 남아있었다.
스콘드는 그들을 벽이 아닌 중앙 부근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만일 침입자가 나타난다면 그들을 죽이도록 지시를 내렸다.
독으로 가득찬 지하 공동. 그리고 이곳으로 도착하자마자 잠복해있는 그의 시체들로 밀어내도록 만들어진 통로. 그렇게 떨어진 이들이 상처입고 독에 중독되어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사이 그 목숨을 끊게 하기 위해서 스콘드의 시체들은 이곳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거기에 시체들 사이로 드문드문 섞여있는 각종 독으로 버무려낸 자폭용 시체까지, 그야말로 다음에 식귀들이 처들어오면 그대로 끝장을 내주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배치였다.
작업이 얼추 끝나자 스콘드는 지하 공동을 한번 스윽 훑어본 뒤 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기어 올라 다시 요새로 귀환했다.
그가 사라진 지하에는 스콘드가 뿌려놓은 시체들이 미동도 없이 그저 적이 나타나리라는 통로만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