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재정비
"흐으읍!"
잠에서 깨어난 루프스는 뻑적지근한 몸을 풀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나무에 기대서 잤더니 몸의 근육이 뭉친듯 육체적으로는 영 개운치 못했지만,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상대로라고 해야할지 엘라는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로 그의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솨아아아-
청량한 바람이 나무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온 몸으로 나무를 한번씩 쓸어내고 온 바람을 맞은 루프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옛날에 대부분의 일에 그가 직접 관여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대부분 다른 부하들에게 다양한 작업들이 분산되어 있다.
고블린들을 훈련시키는 역할은 파인피가 전담하고 있으며, 그를 마인이나 그룬, 라둔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훈련 뿐만이 아닌, 고블린의 아기가 태어나고 이후 그들이 부족의 병사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그 기초부터 일정 이상의 성장을 맡고 있기도 한다.
프리트는 대부분의 생산품들의 현황과 만들어진 재고품들의 이용처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상당히 방대한 자료들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의 경우는 시에란과 레레가 보조로서 도와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콘드는 부족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연구 내용들을 총괄하고 있었다. 독에대한 연구는 물론, 군락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정확히는 위급시에 보다 강한 몬스터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연구들이었다. 스콘드의 경우는 드물게나마 티토의 보조를 받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밑으로 여러 부하들이 달라붙어서 작업을 처리해나가고 있는게 현재 부족의 현황이었다.
이 중에서 루프스가 하는 일이라고는 각 도시로부터 받는 보고를 확인하는 것과, 셋이 반드시 루프스의 의견이 필요하다 판단되는 건에 대한 의사결정권 정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지금으로서는 대부분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며, 인간들의 성에 처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대부분 정리가 끝난 일들이었다. 그 동안 쌓인 일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재건에 바쁜 지금 그의 결정이 필요한 중요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지금이야말로 간만에 훈련을 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걱정되는게 있다면 엘라가 얼마나 마음을 다잡았는가 하는 점이었지만, 말로라도 한차례 풀어낸것이 그녀의 응어리를 풀어 냈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도 루프스는 이번에 쿠알론과의 싸움으로 전투적 측면에서 여러모로 깨달을 수 있는게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차례 축복을 받은뒤 제대로 사용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권역을 이용하는게 많이 서툴렀다.
전력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기껏해야 상대의 감각을 교란하고 물리력을 지닌 무기로 상대방을 노린것이 그가 했던 모두였다.
얼떨결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었을 뿐, 본래라면 그렇게까지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심한 루프스는 군락지를 향했다.
///
수풀과 나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한적하고 고요한 공간에 느닷없이 병장기가 부딪치는듯 날카로운 소음이 울ㄴ녀퍼지기 시작했다.
캉- 카강- 캉- 챙!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히고 있는 소리가 퍼져나갔지만 소리의 진원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보면 의아해할만한 광경이었지만 그 원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와 수풀로 이루어진 배경이 아지랑이로 보듯이 흔들거리더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안개가 출현했다.
출렁이면서 영역이 넓어졌다 줄었다 하던 안개는 그 색마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검었던 안개의 색이 붉게 변하더니 하얗게 변하는둥 다채롭게 변했다.
"구오오오오오!"
안개속에서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곧 거체가 쓰러지는듯한 소리가 울렸다.
스스스스
소리에 맞춰서 주변으로 퍼져있던 안개가 점점 사라지더니 그곳에 감춰져있던 실상을 보여주었다.
"푸후우"
우두의 괴물들 미노타우로스 다수가 쓰러진 장소에는 온몸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고블린이 있었다.
권역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수련을 거듭하던 루프스가 마침 나타난 미노타우로스 무리와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싸움을 걸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쓰러져있는 미노타우로스들과 지쳐보이지만 멀쩡히 두 발로 서 있는 루프스의 모습이 알려주고 있었다.
단지 지쳐있을 뿐이고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 압도적으로 이겼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루프스는 조금도 만족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불만족스러운듯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으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루프스는 이내 혀를 차더니 자리를 옮겨갔다.
"생각보다 어렵군"
권역을 여러가지로 이용해보던 루프스는 생각보다도 까다롭게 작용한 덕분에 그걸 다루는 방식이 여간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처음에 비교해서는 여러모로 나아져서 권역을 이용해서 몸을 숨긴다거나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를 숨기는게 가능해지긴 했다.
"몸을 숨기는건 물론 이전부터 할 수 있던 거지만, 장소를 은페하는건 그렇지도 않지"
그의 힘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장소채로 은편하는것도 가능했다.
개인이 아닌 장소를 온전히 은폐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한계가 분명했다. 온전히 감출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통제가 풀리는 순간 급속도로 가려져있던 공간이 드러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게다가...'
루프스는 권역의 안에서 치러지던 전투를 떠올렸다. 나름 미노타우로스 중에서도 실력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었는지 그들의 대장은 유일급이었으며 그 부하들도 그보다 한단계 낮은 정도였다.
제법 강력한 전력이었고 루프스가 아닌 다른 부하들이었다면 홀로 대적했다가는 절대 이기지 못 할 전력이었다.
다만 루프스에게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딜이었다. 그것도 굳이 권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루프스가 불만족스러워 하는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적들을 권역까지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권역은 확실히 제 힘을 발휘했다.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다른 위치에 있는 루프스의 모습을 보게 만들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감각을 혼재 시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권역의 힘은 어떤 미노타우로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같은편을 공격하고 몸을 가누지 못해 루프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두가지 힘이 상호작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가지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더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루프스는 판단했다.
아군을 공격하게 만들고 감각을 혼재시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만든것은 좋았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끼리 죽고 죽이게 만들었더니 서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면서 살아남는 경우가 있었다.
그걸 조절하려던 루프스의 실수에 의해서 정말 쓸데없이 홀로 떨어져있던 놈만 발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둥의 실수가 여전히 연발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신히 어떻게든 놈들을 해치웠을 때는 그냥 싸우는것 보다 시간이 걸린 뒤였다.
당시를 떠올린 루프스는 찡그려지는 표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추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던 전투는 그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누구도 그 전투를 목격한 자가 없다는데 안더할 정도였다.
"후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현 상황에 루프스는 저도 모르게 속에서 부터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