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재정비
기절했던 루프스는 요새에 도착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여기는..."
여전히 살짝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이곳이 그가 잘 알고 있는 요새의 한 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으음... 거기서 너무 무리를 했었나 보군"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에 기절하듯이 쓰러졌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사이 프리트나 파인피가 자신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측 할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어느정도 정신을 차려갈 무렵, 그가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덜컥-
"오- 깨어나셨군요"
"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프리트였다. 루프스가 깨어난 모습에 반색을 하면서 다가온 그는 방금 깨어난 그와 대화를 하면서 중요한 전달사항들을 이야기했다.
"흐음..."
예상과 달리 트레이는 요새쪽으로 나타났으며, 몇가지 정보를 넘겨주고는 스스로 죽기를 바랐다는 대목에서는 루프스에게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리게 만들었다.
루프스는 그가 깨어난 방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어서 설마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다만 시선을 창문의 바깥으로 돌리니 확실히 여기저기 패이고 무너져내린 전투의 흔적들이 보였다.
게다가 트레이에 대한 것은 그도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부족을 뛰쳐나갔다거나 어쩌면 적이 될수도 있다는둥, 그와 싸울 각오를 굳혔다는둥 이러니 저리니 해도 그는 루프스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 중에서는 최초로 목숨을 잃는자가 나타났으니, 루프스는 착잡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가... 녀석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셈인가..."
트레이가 원한 죽음이고, 결과적으로 그의 적이 죽은 셈이지만 그는 조금도 긍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이런데, 그들에 대한 감정이 더 큰 엘라가 이 소식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엘라는 어떻지?"
"으음... 그것이..."
프리트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그녀가 어떨지 짐작 할 수 있었다.
"후우... 그럼 드란에 대해서는 어떤가?"
루프스는 트레이가 넘겨준 최초부터 드란이 이상했었다는 절보를 들은 프리트가 그저 가만히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프리트는 그에 대해서 여러모로 조사해본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알아보기 시작한지 아직 하루도 넘기지 않은 지금 제대로된 정보가 있을리가 없었다.
"아직 정확한것은 없다는 이야기로군. 그리고... 어쩌면 트레이 녀석이 잘못 알고 있거나, 녀석의 마지막을 들은 입장에서는 그럴리 없다고 생각한다만은... 잘못된 정보를 넘긴걸수도 있겠군"
"아직 정확한건 아무것도 없으니, 가능성으로서 배제할수는 없지요"
프리트의 대답에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는 창문의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면서 프리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잠시 혼자있고 싶군"
"그럼, 나중에"
루프스에게 고개를 숙인 프리트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홀로 방에 남은 루프스는 가만히 사색에 잠겼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그는 쿠알론과 싸우고 있었다. 비록 도주했다지만, 그의 손에 의해서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가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돌아온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트레이의 사망과, 그가 전해준 드란에 대한 정보였다.
그저 일어난 것만으로도 신경쓰이는 일이면서, 그들 셋은 모두 루프스의 아들들이었다. 자식들에게 무심한 편이고,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도 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였다.
그러나 막상 닥쳐오면서 드러난것은 그가 은근히 그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쿠알론이 결국 살아서 후퇴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트레이의 죽음에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이 막상 겪어보고 나서야 내심으로도 이해한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헤지고 무너진 자리는 고블린들과 이곳에 살던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조금씩 복구되고 있었다.
분명한 피해를 입은 것이고,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트레이였지만 그는 어쩐지 그를 조금도 탓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녀석들이 부족을 떠나지 않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 그를 더욱 한숨짓게 만들었다. 어쩌면 무심하지 않고, 자상한 아버지로서 대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그를 향해 덮쳐온 것이다.
그의 감정만큼이나 먹먹한 한숨을 내뱉은 그는 다시 침상위로 몸을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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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감정들이 혼재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하던 루프스는 하루정도의 시간을 가지고는 다시 바깥으로 나섰다. 어찌되었든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죽은 트레이와 다른 자식들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무너져내린 요새를 다시 복구해야하며, 함정을 파놓았던 지하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도 파악을 해둬야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족장으로서 부족원들의 생활을 보장해줘야하는 입장이었다.
바깥으로 나선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스콘드였다.
"족장"
나타난 그를 보면서 잠시 어정쩡하게 굳었던 스콘드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에게 다가왔다.
"그... 죄송합니다"
그에게 다가와 우물쭈물하던 스콘드가 그에게 한 말은 사과였다. 아마 그 스스로 루프스의 자식인 트레이를 죽인 일이 마음에 걸리는듯했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애초부터 그리 될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으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루프스는 스콘드에게 적의 침공을 잘 막아냈다는 의미로 상을 주면 상을 주었지, 그를 책할 마음은 없었다.
"그보다 요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게다가 루프스에게는 요새의 재건이라는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스콘드에게 가장 먼저 수복중인 장소와, 완료까지 예상되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놈들이 지하로 침입하지 않는듯 합니다"
이동하면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다름아닌 새롭게 지하로 침투하는 식귀들의 존재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이미 앞서 그에 대해서 떠올렸던 스콘드가 독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 시체들을 이용해서 한차례 살펴보고 온 바 있었다.
"그런가"
쿠알론은 도주했지만 그의 적아릔 가리지 않던 전투를 떠올리면 쿠알론의 손에 목숨을 잃은 식귀들이 다수였다. 앞서 해치운 놈들까지 생각하면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으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루프스는 스콘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안전하다고 말 할 수 없겠지만, 일단 확인된바에 의하면 현재로서는 안전한 편이라는 이야기였다.
비교적 안전이 확보된 지금이기에 루프스는 놈들이 처들어오기 전까지, 혹은 그가 처들어가기 전까지 재정비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이번에 벌어졌던 여러 일들로 그들 부족 내부적으로 여러모로 지쳐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둘은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보니 인간들이 그 사이 놈들에게 재침공 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는지요?"
요새의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움직이던 도중 루프스는 스콘드가 꺼내는 화제에 관심이 기울어졌다.
무엇보다도 이제 깨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 그와 관련된 보고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듣지 못했군. 자세히 한번 이야기 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