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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32화 (332/374)

332화

공세

예상치 못한 쿠알론의 도주로 전투가 허무하게 끝마무리되었다. 멀리서 고블린들의 피난을 돕고 있던 프리트도, 농도가 심했던 권역의 바깥에서 루프스와 함께 쿠알론을 노리던 파인피도, 무엇보다 직접 그를 상대하던 루프스에게 매우 허탈한 일이었다.

거기에 루프스는 이번에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 전력을 끌어올렸었다. 그의 권역은 상대를 더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그가 사용하는 분신 무기들의 위력도 기존보다 상승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다 윗줄에 있는 적을 상대하는게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지금 단계로 올라선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가 지닌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일정치만을 보여주며 이게 한계라는 것 처럼 위장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강하고 현란하게 힘을 사용 할 수 있었고, 진작부터 사용했다면 어쩌면 그가 도주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코 앞에서 쿠알론이 쓰러지니, 곧장 끝내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난 루프스가 상대의 움직임이 조금도 파악되지 않게 먼지를 피워올리면서 그를 내리쳤었다. 그 덕분에 루프스가 쿠알론에게 중상을 입힐 수는 있었지만, 동시에 그가 탈출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현재로서 낼 수 있는 전력을 다해 쿠알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는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허무하게 그를 놓치자 피로와 허탈감에 루프스는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편에 속하는 프리트가 그를 비롯한 고블린들을 챙기고, 그들은 황폐해진 성을 뒤로하고 떠났던 요새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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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가 르윅 성으로 향했다가 곤욕을 치루고 돌아갈 무렵. 왕국과 식귀들의 싸움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한차례는 식귀들이 이용했던 지하통로를 역으로 거슬러서 올라가기도 했었지만,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통로 때문에 앞뒤로 덮쳐지면서 한차례 위기를 겪고는 일단 후퇴를 결정했다.

그 후로 세개의 구덩이에서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식귀들을 막아내면서 다시 처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식귀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죽여도 죽여도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놈들의 본거지로 처들어가서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이유였다. 다만 너무 일직선으로 가다가는 언제 다시 양쪽에서 덮쳐오는 공격에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점이 그들로 하여금 여러모로 준비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지하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놈들이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면 퇴로가 차단 당할수 있는 지하보다는 탁 트여있는 지상이 훨씬 그들을 상대하는데 수월하기 때문이며,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퇴각하는데도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프스들이 퇴각하던 그 시기. 일단의 무리가 준비를 끝마치고 하나의 구덩이 앞으로 모여들었다.

"준비는 끝났나?"

우람한 체구의 한 노인이 주변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도망칠 일은 없을 겁니다"

뿌득

그의 물음에 호리호리한 몸의 장년쯤 되어보이는 이가 이를 갈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만전의 준비를 했다며 그에게 자신감을 내보였다.

지하통로가 있는 구덩이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이들은 모두 바로 얼마전에 통로를 이용해 공격을 들어갔다가 실패를 겪고 후퇴해온 이들이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구덩이에서 튀어나오는 식귀들을 막아내고 있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구덩이 속으로 원정을 떠나는 이들과 그 이후 구덩이에서 튀어나올 식귀들을 담당할 이들 뿐이었다.

한차례 구덩이로 들어간 전적이 있는 이들만으로 이번에 다시 식귀들을 공격하려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이미 한차례 앞서 겪고 나온 이들이 들어가는 것이 경험적인 측면에서 유리할거라는게 그 첫번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처들어갔던 인물들 하나하나가 정예 중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뿐이었다. 누구 하나 잃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기에 만일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후퇴를 장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식귀들이 상대이기에 어지간한 실력이 없으면 그조차도 어려우니 실력자들만이 앞서 뽑혔었으며, 그런 만큼 다시 들어가는 이들의 구성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는게 두번째였다.

그렇게 사전 준비를 끝마친 그들은 눈 앞에 놓인 구덩이를 기점으로 식귀들에 대한 공격을 다시 한번 개시했다.

///

자박 자박

발 밑으로 자잘한 흙과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단방향으로 뚫려있는 지하에서 은은하게 울렸다.

발걸음의 주인인 인간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특히나 한번 지나간 길에 다시 놈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간간히 나타나는 식귀들을 잡아내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의 발걸음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나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갈림길인가..."

"얼마전에 왔을 때는 여기에 갈림길 같은건 없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

"그럼 새롭게 생겨난지 얼마 안된 갈림길이라는 거겠군"

지하통로는 최초에는 간단하게 일직선으로 쭉 뚫려있을 뿐이지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는 완전히 미로와 같이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미로로 변하는 가장 첫번째 지점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후우... 고민해봐야 어느 구멍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길이 있나, 그렇다면 우리가 이전에 겪은적 있는 쪽으로 가는게 그나마 낳지 않겠나?"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이전에 향했던 길이 어디일지를 알아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뚫려있던 구명에 옆으로 뚫려버리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쪽이 그들이 이전에 그들이지나갔던 통로라는걸 알 수 있었다.

결정이 내려지자 누구하나 망설이는 이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하지만 이전에 향했던 방향으로 향하려한다고 해도, 모든 갈림길이 앞선 갈림길처럼 알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있어 방향감각을 어그러트리기까지 하니 결국 그들이 최초 들어섰던 길과 다른 곳으로 향하더라도 그리 이상할것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를 찾게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무슨 끔찍한...!"

노인은 그렇지 않아도 우락부락한 팔뚝에 한껏 힘줄을 드러내면서 격노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식귀들이 지니고 있는 나름 핵심이 되는 장소로 이끌어주었다.

그렇지만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에겐 끔찍하다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눈 앞에는 식귀들 혹은 그 이전 고블린들이 마을에서 납치했던 이들인지, 인간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으며 바닥은 피로 낭자해 있었다. 어떤 시체 하나 멀쩡하지 못한 그 모습은 보기만해도 끔찍했다.

적어도 어디 한군데는 베어먹힌 흔적이 있거나, 팔다리가 뜯겨나간 흔적, 그리고 그 뜯겨나간 팔다리로 보이는 것들을 그 곳에 있는 식귀들이 덜렁덜렁 들고다니고 있었다.

보는것만으로 구역질이 치솟는 광경이었고, 그런 만큼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몇가지 특징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과,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이들 누구 하나 살릴 수 없는 죽은 시체라는 것이 그들이 일단 못 움직이도록 막아섰다.

그나마 국경에 머물면서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참혹한 광경을 보아왔던 그들이기에 무작정 앞으로 나서지 않고 간신히 지켜보기만 하는게 가능 할 뿐이다.

다만 이런 광경을 오래도록 보고싶어하는 이들은 없으니, 그들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이 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으려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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