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공세
루프스는 한층 아래로 추락했다. 쿠알론의 능력 때문에 얇아진 바닥이 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루프스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찬가지로 바닥에 돋아난 가시를 피하던 파인피도 마찬가지로 한층 아래로 떨어졌다.
타- 닷-
다행히 단순히 한층 밑으로 떨어진 것 뿐이기에 둘은 별다른 피해없이 바닥에 내려설수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둘을 쫓아 쿠알론 또한 한층 밑에 도착했다.
층을 벗어나면서 퍼트렸던 독무는 소용이 없어졌지만, 루프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권역은 아직 유효했다. 루프스의 권역은 같은 편인 파인피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검은 안개 속을 대낮처럼 환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적으로 규정지어진 쿠알론은 이곳에서 수시로 방해를 받는다. 검은 안개와 같은 권역의 영역에서 그는 한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청각과 후각에 혼선을 빚어낸다. 오감중 하나가 봉인되고 두개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이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쿠알론은 비정상적인 방식이지만 루프스보다 한단계 위라는 점이다. 처음 마주할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던게 사실이지만, 전투를 이어가면 갈수록 쿠알론의 상상 이상의 힘이라거나, 그의 능력에 영향을 매우 적게 받는 모습을 볼때마다 루프스는 그가 자신보다 한단계 높다고 판단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한 요행 때문인지 그가 제대로된 힘을 발휘하는게 힘들다는 점이다. 당장 루프스가 펼친 권역에 자신의 권역을 펼쳐서 맞불을 놓지 않는것만 보아도 그건 분명하다.
게다가 루프스의 권역이 그에게 영향을 주는 것 만큼은 분명했다. 열번의 공격중 다섯에서 여섯번은 빗나가거나 전혀 엉뚱한 곳을 공격하는 모습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여섯번 엉뚱한 공격을 한다는 이야기는 네다섯번은 정확히 루프스와 파인피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쿠알론이 루프스의 권역을 어느정도는 저항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확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으니 조금도 방심하고 있을 틈이라고는 없는게 당연했다.
루프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쿠알론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여전히 그의 눈 앞에 있는 쿠알론은 전체적으로는 루프스를 상대하면서 하나씩 촉수를 늘려가며 파인피도 신경써서 기습 할 수 없도록 방지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파인피도 굳이 기습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주의를 붇잡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파인피가 신경쓰이긴 하는지 그가 접근할때마다 공세가 살짝 늦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프스는 이 때 다시 한번 쿠알론의 의식을 흐트러뜨리기 위해서 안개 속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후웅-
둔탁한 무기가 허공을 가르면서 갑작스럽게 쿠알론의 옆구리 부근에서 튀어나왔다. 옆구리를 찍어오는 도끼의 모습을 보면서 쿠알론은 다급히 도끼의 표적인 옆구리를 단단하게 변형시켰다. 그렇게 변형된 옆구리는 이미 흙이니 돌이니하는 수준이 아닌 철이나 강철에 가까웠다.
까앙-! 스르륵
튀어나왔던 도끼는 그의 옆구리를 파고드는게 아닌 살짝 찌그러지게 만들고는 그대로 한줌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그대로 사라져갔다.
마치 녹아드는것처럼 사라진 도끼에 쿠알론은 이성없이 마구잡이로 루프스를 향해 공격하면서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히 사라졌을 도끼가 다시 반대쪽 옆구리쪽에서 나타난 것이다.
까앙-!
이번에도 다시 도끼가 노리는 부위를 단단하게 변형시키면서 도끼가 휘둘러진 장소를 향해 촉수를 휘둘렀지만, 그 무엇도 그의 촉수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다못해 그 자리에 있던 도끼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해괴한 상황에 그도 당황한듯 몸을 움찔 떨었고, 루프스와 파인피는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휘둘러지는 도끼와 찔러들어오는 창을 쿠알론은 최대한 피하려했지만, 결국 아무런 피해없이 피하는데는 실패했다.
촤악- 지지직-
단번에 끝내려는듯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루프스의 도끼는 어떻게든 피해냈지만, 뒤에서부터 찔러들어오는 파인피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 특유의 불에 타오르고 있는 창이 쿠알론을 찌르는데 성공했다.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유효타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했다.
키에에에엑-!
전혀 생각지도 못한 피해였기 때문일까, 그는 생각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워 했다. 깊게 파인 어깨를 감싸쥐면서 괴성을 질러대더니 연달아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충분히 거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쿠알론이었지만, 한발 한발 구를때마다 생겨나는 충격은 단순한 발구름으로 생겨날만한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발구름은 결코 그저 짜증나서 하는 분풀이가 아니었다.
푸부부부부북
또 다시 좀 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면에서는 다시 가시가 치솟아 올라왔고, 또 다시 가시를 피해낸 루프스와 파인피는 다시 한층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이번에는 이리 될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만큼 떨어지면서도 둘은 쿠알론을 상대할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지상까지 내려간다면, 쿠알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특성상 더더욱 까다로워질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후의 전투는 둘의 바람과는 다르게 쿠알론을 공격하면 그는 능력을 이용했고, 자연스레 약해진 발판은 둘을 한층 아래로 끌어내렸다.
게다가 설령 떨어지지 않으려 버텨보아도 잠시의 시간을 벌 뿐이었다. 결국 바닥이 무너지면서 한층 밑으로 떨어져야만했다.
그리고 둘에게는 불행하게도 성은 그렇게 높지 않았고 총 네번 떨어지니 그들은 바로 근처에 있는 프리트를 볼 수 있었다.
"모두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라!"
프리트를 보자마자 루프스가 외쳤다. 프리트는 입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 식귀들을 상대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나타난 루프스의 명령에 당황했지만, 그의 지시를 따르려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살짝 늦은감이 있었다.
루프스의 외침을 듣고 어리둥절하던 고블린들이 쿠알론을 보고는 도주하려했지만, 그보다 쿠알론이 한발 더 빨랐다.
쿠웅-! 우르르르릉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힘들정도로 강력한 흔들림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크윽!"
루프스도 제대로 균형잡기 어려울정도로 격렬하게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물론이요, 쿠알론의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식귀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쿠과과과과과과-
그리고 지면의 흔들림은 단순한 전조현상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지면에서 무수한 송곳이 솟구치고 있었다.
성의 안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얇고 긴 가시라기 보다는 송곳이라는 인상이 더 강할정도였다.
솟아난 송곳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찔러댔다. 그 때문에 미처 이곳을 벗어날 틈도 없었던 고블린들 중 다수가 목숨을 잃었고,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식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애꿎은 희생만 늘리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희생이 늘어날수록 루프스의 탄식은 점점 깊어져만갔다.
다수의 고블린들과 대부분의 식귀들이 지금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미리 피할수만 있었다면, 혹은 그가 고블린들을 데리고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피할수 있었을것이다.
그 때문에 허무하게 잃어버린 고블린들이 너무나 아깝고 아쉽게 느껴졌다.
허나 눈앞에 적을두고 느긋하게 아쉬워할 시간은 없었다.
루프스는 지진을 잃으키고 가시를 만들어낸 쿠알론을 향해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