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326화 (326/374)

326화

공세

스콘드는 눈 앞에 쓰러진 식귀를 보면서 뒤쪽에서 싸우는 고블린들과 합류했다. 그렇지않아도 고블린들은 슬금슬금 늘어나는 식귀들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새롭게 파인 좁은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놈들도 처음 나타났던, 여전히 독에 중독되어 비실거리던 놈들과는 달리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사이로 드물지만 다른 식귀들과 한차원 다른 놈들도 섞여들고 있었다.

전체적인 전력은 아직까지는 고블린들 측이 우위였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에 맞추듯이 스콘드가 고블린들 측에 합류했다. 그 덕분에 점점 식귀들 측으로 쏠리기 시작하던 무게추가 다시 균형을 다잡고 빠르게 고블린들 측으로 쏠렸다.

이전처럼 바닥에서 튀어나오자마자 헤치우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순조롭게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식귀들을 잡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상대하는 고블린들도 체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력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스콘드가 그들의 틈을 시체들을 이용한 몸빵 덕택에 어거지로 매울 수 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식귀들을 상대했지만 다행히 앞서 나타났던 기괴한 형상의 식귀와 같은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구덩이에서 튀어나오는 식귀들을 상대하던 스콘드는 짐작컨데 그 놈은 눈 앞의 식귀들 사이에서도 이질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 상관도 없고, 변하는 것도 없다만은'

그는 적들을 상대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 이미 그의 손에 죽은 적을 굳이 생각해줄 필요는 없었으며, 놈과 같은 그만이 상대 할 수 있는 적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그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었지만, 다른 고블린들 덕택에 튀어나오는 식귀들은 순조롭게 물리쳤다.

그 뒤로는 거의 반복행동의 연속이었다. 헤치워도 헤치워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식귀들 때문에 고블린들도 슬슬 질려하는 듯 싶었지만, 그렇다고 손을 늦추지 않았다.

간혹 다른 식귀들을 통제하려는 식귀들이 나타났지만, 놈들에 대한 대응도 정해져 있었다.

한발 물러서서 대기하고 있던 최상급 고블린들이 앞장서서 놈들을 상대했다.

한편으로는 상상 이상으로 튀어나오는 식귀들의 모습에 고블린들도 스콘드도 슬쩍 질려하고 있었다. 지금 튀어나오는 놈들도 하나같이 지하에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된 전적이 있는 놈들이었다.

그 증거로 올라오는 놈들 대부분이 몸에서 은은한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만 지하에 퍼트렸던 독은 고블린들이 만들어낸 독. 당연히 그런 독을 겪고 나오는 식귀들이 독을 이용하거나 최소한 몸에 묻히고 나오리라 생각했기에 각자 미리 해독제를 복용하는 한편, 요새 전체에 해독물질을 퍼트려놓았었다.

어쨌든, 낙하의 충격과 독을 겪고 살아남은 놈들은 그들의 예상으로는 대략 전체의 십프로정도였다. 혹은 그보다 낮을것이라는게 지하를 파놓은 루프스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다루는 시체들을 이용해서 지하를 살펴보았던 스콘드는 그에 수긍 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수의 식귀들이 이곳으로 왔었는지 상당히 많은 수의 시체들이 그곳에 쌓여있었다. 지금까지 올라오는 이들은 그에 비한다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런데도 이정도라... 놈들의 숫자가 예상 이상으로 많은건가?"

기껏해야 쿠알론의 부족이 이루고 있던 고블린들의 수가 놈들의 전부라고 생각했건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 보였다.

"혹은 따로 숫자를 늘리는 방법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놈들의 상상 이상의 숫자에 그는 의아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의아함을 해소하기도 전에 다시 구덩이를 향해 집중해야 했다.

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기분 나쁜 기운이 그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특히나 그 기분 나쁜 기운만으로 압도된 스콘드는 더더욱이 구덩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바짝 긴장한채로 구덩이를 바라보던 그는 구덩이에서 튀어나오는 이를 바라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네녀석이 왜 여기에?!"

지하를 살펴보기는 했지만, 그들이 갑자기 단결해서 위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확인만 했던 그는 갑작스러운 트레이의 등장에 당황했다. 그리고 어째서 놈들이 갑자기 한마음 한몸이 되서 움직였는지를 눈치 챌 수 있었다.

한편 지상으로 올라온 트레이는 스콘드를 보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런 트레이를 보면서 스콘드는 긴장에 숨을 삼켰다. 눈 앞에 두고도 믿을 수 없을정도로 상대, 트레이는 강력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당시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고, 다른 루프스의 자식들을 떠올려봐도 전혀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강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 무십한 시선만으로도 스콘드는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껴야했다.

위협을 느낀 스콘드는 주변의 땅을 채우고 있는 시체들을 일으켜 세웠다.

푸확- 푸확-

주변의 땅을 뚫고 두꺼운 손, 작은 손, 조그마한 동물의 머리, 혹은 거대한 한쪽 눈이 빠져버린 몬스터의 머리가 솟아나왔다.

그렇게 뚫고 나오는 시체들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과 그것들을 다루는 것이 스콘드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트레이에게서 적의를 느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태 바라보고만 있던 모습이 무안할 정도로 격한 기세를 흩뿌리면서 트레이는 스콘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스콘드와 트레이가 마주치는 그 시간. 루프스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고블린들은 통로의 끝을 보고 있었다.

한차례의 위기가 있었고 전체 전력의 일부분이 깎여나가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험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통로의 끝을 한걸음 앞에 두고 있었다.

화아악-

어두운 동굴에서 빠져나가듯이, 바깥으로 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이 비춰들어왔다. 빛 한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빛이 비추는 지상으로 올라오니 환한 빛이 고블린들의 눈을 찔렀다.

잠깐 갑자기 밝아진 빛에 적응한 고블린들은 빠져나온 장소를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계속해서 지하로 들어오던 식귀들도 어째서인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어쩌면 성에 있는 놈들을 지휘하는 이가 고블린들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일단 뒤로 물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빠져나온 그곳은 루프스에게도 파인피와 프리트에게도 눈에 익은 장소였다. 르윅 성 중앙에 있는 성의 바로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었나"

바깥으로 빠져나온 루프스는 완전히 폐허나 다름없는 성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에 부딪혔다기 보다는 빵이 베어물린듯한 형상의 벽이나 집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보나마나 놈들이 정말로 물어뜯은 것일 것이다.

그 외에는 별로 눈에 띄는것이 없었다. 다만 이곳에 식귀들이 모여 있긴 했었다는 듯이 몸이 접혀있는 잡초만이 근처에 자라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루프스의 시선은 곧 성의 꼭대기 부근으로 집중되었다.

"저기쯤에 있곘군"

이미 한차례 보고를 들은 바로는 트레이는 성의 가장 높은 방에 위치해있다고 했다. 그가 있던 때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그저 창고와 같은 장소였을 뿐인 아무것도 없는 장소였지만, 어째서인지 트레이가 자리잡은 곳은 그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목표를 정한 루프스는 발길을 옮겼다. 그가 찾던 트레이가 먼저 요샐 향했다고는, 그리고 그가 찾아가는 곳에 있는것은 트레이가 아닌 다른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