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공세
루프스들이 한참 통로를 벗어나고 있을 무렵. 비교적 안전할것이라고 생각했던 요새의 지하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키..기엑.. 그르르륵...
식귀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닥에 떨궈두었던 독들이 기화하면서 온통 독무로 가득한 요새의 지하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지하의 바닥에는 고블린의 모습을 한 많은 수의 식귀들이 쓰러져있었다. 하나같이 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시체들이 가득했다.
끼에에에에~! 케헥!
철푸덕
그러는 한편 지하의 천장 부근에서는 미끄러져 내려오는 또 다른 식귀들이 주기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일부러 처들어오는 식귀들을 막아내기 위해서 독 이외에도 해둔 대비였다.
추락한다고하더라도 튼튼한 놈들은 단번에 죽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기에 독에 중독되고 빠른시간만에 목숨을 잃는 식귀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런 시체들의 틈바구니에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놈들이 있었다.
키힉... 케히엑! 케헥!
기침을 내뱉으면서 생존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식귀들이 소수나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기침소리는 점차 짧아져갔다. 지하에 퍼져있는 독에 완전히 적응한 것인지 짧아지던 기침소리는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독에 대한 완전한 내성이 생겨 멀쩡히 돌아다닐 정도가 되었지만, 그런 식귀는 매우 극소수였다. 백중 하나정도의 확률로 독에 저항하는 개체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루프스도 어느정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최초 두더지 형태의 식귀와의 전투에서 워낙 독이 잘 먹혀들었었지만, 사실 그것도 한끝차이 였기에 잘 먹혀들었던 것이다. 루프스도, 그리고 당시 직접 놈과 전투를 치른 전적이 있는 고블린들도 알고 있었지만, 식귀와의 전투는 제한시간 내에 끝을 내야만 하는 타임어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다름아닌 식귀들의 특성이 그런 전투를 강요하고 있었다. 섭취한 것들의 특징을 시간이 지남에따라 소화시키면서 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만의 특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놈이 독을 흡수해서 완전한 내성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독까지 자유자재로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 시간이 길게 끌렸다면 고블린들의 패배로 끝났었을 것이다.
그 까다로운 특성을 루프스는 아직 잊고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만큼 대비를 해두었지만, 만에하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름아닌 놈들이 보내오는 숫자가 그의 예상을 월등히 뛰어넘는 숫자라는 사실이다. 마치 여유가 있는 수라면 대부분을 이곳으로 보내온듯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숫자가 매일같이 요새의 지하에 도착하고 있었다.
놈들이 나타났을 때를 위해서 만일에 대비한 알림책이 있었지만, 그건 이미 파괴된지 오래였다. 놈들의 출현을 알려주어야 하는 만큼 놈들이 나타나는 통로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장치는 사실 식귀들에게 노출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식귀들은 미끄러져 내려올 때 마다 몸을 멈추기 위해서 발악을 했지만, 고블린들의 기술로 마찰력이 적도록 매끈거리고, 단단하게 굳혀둔 바닥은 아무리 몸을 끼게 만들어도 후속으로 내려오는 놈들로 인해 결국 지하 바닥으로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장치가 파괴되는 것은 그렇게 발악하는 식귀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고 쓸려나가면서 끝내 너덜너덜해지며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오산은 그가 떠남과 비슷한 시기에 이곳 지하에 트레이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성에 있을것이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놈은 정찰병 고블린들에게 발각된 이후 이곳을 향해 움직였기에 루프스는 그가 성에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요새에 있는 고블린들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루프스가 마주쳤던 그 어떤 식귀들보다도 강력한 트레이였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본능이 앞서는 모습은 다른 식귀들과 다를바없었다. 오히려 일반 식귀들보다도 더욱 본능에 따르는듯 보이기까지 했다.
본능에 집어삼켜진듯 추한 모습 이외에 그나마 일말의 형편없는 지혜나마 짜내는 것만이 그가 다른 식귀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텅텅빈 공터와 같은 지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지하 위의 요새를 버티기 위해서 여러 기둥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은 자칫 무너졌다가는 요새 전체가 폭삭 내려앉는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는 그런 기둥을 부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와 식귀들의 목적이 그저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과, 단순히 깔려 죽고 싶지는 않다는 본능이 합쳐진 결과였다.
다만 그는 동시에 기둥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 바깥으로 나서는게 좋지 못한 행동이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남은 식귀들을 지휘했다.
놈들을 이용해서 기둥에 홈을 파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홈을 이용해서 독무로 가득차있는 지하에서 빠져나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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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벌어지는 이변을 지상의 요새에서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엘라님"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스콘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엘라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명목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그가 요새에 대소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족장의 반려인 엘라 모르게 일을 벌일수는 없었다.
"지하에서 이변이 생겼습니다"
먼저 그녀를 찾아간 그는 능력을 이용해서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했다.
요새에 도착했던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 곳곳에 그가 다루는 시체들을 심어두는 것이었다. 그도 지하에 식귀들이 요새에 나타나지 못하게하기 위한 땅굴이 파여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가 다루는 시체들을 지하에 심어두었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는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족장인 루프스가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상황이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다급하게 엘라를 찾아갔던 것이다.
엘라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일단 성에 있는 고블린들과 인간들을 피신하게 지시했다. 만에하나 적들이 처들어왔을 때를 대비해서 요새에서 멀지 않은 군락지의 초입 부근에 대피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녀가 대피시킨 이들의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대피소로 향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줄 엘라와 몇몇의 상급과 최상급 고블린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요새에서 방어를 준비했다.
그리고 한편 스콘드는 바닥에 묻혀있는 시체들을 이용해서 땅을 파서 기어올라오는 식귀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면서, 놈들이 올라왔을 때를 대비했다.
스콘드의 관측에 의하면 놈들은 위로 올라올수록 점점 뭉치고 있었다. 점점 뭉쳐가는 그들의 움직임은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상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식귀들의 예상 출현지점을 추려낸 스콘드는 각 장소로 고블린들을 분산시켰다.
총 다섯장소가 선정되었으며, 그 중 가운데 지점에 있는 하나를 제외한 네 장소에 고블린들을 균일하게 분산시켰다.
그렇게 놈들의 움직임을 기다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땅이 들썩거리더니 그 곳에서부터 비쩍 말랐을 뿐 고블린과 같은 형태의 손들이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엑!!
바깥으로 나왔다는 기쁨일까, 그도 아니면 바로 코 앞에 먹잇감이라고 생각되는 고블린들이 있기 때문일까, 나타난 식귀들은 바깥 공기를 쐬면서 괴성을 질러대면서 대기중이던 고블린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놈들의 출현을 확인하자마자 스콘드는 온 몸에서부터 검은 안개와 같은 무언가를 발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