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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23화 (323/374)

323화

공세

고블린들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에 황급히 자세를 잡아야했다. 하지만 무사히 건너왔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던 그들이 단번에 전투태세를 다잡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쿵!

"키잇?!"

갑작스럽게 온 몸으로 덥쳐들어온 식귀에 의해서 한 고블린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어느새 온몸을 변화시킨 식귀의 촉수에 의해서 한 고블린이 가슴이 꿰뚫리고 있었다.

푸욱-

"케헥"

당황해하는 고블린들과는 반대로 식귀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고블린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것이 고블린들이 초반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된 이유이며, 한순간에 여럿을 잃게 된 이유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기는 루프스와 프리트, 파인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 중에서 파인피가 먼저 정신을 차린 덕분에 더 피해가 확산하기 이전에 놈들을 향해 달려들어 맥을 끊어놓았다.

"크햐아아아앗!"

후웅- 후웅- 후웅-

창을 크게 휘돌리면서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위협을 느꼈는지 여러 식귀들이 그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린 프리트가 주변을 늪지대로 바꾸어버렸다. 광장쪽에서 달려오는 식귀들과 통로의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놈들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둘이 어느정도 대처를 마쳤을 때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린 루프스도 몰려오는 식귀들을 막아서기 위해서 움직였다. 둘로 갈라진 그는 광장 방향과 통로의 안쪽 방향 양쪽의 최선두를 차지했다.

홀로 통로를 막아선 루프스였지만, 그에게는 다행히도 통로는 비교적 좁았다. 기껏해야 고블린 다섯정도가 어깨를 나란히하면 꽉 들어찰 정도였다. 거기에 프리트의 조력이 있었기에 그 홀로 양쪽에서 몰려오는 식귀들을 막아서는게 가능했다.

고블린 무리와 가까이 위치한 식귀들은 파인피가, 양쪽에서 몰려오는 쪽은 루프스와 프리트가 함께 맡은 양상이었다.

파인피 덕분에 고블린들은 숨을 돌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파악한 고블린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식귀들의 움직임을 막아서고 있는 세 고블린들과 합류했다.

그들의 첫번째 표적은 역시나 가까이에 있는 식귀들이었다. 파인피 홀로 막을 수 있었으며, 실제로도 하나씩 처치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블린들의 합류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건 아니었다.

보다 빠르게 적들을 정리 할 수 있었고, 홀로 버티고 있는 루프스를 도울 수 있었다.

"족장!"

쿠웅-

광장쪽에 있는 루프스를 향해 접근해오는 식귀들을 처날려버린 파인피가 그와 합류했다. 그리고 반대편, 통로 안쪽으로는 프리트가 또 다른 루프스를 돕기 위해서 나서고 있었다. 자연스레 광장쪽에 있던 늪지는 사라졌고 그 자리는 파인피의 불빛이 대신했다.

키야아아아-!

통로의 안쪽을 맡고 있는 것은 루프스, 그리고 프리트 둘 뿐이었지만 그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곳으로 다가오는 식귀들의 수는 일정했지만,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쪽은 달랐다. 이미 모여있었던 상당한 수의 식귀들이 덮쳐오고 있었다. 그나마 길목이 좁기에 루프스 홀로 막아내는게 가능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놈들의 숫자를 보면 언제까지 가능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파인피가 합류하고도 마찬가지였다.

통로 안쪽과는 달리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밀려드는 놈들에 의해서 압살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파인피에 이어서 합류한 고블린들이 그에게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놈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루프스와 파인피에 비한다면 두세단계는 밑에 있는 이들이다. 지금처럼 쉬는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경우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처리할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고만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지상에 있는 르윅 성에 머무는 놈들한테도 알려졌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그저 멀뚱히 처들어온 고블린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느긋하게 확인이나 하고 있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프스와 파인피는 오히려 놈들을 치고 나갔다. 이 좁은 통로에서는 기껏 합류한 다른 고블린들이 제 힘을 내지도 못할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저 전력을 낭비하는 것은 둘에게 조금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후웅- 화르르륵

먼저 앞으로 나선 파인피가 다가오는 식귀들을 밀쳐내기 위해서 창날과 창대 위로 넘실거리는 불길을 크게 피워올렸다. 그의 불이 크게 타올라 마치 그의 몸을 집어 삼킬듯한 몸이 되자 그제서야 그는 쌓인 불길을 정면의 식귀들을 향해 내질렀다.

정면으로 쏘아져나가는 그의 불길은 통로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거대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접근해오던 놈들의 전선이 크게 뒤로 밀렸다. 약간이나마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다시 비워진 자리를 매꾸면서 식귀들이 달려들었지만, 루프스와 프리트의 움직임은 그보다 빨랐다.

얼마되지 않은 거리였던 덕분일까 파인피가 한번 휘두른것 만으로 통로로 진입한 식귀들을 뚫어버리고 광장에 진입하는게 가능했다. 돌파하면서 소수 남겨진 식귀들은 그들을 뒤쫓아오는 고블린들에 의해서 차근차근 정리되었다.

그 사이 루프스와 파인피는 통로로 통하는의 입구를 사수했다. 다시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가는 좁은 통로에서 둘만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놈들의 공격을 받아야만했다. 그리고 다시 밀어내기까지 언제 또 기회가 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식귀들도 굳이 눈 앞의 목표물을 놔두고 안쪽을 노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둘을 돌파해서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눈 앞의 둘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그렇지만 식귀들만으로 둘을 해치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만 점점 지쳐가도록 만드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고블린측도 단 둘이서 그들에게 덤벼든것이 아니었다.

통로 안쪽에 남아있던 잔당을 해치운 고블린들이 두 고블린들과 합류해갔다.

고블린들이 점점 많은 수가 합류하자, 식귀들이 쓰러지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놈들의 수가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정도로 쓰러지는게 보이기까지 했다.

몇 고블린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대다수의 고블린들이 부상을 입었지만 끝내 광장에 있던 모든 식귀를 물리칠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쉰 루프스는 주저앉아 쉬고있는 고블린들을 보고는 통로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의 옆에는 파인피가 함께 있었다.

다행히 그쪽에도 별일은 없었는지 프리트의 늪지와 그 속으로 가라앉고있는 식귀들의 시체들, 그리고 늪지를 건너오는 놈들을 상대로 도끼를 휘둘러 명줄을 끊어놓고 있는 루프스의 모습만이 있었다.

"이쪽에서는 별일 없었나보군"

지상에서 지하에있는 놈들을 돕기 위해서 지원군을 보낼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이쪽으로 향하던 놈들만 다가온듯 다가오는 놈들의 수는 조금의 변화도 없이 일정했다.

그렇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지금 나타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부상당한 고블린들이 스스로를 어느정도 수습하고 만일에 대비해 동족의 시체들도 한곳에 모아놓고 불사지르고는 바로 지상으로 향했다.

상당한 시간을 걸었다. 이미 르윅 성에 거의 도착했다는 루프스의 생각을 비웃듯이 통로는 상상보다 길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길어도 끝은 있는 법이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식귀들을 물리치면서 전진한 루프스의 눈 앞으로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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