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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22화 (322/374)

322화

공세

루프스의 예상대로 슬금슬금 지금까지 마주쳤던 고블린의 모습을 한 식귀가 아닌, 다른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식귀들이 연달아서 나타났다.

바로 얼마전 새롭게 식귀들이 출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루프스는 고블린의 모습 뿐 아니라 두더지의 모습을 한 식귀를 발견한 바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과거 본거지였던 곳으로 짐작되는 지하실을 발견 했을 때 이미 그들의 등장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동물형이라고 해도 루프스와 고블린들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놈들과 비교했을 때 한단계 우위에 있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고블린형 식귀 보다 적은 수만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나타나야 하나나 둘 정도가 나타났기 때문에 파인피가 나서기만 해도 순식간에 놈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그렇게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요새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짐작이지만 르윅 성에 가까워질수록 고블린들은 더 자주 식귀들과 마주쳤다.

종래에는 몇분 걷지 않아서 마주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할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루프스는 자신이 목적지에 근접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쉿!"

움직이는 고블린들을 조용히시킨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직진 통로의 끝에 보다 넓은 광장과 같은 장소가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식귀들, 그리고 놈들이 나타나는 곳은 이 통로 뿐만이 아니다. 지상에서도 식귀들은 지속적으로 비슷한 수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이 나타나는데는 그만큼 모여있는 장소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곳. 지하 통로의 끝으로 예상되는 장소에 넓은 광장이 있는것이 그것과 무관계하지 않을 것이다.

루프스는 고블린들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자칫 급하게 움직였다가 인기척이라도 내면 놈들이 눈치챌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놈들은 지성은 그리 높지 않아도 본능은 남아있는 만큼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나마 그의 능력이 몸을 숨기는데 좋은 능력이라는게 다행이었다. 어둠속에서 더욱 어둡게 고블린들의 몸을 가리고는 광장을 향해 접근했다.

"이거...참..."

루프스는 눈 아에 보이는 광장의 광경을 보고는 할말을 잃었다. 그 곳에 있는 것은 그의 생각보다도 많은 수의 식귀들이 무리를 이루고는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장면이었다. 설마하니 저 이성이 없는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같은 놈들이 질서라는 것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그에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예상치 못한 식귀들의 모습에 순간 넋을 놓았던 루프스는 곧 정신을 차리고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독을 풀어냈다. 독이라고 해도 놈들이 눈치채기 힘들게 만들 뿐인 감각을 살짝 혼란시키는 정도의 미약한 독이었다.

아직 독이 통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루프스는 소수의 고블린들을 이끌고 놈들을 향해 접촉했다.

그나마 그가 이끌고 있는 고블린들이 은신을 특기로 하는 이들이기에 불안함을 가진 와중에도 믿을 수는 있었다.

그들이 식귀들의 감각을 속이면서 나선 것은 이 광장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놈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보니 만일에 대비한 퇴로의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놈들이 이렇게 가만히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원인을 조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선 루프스는 순조롭게 조사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독이 제대로 먹힌것인지 놈들의 코 앞을 지나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다른 고블린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얼결에 스치지 않는 이상은 놈들은 고블린들을 보는듯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가 직접 일부러 멍한 표정의 식귀의 몸에 스치는 수준이었지만 접촉해보아도 일순간 주위를 두리번 거릴 뿐 그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라? 이놈들...'

루프스는 그런 식귀들의 움직임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어딘지 죽의 동태눈깔이 연상되늬 놈들의 모습에 일부러 접촉까지 하면서 반응을 살폈지만, 놈들의 반응이 생각보다도 미약했다.

여러모로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놈들에 대한 고찰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광장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식귀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한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다시 프리트와 파인피가 기다리는 통로로 돌아갔다.

"일단 우리가 움직여야 할 장소는 찾았다. 다만... 놈들의 반응이 영 마음에 걸리는군"

고개를 절래 저으면서 루프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온 프리트와 파인피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둘과 다른 고블린들을 이끌고 다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반응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프리트는 루프스를 향해 물었다.

"놈들을 봐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늬 와중에 루프스는 턱짓으로 정련해서 미동도 없이 서있는 식귀들의 모습을 가리켰다.

그의 턱끝을 쫒아 시선을 보내니 좀 전에도 보았던 질서정연한 모습의 식귀들이 있었다. 루프스에게는 기계가 떠오르는 광경이기도 했다.

놈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프리트는 뭐가 이상하다고 하는지 그제서야 눈치챘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군요"

질서정연한 모습이 이상하다 했었지, 놈들이 정말 생물이라면 어쩔수 없는 숨쉬는 동작, 눈의 깜빡임 조차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챈 것이다.

무슨 기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기적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개체와 그에 맞춰 줄을 정돈하고 뒤에서 숫자가 보충되는 움직임의 세가지를 제외하면 마치 물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루프스에게는 기계를 연상시켰던 그 모습이 프리트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부족의 생산시설에 놓여있는 재고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명백한 이상징후였지만, 루프스는 오히려 그렇기에 고블린들을 이끌고 이 자리를 벗어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와 몇몇 고블린들의 능력들을 중첩해서 최대한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움직였다.

고블린들의 목표는 눈 앞의 일말의 의지도 본능도 없어보이는 식귀가 아닌 그들의 뒷편에 있는 통로였다.

주기적으로 자리를 벗어나 눈앞에 있는 식귀들과 반대로 재고가 입고되듯이 식귀들이 광장으로 들어오는데 이용하는 통로였다.

좁은 통로를 이용한다면 바로 옆을 지나고 있는 식귀들이 일제히 덤벼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 한번의 전투로 소실될 전력과 체력을 생각하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피할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전투라면 피하는게 당연하다.

다행히 고블린들은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광장을 가로질렀다.

뒷편에 있는 통로로 뛰어든 고블린들은 살짝 긴장이 풀린듯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고블린들의 긴장은 확실히 풀려버렸다. 그야 멍청하니 서있다고 해도 하나하나가 이 자리에 있는 고블린들과 버금가는 녀석들이었다.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는게 이상한 일이었다.

통로에 도착한 고블린들 중 일부는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이 풀리면서 주저앉기도 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옆을 멍청한 표정으로 지나고 있는 식귀를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키익?

전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식귀는 갑작스럽게 몸에 무언가가 닿자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의아하다는 울음소리만 내뱉었다.

하지만 놈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 닿은것이 동족이 아닌 진짜 고블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놈은 괴성을 질러댔다.

키이이이이이이잇!!

그리고 놈의 괴성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식귀들에게 적들의 출현을 알려주는 방아쇠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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