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대비
인간측과 식귀들의 싸움이 점점 심화되어 갈 무렵. 루프스도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했다... 그건가?"
루프스는 보고를 올린 정찰병을 내보내고는 함께 있는 엘라와 프리트 그리고 파인피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매번 밀리는 형세를 보여주던 놈들이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다는걸 보니 이번에는 인간놈들도 작심한 모양이군요"
함께 보고를 들은 프리트가 중얼거렸다. 그들과 여러번 싸워왔었고, 처들어오지 않는 인간들을 의심했던 루프스에 의해서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식귀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매번 어떤식으로 돌아가는지 정도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략적이라고해도 항상 밀리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지금까지 밀리기만하던 인간들이 지금은 제대로된 반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그동안 무슨일이 있어도 꿍쳐두고 있던 전력들을 끌어낸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는건 이제껏 보유한 전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대로는 버겁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프리트는 그들이 이제껏 숨겨놓고 있던 전력을 불러낸다는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서 고찰했다.
"뭐 공격하려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라는 의미겠네요"
그것이 프리트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루프스는 동감했다. 하다못해 인간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식귀들이 만만한 적이었다면 그대로 인간들을 향한 침공을 재개했을 것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파인피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의아해했다.
"그게 뭔...?"
두 눈을 끔뻑이면서 말을 내뱉은 프리트와 고개를 끄덕이는 루프스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연 파인피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프리트가 그 이유에 대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프리트의 의견은 단순했다. 인간들이 적들에 대한 버거움을 인정하고 지금껏 꽁꽁 숨겨놓았던 전력을 끄집어냈다. 사실 꺼낼려면 진작에 골렘이 출몰했던 그 시기부터 꺼냈어야 할 전력을 이제서야 꺼낸 것이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게된 프리트는 그렇게 바깥으로 나온 전력이야말로 최소한 식귀들과 대립하고 있는 인간 단체들의 전력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다는 것은 그렇게 나타난 이들 이상가는 전력이 그들에게 없다고 판단하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그들이 무리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추리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의 골렘에 대한 대처가 안일해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제대로된 전력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전력만으로 골렘을 향해 부딪혔던 그들이다. 우연히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서 이길수는 있었으나, 루프스와 프리트는 그것이 온전히 운이라고 보고 있었다.
만일 골렘이 단일개체로서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타입이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느정도 정보를 뽑아내자 분열로 힘이 점점 낮아지는 개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골렘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상대하기 손쉬운 상대였다는 커다란 운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식귀들과 싸우고 있는 전력이 전면으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사실 골렘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던 당시. 안전을 위해서라면 지금 나타난 이들을 부르는게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전력이 어느정도일지 모르는 적을 상대로는 어느정도 우위를 잡을 수 있는 병력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그들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졌다거나, 혹은 처지는 같지만 이래죽나 저래죽나 어쩔 수 없이 불러들였다. 두가지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것도 인간들이 식귀들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무래도 후자에 무게가 더욱 실린다고 프리트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필사적으로 어느정도 무리하면서 놈들을 물리칠 생각을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프리트는 정찰병이 들고왔던 보고의 일부를 떠올리면서 첨언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수긍한 것인지 파인피는 그의 이야기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저들이 혼잡한 틈을 타서, 우리의 일을 처리하도록 하지"
둘의 대화가 끝난듯 하자, 루프스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올라온 보고는 인간들이 식귀들과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했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전에 보내둔 정찰병들에 의해서 그들이 버렸던 르윅 성의 현황에 대한 정보도 이미 들어와 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들자 엘라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해버렸다.
"보고에 따르면 분명..."
"...그래, 성을 점령하고 있는건 다름아닌 트레이라더군"
엘라의 물음에 루프스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루프스도 어느정도 짐작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트레이는 마인이나 라둔, 그룬과 같은 그와 엘라의 자식들이었다.
드란은 확실하게 적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싶었던 트레이도 적으로 나타났다. 루프스와 엘라의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엘라로서는 루프스가 드란뿐이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혹시나 남은 둘이 적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닌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헛된 희망이었음이 밝혀져 버린 것이다.
드란이 나타난 시점에서 어느정도 각오를 하고 있던 루프스와, 혹시나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던 엘라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었다.
루프스는 눈 앞에 자식들이 적으로 나타나도 가차없이 적으로 대할수 있다. 반면에 엘라는 자식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것 자체에서 망설일 것이다.
그럼에도 루프스는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트레이와 드란이 적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던 쿠알론도 잠재적으로 적이라고 판단하는게 올바를 것이다. 식귀에게 뒤집어씌인 그들에게 부모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을거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공격할 결심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루프스는 엘라가 그에 대해서 결심을 가질기를 원했기에 이곳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에 반하게도 엘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무리보아도 멀쩡하지 않은 모습에 루프스는 일단 그녀를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마음을 추스르기를 기다리면서 루프스는 프리트와 파인피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는 트레이뿐만이 아니다"
루프스는 정찰병이 그에게 했던 보고를 떠올렸다. 모로 보아도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뒤바뀐 성의 모습. 벽이란 벽은 온통 갈려나가고 허물어져있어, 그야말로 원시의 형태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직접 본 고블린들에게 그에 대해서 전해들은 루프스도 식겁해 놀랄 정도로 큰 일이었다.
그렇지만 루프스가 경계해야하는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껏 본적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식귀들이 르윅 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만에하나 아무것도 모른채로 지금 이대로 처들어간다면, 이길수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수에서부터 크게 밀려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반격을 당해 전멸당하는 미래만이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이대로 정면으로 르윅 성을 향해 처들어갈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방책을 세우기 위해서 이 자리에 이 셋을 모아놓은 것이다.
적들에 대한 정보가 어느정도 모인 지금 시점에서야 말로,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둘 필요가 있다고 루프스가 판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