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대비
프리트와 함께 요새의 바깥을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왔지만, 그의 기대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쩝... 역시 마음대로는 안되는군"
이미 짐작했던 일이었기에 루프스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일들이 그의 마음대로 풀릴리가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 예상과 다른 점이 한가지 더 있었다. 처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했던 식귀들이 소수지만 정찰 도중에 발견된 것이다. 일단 섬멸해두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은 루프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식귀들이 나타난 방향이 르윅 성이 있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여러 함정들로 도배되어있을 숲을 흙먼지 하나 묻지않은 상태라는게 루프스에게 특히나 수상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요새로 귀환한 루프스가 정찰대를 르윅 성 쪽으로 파견했다. 그의 짐작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식귀들을 보면서 그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에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지하에 만들어진 함정들은 아직까지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그에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후우... 정말이지 이 놈들은 생각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없군"
매번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공격해들어오는 식귀들을 떠올리면서 루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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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고블린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눈으로 보기만해도 상쾌해지고, 조용하기까지한게 언뜻 기분 좋은 숲의 모습이었지만, 고블린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 숲이 다름아닌 엘프들에 의해서 함정들이 깔려있는 복마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이야말로 요새로 처들어오는 이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난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엘프들의 비술로 인해서 몬스터나 인간들같은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이들을 배제하게 되어있다. 그나마 숲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장본인인 엘프들만이 자유로울 뿐이다.
그리고 그게 고블린들이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는 이유였다. 숲이 적대적인 것은 고블린들이 상대라해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숲이 엘프들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평소라면 고블린들이나 요새에서 성으로 왕복하는 인간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위급한 시기에 엘프들이 이곳에 상주하는 것을 루프스가 그대로 두고볼리가 없었다. 혹은 그 이전에 엘라에 의해서 후방으로 이동해있도록 지시가 내려진다.
그렇기에 이곳에는 현재 엘프들은 없었고, 정찰병들에게도 위협적인 식물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고블린들은 딱히 숲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식물들이 가장 크게 반응하도록 한 것은 많은 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경우로 되어있는 덕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요새를 향해 처들어오는 이들은 제법 수가 있는 군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숲으로 침투한 고블린들 모두 잠입에는 루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실력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나마 함정이 약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럽게 숲을 빠져나간 고블린들은 이동하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그들도 이미 루프스로부터 이 근처에서 나타났다는 식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찰병들은 이곳에 대해서 알고 있기에 비교적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뭣도 모르고 있을 식귀들이 이곳을 먼지하나 묻히지 않고 나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찰대장은 떠올렸던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라 르윅 성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였다.
'별 일은 없을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 생각을 끝으로 고블린들은 르윅 성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척-
정찰대장은 경계를 넘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올려 전진을 막았다. 수신을 받은 정찰병들은 그의 행동에 재빠르게 주변의 기물들을 이용해서 몸을 은폐했다.
정찰대장도 슬그머니 바위의 뒷편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가 본 것을 확인했다.
그가 목격한 것은 다름아닌 식귀들이었다.
식귀들은 확실히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말의 이성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일말의 이성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 그가 알고 있는 식귀가 분명했다.
그는 이전 나타났었다는 두더지형 식귀와 싸워보지는 못했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난 만큼, 어느정도의 정보는 지니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것도 부하들 중 한명이 '영역차단'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식귀들 특유의 생명력 감지를 통해서 숨어있는 그들을 눈치챘을 것이다.
식귀가 걷는 방향은 요새쪽 방향이었지만, 정찰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요새 가까이 다가가는 식귀들이야, 요새에 머무는 동족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전력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르윅 성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르윅 성을 향해 다가가면서 정찰대는 여러번 식귀들과 마주쳐야만 했다. 그 중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도 두차례 있었지만, 나타나는 식귀들이 한결같이 하나나 둘 정도로 드물게 나타났으며, 그들을 상대해야하는 고블린들도 하나하나가 상급에 도달했으며, 정찰대장과 그의 부관은 최상급에 도달한 고블린들이었다.
소수로 나타나는 식귀들 쯤, 우연히 마주쳤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조용히 처리하는게 가능했다. 다만 항상 그러면서 가기에는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과, 점점 지쳐가기에 최대한 피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더 갔을까, 요새와 가까워진 시점에서 정찰대는 구덩이에서 하나씩 나타나는 식귀들과 그 구덩이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두더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저건..."
두더지의 모습을 본 정찰대장은 저도 모르게 놀라면서 말을 내뱉었다. 나타난 그것이 그가 전해들은 적 있는 놈들의 모습과 유사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동요하는 만큼이나 다른 고블린들도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놈에 대해서 이 자리에 있는 고블린들이라면 모두 한차례 이상은 전해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톱과 이빨이 날카롭게 빛나면서 예기를 뽐내는 반면, 그 몸체는 삐적 말라있는 것이 볼품없어 보이는 두더지의 모습은 분명히 이전 부족에 출몰한 적 있다는 식귀와 닮아 있었다.
두더지 식귀의 모습에 깜짝 놀랐던 고블린들은 침착하게 주변을 정찰했다. 지금까지 요새나 성 부근에서는 보인적도 없으며, 유일하게 얼마전 족장인 루프스만이 발견 한 적 있는 적이었다.
그렇지만 놈은 이 자리에 있었고, 하나가 있다는 것은 둘이나 그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속을 가다듬은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아직 이곳은 그들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목적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마주한 르윅 성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순간이나마 멍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그 곳에 있는 것은 과거 그들이 알고 있던 성의 모습이라고는 주변에 부스러져있는 돌 무더기 뿐인 완전한 폐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여러 구덩이가 뚫려있었고, 여러 식귀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두더지 식귀뿐만이 아닌, 다른 동물형 식귀들 또한 여기저기 눈에 띄고 있었다.
그리고 정찰병들은 그런 그들 틈에서 유일하게나마 어느정도 이성을 가지고 있는 듯 다른 식귀들을 지휘하고 있는 한 고블린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