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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17화 (317/374)

317화

대비

프리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루프스는 그와 함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어차피 그가 하고 있던 일들이 이전에 있던 일들을 다시 검토하는 정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동하면서도 루프스와 프리트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요새를 수비하는데 필요한 대비는 얼추 되었다고 보아도 좋겠다만은... 문제는 놈들과 싸울 전력이 충분한지가 걱정이다"

루프스가 그 동안 확인한 바에 의하면, 고블린들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식귀들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힘을 기준으로 수 단계는 높은 힘을 낼 수 있었다. 당장 최하급으로 보이던 고블린이 상급의 힘을 발휘하는게 그 단적인 예였다.

그나마 놈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들의 전력이 정확히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그저 최대한 전력을 모으는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장 식귀들의 전력이 어느정도인지 모르는 지금으로선 섣불리 판단 할 수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상급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놈들이 일반 병사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그들을 지휘하는 보다 상위개체가 나온 만큼, 어디까지가 놈들의 한계인지도 알 수 없었다.

현재까지 나타난 수로 판단 했을 때는, 충분히 상대할만 하다는게 루프스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부족이 지닌 전력의 주력은 상급 고블린이다. 중급과 하급이 없는 것은 아니나, 루프스의 능력과 군락지라는 풍부한 사냥감이 맞물리면서 상급 정도는 충분히 양산하듯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 상위로 넘어간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최하급과 하급의 경우는 이미 루프스가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상황인 만큼, 어린 고블린들만 자라난다면 얼마든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있다. 그리고 중급의 경우도 그에 어울리는 적들이 있었다.

요새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는 동쪽 마을 부근에 트롤들의 서식지가 있었다. 그 밖에도 중급의 수준에 어울리는 몬스터들이 루프스의 부족이 지닌 마을의 주변에 서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아마 그 부근이 중급 몬스터들이 영역으로 삼은 듯 싶었다. 그게 딱히 그들 부족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으며, 중급 고블린들의 훈련상대가 되어주는 루프스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문제는 상급 이상부터였다.

군락지에는 분명히 상급은 물론 그보다 높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상급 몬스터로는 오우거나 하피, 라미아가 그에 속하는 몬스터들이다. 문제는 그런 몬스터들이 자주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부 한차례 정도는 루프스도 본 적이 있는 몬스터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한단계 높은 만티코어나 와이번, 그리폰 같은 몬스터들이 오히려 더 많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상급 고블린들 중 경계에 도달하는 경우보다 최상급에 있는 이들이 경계에 도달하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다.

겨우 마련한 방책은 최상급 고블린들이 최상급 몬스터를 사냥하러 나설 때 몇 정도가 따라가도록 하는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방책이 있으면 좋으련만... 전에 오우거 놈들을 몰살시켜버린건 너무 성급한 선택이었나?"

"아뇨, 구심점을 잃어버린 놈들은 어차피 흩어져버렸을 겁니다. 그럼 결국 지금이랑 그리 다를것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주변에 있는 오우거들의 수가 약간 늘어나는 정도의 효과만 있었을 거라는게 그의 이야기였다. 확실히 당시 오우거들이 모여있어서 성가셨던 것이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구심점이 되어줄 놈이 없는 지금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도 최상급 몬스터들이 흩뿌려지듯이 우글거리는 군락지의 어딘가로 퍼져나갔을게 분명했다.

오우거들이 뭉쳐서 그들만의 부족을 이루기란 기대하기 어려웠다. 원체 홀로 다니는게 평소 생활인 놈들에게 그런 기대를 할 수 가 없으니, 또 다른 몬스터를 찾아야만 했다.

"싸워야만 강해질 수 있다니... 진짜 무슨 싸움을 위해서 태어난 것만 같군"

루프스는 문득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태생적으로 고블린들은 최하급 몬스터다. 그건 지금 당장 태어나고 있는 고블린들을 보아도 루프스 자신을 떠올려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 부모가 얼마나 강한 이들이든 그건 상관 없다는 듯이 동족이라면 모두 같은 스타트라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하면, 자연스레 몬스터들이 떠올리는 것은 축복이다. 대다수가 부르기를 전장의 축복, 약칭으로 그저 축복이라고 부르는 그것만이 몬스터들이 성장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전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축복을 받는 방법은 오로지 전투 뿐이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살아남으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전투에 목숨을 걸도록 만들었다.

그 이외의 방법으로는 신체능력을 단련하는 정도지만, 그것도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친 단련으로 얻는 것이 단 몇번의 전투만으로 그에 상응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당연히 자연스레 단련을 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게다가 서로 목숨을 노리고 하는 전투에서는 누구든 죽을 수 있는 법이다. 그 때문에 꺼려하는 몬스터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경우는 오히려 도태되어 버린다. 유일하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 뿐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거부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그저 도태되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루프스의 부족에서는 그 이외에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경우가 없을 뿐이다.

그렇지만 오로지 싸움뿐이 강해질 방법이 없다는 것이 루프스를 아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동족들을 떠올리면 루프스에게 안타까움만을 더하고 있었다.

"인간들이나 엘프들처럼 그저 훈련만으로 강해질 가능성이라도 열려있었으면 좋을 것을..."

루프스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사실 축복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였다. 축복 덕분에 단기간에 강해졌으며, 그의 세력도 그가 지닌 조건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더욱 강하게 만들어갔다.

그 어느 최하급 몬스터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부족도, 그보다 빠른, 그리고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기는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축복을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는 루프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의 걱정도 사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최하급부터 시작하는 고블린들을 상급까지 순조롭게 끌어올리고, 그 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애초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겠습니까"

프리트가 그의 중얼거림에 얼떨떨해 하면서 대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앞만보고 걷던 루프스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사치스런 생각이고 고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고블린 정찰병들이 모이는 정찰초소에 그들은 발을 내딛었다.

정찰초소에는 많은 고블린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엄숙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 일대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긴 하지만, 영역을 살짝 넘어가는 순간부터 위험해지기는 매 한가지이니 초소에 긴장감이 항시 떠돌고 있었다. 고블린들도 들어서는 루프스와 프리트를 보면서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루프스는 그런 곳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둘이 함께 주변을 둘러보면서 한번씩은 확인하고자 정찰병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그 때 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둘은 한차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보면서, 새롭게 출발하는 정찰병들의 틈에 끼어들어서 요새의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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