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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14화 (314/374)

314화

괴변

루프스가 요새에 도착한 것은 모든 전투가 끝난 이후였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상당한 전투가 있었는지, 여기저기가 파여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루프스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혹시나 놈들이 처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으나, 정말로 처들어왔다는 사실은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와 프리트는 곧장 현재 이곳을 담당하고 있을 파인피와 엘라를 찾아갔다.

루프스의 내심으로는 혹시나 엘라를 비롯한 이들이 르윅성에서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행히 요새의 중앙에 만들어진 거대한 천막으로 들어서니 엘라가 무사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다행히도 파인피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니었는지 둘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만 그녀와 함께 파인피는 어딘지 불편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끄응, 죄송합니다"

루프스가 들어왔을 때 부터 계속해서 눈가에 주름을 만들고 있던 파인피는 루프스를 향해 사과를 했다.

"...?"

그의 사과에 루프스는 의아했지만, 곧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번에 희생된 이들 때문인가 보군"

루프스의 말에 파인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를 향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던 그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니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엘라도 마찬가지고"

어딘지 죄책감이 엿보이는 그녀의 표정에서 파인피와 같은 이유라는 생각이 든 루프스는 첨언 하듯이 말했다.

"...예"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일순 우물쭈물했지만, 엘라는 그가 한 위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은, 희생된 동족들 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게 더 급한데 말이지... 무슨 일이 있었지?"

거듭되는 사과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루프스는 이내 태도를 다잡고는 둘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파인피와 엘라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표정을 구겼지만, 그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식귀들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구덩이로 나타났다거나, 그 때문에 당황했던 고블린들 몇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희생당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때, 너희들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서 둘의 존재가 없자 의아함을 느낀 루프스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엘라와 파인피는 다시 한번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그 때 성 안에 있었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습니다"

파인피가 지금까지 없던 진중한 태도로 루프스에게 말했다. 그에 루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고블린들이 입은 피해는 초반에 났던 소수와, 전투 과정에서 둘의 사망자와 몇몇 부상자가 생겨난 것 뿐이었다.

"다른 문제는 없었나?"

"...싸움의 여파로 생산직에 종사하던 몇 동족들과 인간들이 휘말려 목숨을 잃는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으음..."

루프스는 잠시 신음을 흘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놈들이 처들어올떄를 대비해둔 지시가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이 곧 아무런 피해도 없이 적들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러 생명 반응을 밀집시키기 위해서라지만 생산직에 종사하는 이들도 한 자리에 묶어두었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가 생기는 것도 필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인구를 한 장소로 몰아넣었던것과 같은 부실한 계획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기에 펼쳤던 것이다. 가까이 지내면서 작업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안전만큼은 챙기자는게 루프스의 본래 생각이었다.

다만 혹시나 싶었던 예측이 현실로 다가왔으니 루프스는 보다 알맞은 방안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미 바르무어 성에서 나타나는 식귀들을 보면서 그 나름대로 생각해둔 방안이 있었다.

///

루프스가 돌아오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굳이 다시 르윅 성으로 거점을 확장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르윅 성에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반 주민을 자처하고 있는 인간들도 딱히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은 없었다. 정확히는 위험한 식귀들이 나돌아다니고 있는데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루프스도 인간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딱히 이렇다 할 제제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인간들은 맡은 바를 잘 해나가고 있으니 굳이 건들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들 모두를 요새에 수용 할 수는 없었기에 일정 이상의 호위를 데리고 군락지 안쪽에 있는 마을로 분산시키는 작업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식귀들이 나타났던 구덩이에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이 또 다른 구덩이를 파 왔을 경우에 대한 대비도 진행되고 있었다.

루프스는 작업의 진척이 어떻게 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구덩이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해둔 방법은 바르무어 성에서부터 고안해두었지만, 그의 영역도 아닌 곳을 굳이 건들 생각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필요한 재료가 부족했기에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던 방법이었다.

다만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루프스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요새였다. 무엇보다도 군락지에 가깝기 때문에 필요한 재료를 군락지 안에 있는 부족으로부터 건네받는 것도 가능했다.

루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덩이가 생겨난 장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바르무어 성과 마찬가지로 주거지의 한복판에 나타나있는 구덩이는 딱 보기에도 흉해 보였다. 그저 아래로 파고들어가있는 구덩이일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커다란 입과 같이도 느껴져서 꺼림칙한 장소였다.

그의 영역 안에서 생성된거라 그런지, 바르무어 성에 있던 구덩이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더욱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구덩이의 주변에서는 하얀 마스크와 같은 물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고블린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나 구덩이 주변을 무슨 제조공장처럼 늘어져있는 항아리에서 무언가를 조제하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더욱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부하들의 모습을 루프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항아리 하나가 마침 제조가 끝났는지, 함께 작업하던 고블린들 여럿이서 낑낑거리면서 항아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구덩이까지 끌고 가더니 그대로 눕혀버려서 안의 내용물을 구덩이 안쪽으로 쏟아부어버렸다.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모두 루프스의 지시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루프스는 그렇게 쏟아져들어가는 초록빛으로도 보랏빛으로도 보이는 꺼림칙한 액체를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비명이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실 고블린들이 뿌리는 액체는 겉보기와 같이 독이었다.

다만 루프스들이 평소 사용하는 것과 다른 점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직접 접촉을 이용해야만 피해를 줄 수 있는 종류였다. 그 덕분에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고블린들은 독에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동안 또 다른 장소에서도 대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구덩이가 생긴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기에 루프스는 육안으로 작업이 진행되는 장소를 볼 수 있었다.

흙더미가 쌓이고 있는 장소에는 또 다른 구덩이가 있었다. 다만 그 구덩이는 식귀들이 만든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함정을 만들면서 단련된 고블린들이 파놓은 구덩이였다. 그리고 그 구덩이의 안쪽은 만일에 대비한 보험으로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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