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괴변
앞서갔던 두 동료와 합류할 생각이었던 네 가신은 생각보다도 칼라인과 일찍 합류할 수 있다는데 일단 안심했고, 다른 한명, 쿠드라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불안한 예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불안을 느낌과 동시에 그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현재 네명의 가신을 이끌고 있는 알데르트는 문득 달려오는 칼라인의 뒤편으로 바짝 쫓아오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칼라인이 안전하게 합류하는걸 돕기 위해서 바짝 쫓아오는 고블린들을 향해서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교롭게도 칼라인의 정면에 해당되었다.
핑- 핑-
그렇지만 칼라인은 그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향해서 화살을 날렸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구르듯이 벗어났다.
퍼벅-
"키잇!"
그가 갑작스럽게 몸을 굴려 피해내자 자연스럽게 화살은 고블린들을 공격했다. 기동력에 이상을 줄 수 있는 다리 쪽은 아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의 충격은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잠시 제동을 거는 정도는 가능했다.
칼라인을 가장 가까이 쫓아오던 고블린들은 순간 움직임이 경직되었고, 좁은 건물 길목 사이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칼라인을 쫓는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일시적이나마 봉쇄 할 수 있었다.
잠시 멈칫하는사이 알데르트를 위시로한 넷은 무사히 칼라인과 합류 할 수 있었다.
칼라인도 일단 도주해서 식귀들과 싸우고 있을, 혹은 이미 끝났을 장소로 향하며 일단 동료들과 합류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두명과 합류해도 감지덕지였는데 넷이 한번에 모여있으니 칼라인이 느끼기에게는 그야말로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칼라인은 알데르트들과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뒤돌아서서 고블린들과의 전투태세를 갖췄다. 서로 이런저런 정보를 전달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그건 이미 필요없는 일이었다. 이미 쿠드라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알데르트의 화살로 입은 피해라고는 그저 잠깐 움찔하는 것 뿐이라는 점에서 적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식귀들과 격전을 치루고 온 네명보다도 그의 부상 정도가 심한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칼라인은 그들과 합류했을 때 뒤로 한발 물러서서 잠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가졌을것이지만 그가 취한 행동은 그들과 함께 고블린들을 향해 검을 겨누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가 고블린들을 그가 잠시 여유를 가지지도 못 할 정도로 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적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그가 고블린들을 경계하는 모습은 다른 네명도 그들을 경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원거리가 특기인 두명이 뒤로 물러나고 칼라인을 선두로한 세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다섯이서 어느정도 대열을 갖추자, 지금까지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던 고블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고블린이 일행중 가장 지쳐보이는 칼라인을 향해서 빠르게 접근하더니 단검을 휘둘렀다. 지쳤다고해도 싸울여력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었기에 칼라인도 고블린의 단검을 검을 휘둘러서 튕겨냈다.
그렇게 둘이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신호로, 다른 고블린들도 그리고 나머지 네명과 그들을 따라온 병사들이 서로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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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는 소란스럽게 싸우기 시작한 그의 부하들, 고블린들과 인간측 병사들을 살펴보고는 그곳에서 물러났다. 전체적인 전력은 물론이고, 달려온 병사들의 숫자가 적어 숫적으로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전력에서 큰 차이가 나면서 숫적인 차이가 적으니 루프스는 부하들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렇다면 그가 굳이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야 혹시나 무슨 이변이 벌어질까 싶어 일단 지켜보았지만, 그 동안 살펴본 바로는 아무래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 싶었다.
그리고 제법 오랜시간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인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성주 측에서도 알아차린 듯 싶었다.
지금도 그의 귓가로 다급히 달려오는 병사들의 발소리와, 빠르게 달리는 말의 발굽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부하들에게 맡기고 루프스는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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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룬 바르무어는 빠르게 말을 몰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뒷편에서는 마찬가지로 말에타고 있는 기병들이 달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뒤에는 보병들이 빠르게 뜀박질을 뛰고 있었다.
두발로 직접 뛰는것과 말을 타고 달리는것에는 차이가 있는 만큼, 성주와 말을 타고 있는 가신들, 그리고 기병들은 빠르게 앞으로 치고나가고 있었지만 두발로 뛰는 병사들과는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대로 있을수는 없다는 조급함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다.
최초 구덩이에서 식귀들이 둘 튀어나왔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었다. 루프스도 병사들이 보고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었지만 일부러 놓아두었던만큼 그 소식은 그에게 빠르게 도착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앞서 들어갔던 이들을 향해 애도하기는 했지만, 이미 대비는 해두었었고, 이정도 전력이면 그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함께 움직이는 보병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그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동중인 그를 향해서 고블린들의 공격을 뚫고 간신히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던 한 병사가 올리는 급보는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실 그것도 루프스가 굳이 탈출하는 병사를 쫓아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건 병사도 성주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성주는 갑작스러운 고블린들의 출현과 그들에 의해서 병사들이 전멸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에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지금까지 보병들과 함께 있었던 이유였다.
소식을 듣고 빠르게 치고나간 성주와, 그를 보좌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급하게 말을 달리게 해야만했던 기병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함께 움직이던 보병들과 떨어져야만했다.
그리고 그들이 고블린들을 이끌고 있는 족장. 루프스를 만나는 것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건물 사이 사이로 재주 좋게 길을 찾아나선 베오룬 성주와 그의 수하들은 어느순간 눈 앞을 가로막은 한 고블린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전신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는, 고블린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큰 덩치를 하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지만 성주도, 기병들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만 그를 향해서 손아귀에 쥐고 있는 창을 겨누면서 더욱 빠르게 말을 몰 뿐이었다.
성주와 기병들이 타고 있는 말과 창은 곧 고블린과 충돌할듯 했고, 그 순간에도 고블린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변은 바로 그 순간 벌어졌다.
쿵- 쿵-! 쿠당탕-
히-히히힝-
"컥!"
고블린이 있던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솟아난듯이 벽이 나타났고, 성주는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이들 모두가 벽과 충돌해야만했다.
벽은 무너져내렸고, 그 뒤로 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집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벽과 충돌하면서 생긴 충격으로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노린듯이, 그들이 방금전까지 보았던 고블린이 마치 허공에서 뚝 떨어지듯이 나타나서는 쓰러져 고통에 해메이고 있는 기병들의 목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도끼로 단번에 베어버렸다.
고통에 겨워하는 기병들의 목을 내리치는 모습은 마치 반복작업을 하는 듯 했지만, 그 결과를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져버린다.
고통에만 신경쓰다가는 목숨이 달아날 위기에 처하자 하나 둘씩 일어나서는 그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