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괴변
두 고블린과 두 인간들이 서로 대치하면서 견제를 하고 있을 그 때. 상황은 인간 병사들 측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원호를 위해서 달려왔던 둘은 재빨리 고블린들을 처치함으로서 하나라도 병사들을 살릴 의도였으나, 실체를 까고 보니 그들 본인들도 각각 하나씩을 상대하면서 방심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고블린들을 상대함으로서 더 이상 피해를 못끼치게 만들어야 하는 둘이 발목이 잡혀있으니, 그 결과야 뻔한 일이었다.
쿠드라스와 칼라인 그리고 두 상급 고블린간의 혈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끌었다. 쿠드라스가 한 고블린을 노리고 공격하면, 공격대상에서 벗어난 고블린이 그의 뒤를 노린다. 그리고 칼라인이 그런 고블린의 공격을 처낸다는 패턴의 반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두 고블린은 그나마 서로 번갈아가면서 쿠드라스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에 반해서, 쿠드라스와 칼라인은 애초부터 전투 스타일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쿠드라스의 체력 소모가 훨씬 격렬했다. 그의 체력이 칼라인보다 훨씬 강인하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헉...헉..."
연달은 공격에 공격은 그의 체력을 거의 전부 빼앗아갔다.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적을 향해 공격하는 것도 버거워졌다. 그리고 그는 이 지경이 되어서야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쿠드라스는 어느새 주변을 시끄럽게 울리던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사라졌음을 인지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사한 상태였으며, 몰골이 말이 아닌 소수의 병사들은 고블린들에 의해서 포박당한 상태였다.
식귀들과 싸우던 그의 동료들은 이곳에서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이 상태라면 그리 희망적인 관측은 할 수 없었다.
두 고블린과 싸우는 그들의 주변으로는 여러 고블린들이 포위하고 있어 도망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가까이 있는 또 다른 동료 칼라인은 아직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그도 상황은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침울한 표정을 보니 그의 심정이 어떤지 정도는 그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하하..."
패배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미치광이처럼 무기를 휘둘러대던 그라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무력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동료 칼라인은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 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대로 손쉽게 적들에게 그 목을 헌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쿠드라스는 틀렸나...'
그는 냉정한 눈빛으로 고장난듯이 허탈한 웃음만을 흘리는 동료를 확인했다. 몇번 움직일 정도는 되어보였지만, 온 몸이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 그가 한계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래서 전부터 싸울때는 침착해야한다고 일렀었거늘'
각자 개인끼리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간혹 이처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동안 칼라인은 쿠드라스에게 조언을 했었지만 지금까지 들은채도 하지 않았던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말았다.
'으음... 쿠드라스가 힘을 조금만 더 비축해두었었다면 돌파정도는 충분했겠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그러긴 힘들겠어. 그렇다고 미끼로 써먹기에도 이미 힘이 다했으니...'
상황은 되짚으면 되짚을수록 뒤집어엎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그의 힘만으로는 지금 이 상태에서 빛을 보기란 힘들었다.
그나마 그에게 다행인 것은 소강상태가 상당히 길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고블린들에게 여유가 생겨서 가능한 것이지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 것 만으로도 그에게는 감지덕지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는, 곧 결정을 내렸다.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을 내린 이상, 그에게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소강상태는 필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곧장 행동으로 나섰다.
///
외곽쪽에서의 고블린들과 병사들의 싸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구덩이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도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식귀들은 몸에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으며, 곳곳이 결여된듯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촉수를 휘두르던 식귀의 촉수는 더 이상 휘두른다고 보기 힘들정도로 짧아져 있었으며, 단단한 돌덩이와 같은 피부가 자랑이던 식귀의 온 몸은 균열이 쩍쩍가있는 모습이 더 이상 견고하다고 부를 수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인간들 측이 멀쩡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다만 식귀들의 몰골과 비교했을때 좀 더 멀쩡한 모습일 뿐이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그들은 사지는 멀쩡하게 붙어있으니, 식귀들에 비해서는 멀쩡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결국 두 식귀의 목을 베어냄으로서 인간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식귀들의 목을 베어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들은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으며, 그들의 시야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잡히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다.
당장은 식귀들의 위협 때문에 그리고 동료 두명이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서 가세한 상황이니 일단 미뤄두었을 뿐이었다.
식귀에 대한 위협을 차단한 지금 그들이 새로운 적인 고블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아직 이곳에 있는 병사들과 성주의 가신 네명은 고블린들을 상대하던 병사들에게 무슨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식귀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고블린들과 전투가 벌어진 곳 까지의 거리가 제법 된다는것도 요인중 하나였다.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있었다. 무엇보다도 건물들이 즐비해있으니 현재로서는 운 좋게 희끗하게 보이는 모습이나, 아니면 건물들 사이로 울려퍼지는 소리만이 그들이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일단 이대로 구덩이를 방치해 둘 수는 없기에 구덩이를 지켜야 할 병사들을 대기시켜 놓고는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두명의 가신이 앞서 간 길을 쫓아갔다.
무작위로 퍼지기 보다는 두명과 합류해서 고블린들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앞서간 동료와 생각보다도 일찍 합류 할 수 있었다. 비록 뒤쪽으로 고블린들을 달고 달려오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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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는 자신들에게 덤벼들던 두명 중 한명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부렸다. 여유 부리는 부하들을 재촉한다면 얼마든지 순식간에 전투를 끝낼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남은 한명이 다른 한명을 버리고 달아나 버리는 모습에는 순간 벙찌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료를 위해서 그가 본래 잡고 있어야 하는 포지션마저 버렸던 이가 동료를 버린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 원칙은 어디까지나 더 나은 전력을 보존하는 쪽으로 쏠려있었으니, 가망이 없는 전력을 굳이 그대로 끌어안고 갈리가 없음을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도주는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루프스는 이곳으로 많은 고블린들을 이끌고 오지 않았으며, 애초에 이곳에 도착 했을 때 부터 모든 병사들을 몰살시키겠다는 목적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하나. 보다 이 성의 인간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았을 때 그에 가장 유력한 방법은, 이 자리에 있던 여섯의 실력자들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따로 떨어져서 구덩이를 막아내는 방어선이 되고 있던 병사들을 구역별로 나누어서 지속적으로 포위섬멸해왔던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의 전력이 훨씬 강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미끼를 물고 식귀를 상대하던 여섯 중 두명이 그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으로 찾아왔다. 찾아온 둘을 몰아세우니 이번에는 다른 하나가 도주하더니 어느새 식귀들과 결판을 내고 앞서갔던 둘을 쫒아온듯한 넷과 합류함으로서 굳이 고블린들이 찾아갈 수고를 덜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