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괴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는 식귀들과 그런 그들을 막아서는 인간들의 균형은 한참이나 팽팽하게 이어졌었다. 그러나 이미 앞선 전투를 통해 부상을 입고 있던 식귀들은 비록 전력적으로는 우세했으나, 체력적으로 만전이었던 인간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우세를 점치기에는 무리였다.
하물며 그들 사이에 그들보다 한단계 밑이라지만, 간신히 상대가 가능한 인물이 여섯이나 있으니 그들이 이기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쪽은 뚫기 위해서, 다른 한쪽은 막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그렇다면 실력이 좀 딸린다지만, 충분히 그들을 막을 정도는 되며, 체력적으로도 숫적으로도 많은 인간 측이 점점 우세를 점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둘의 격돌은 서로의 체력을 깎아먹은 것도 사실이었고, 인간 측에서도 부상자가 발생하는것도 필연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루프스가 양측 모두 어느정도 지친 지금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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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악!"
"아아악!"
"뭐...뭐야?!"
계속되는 전투로 식귀들의 부상이 더더욱 심해지면서 병사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앞서나갔던 팀의 생존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안도할수 있는 것은 정말 잠시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병사들의 후방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구덩이와 가까운, 식귀들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병사들은 한눈을 팔 수 없었지만, 귿르보다 살짝 후방에 있는 이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후...후방! 후방에 적 출현!"
뒤쪽에서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적의 정체를 알아내는데도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적은 고블린!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적들의 정체는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들이었다.
"어... 어떻게 고블린이 여기까지?!"
"문지기들은 뭘 한거야!"
다름아닌 성 안으로 들어와 활보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그무엇보다도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식귀들이 지하에 구덩이를 뚫어서 나타난것도 골치하픈 지경인데,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고블린들이 뒤를 치니 병사들이 놀라지 않는게 오히려 무리였다.
선두에서 식귀들과 싸우고 있던 여섯에게도 병사들의 외침은 충분히 귀에 들어왔다. 그들도 고블린들이 이곳까지 나타난 것에는 놀랐지만,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나마 식귀들과의 전투가 어느정도 수월해지면서 각각 하나씩 정도는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는게 그들 나름의 위안이었다.
한쪽에서는 미친듯이 식귀를 향해 공격을 날리던 쿠드라스가, 다른 쪽에서는 병사들을 지휘하기 위해서 칼라인이 직접 나섰다.
식귀들과의 전투대열에서 빠진 둘은 재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옮겼다.
둘이 사라지자 식귀들을 속수무책으로 몰아넣던 기세가 줄어 비교적 팽팽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몸을 뺀 둘은 곧장 고블린들이 나타났다는 후방으로 달려갔고, 그들은 곧 무차별적으로 병사들을 학살하듯이 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캬갸갸"
푹-
단검을 들고 있는 고블린들이 병사들을 향해 최대한 근접해서는 목에 칼침을 박아넣었다. 고블린들은 그들의 생각보다 빨랐으며 그곳에 도착한 둘은 그들 하나하나가 어쩌면 자신들과 비등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쿠드라스도 칼라인도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참전이 병사들을 더 살릴 수 있는 길임을 이해하고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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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는 어느새 나타나 그의 휘하에 있는 고블린들을 공격하는 두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나마 고블린들을 위협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여섯 중 두명임이 분명했다. 실제로 식귀들과의 전투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루프스는 고블린들과 두 인간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가 직접 참전한다면 눈 앞의 인간들을 참살하는 것 쯤은 그리 힘들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전투 하나 하나가 그의 부하 고블린들의 경험으로 녹아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들이 한단계 나아 갈 수 있는 양분이 되어 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전투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희생이 나오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드는 전개는 아니기에, 그런 경우에만 손 쓰기 위해서 그저 대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나설 일은 그다지 나오지 않을 듯 싶었다. 이번에 그가 데리고 온 고블린들은 모두 은밀행동을 특기로 하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적의 뒤로 몰래 숨어서 다가가 단번에 목에 단검을 찔러넣는 실력이 대단한 이들이었다.
비교적 정면에서 싸우는 방식에는 약한 이들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둘씩 짝을 지어서 다니는 것으로 약점을 보완한 상태다. 그렇기에 고블린들은 일부러 자신보다 약한 병사들을 상대하면서도 합공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그들에게 다가온 두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행해지고 있었다.
도끼를 든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병사들을 공격하는 한 고블린을 향해 빠르게 도끼를 내리쳤다.
방금 막 한 병사의 목을 따버린 고블린은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는 도끼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제법 거대한 크기였지만, 그 속도는 크기가 무색하게도 매우 빨라 그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도끼가 코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어지간해서는 피하기도 힘들어보이는 일격을 그는 손쉽게 피해보였다.
휘익-
단 한걸음으로 옆으로 도끼가 비껴나도록 몸을 움직였고, 그의 예상대로 도끼는 단숨에 그를 지나쳐 지면을 내리쳤다.
콰앙-!
도끼에 실려있던 힘이 상당했음을 증명하듯이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서 도끼의 주인은 조금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육체를 가르는 파육음이었지, 지면을 갈라내는 파격음이 아니었다.
그는 열을 내면서 자신의 도끼를 피해낸 고블린을 향해서 연달아 도끼를 내리쳤다. 고블린은 여전히 그런 공격을 손쉽게 피해냈다. 언뜻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듯 했지만, 그의 몸에 생기는 상처라고는 조그마한 생채기가 전부라는 것이 그의 실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끼의 주인은 얄밉게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는 고블린의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광분했다. 그가 광분하면 광분할수록 도끼의 속도는 빨라졌고, 고블린도 마찬가지로 여유를 점점 잃어가는 듯 피해내는 간격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도끼를 휘두르는 이에게 크나큰 빈틈이 생겨났다. 정확히는 빈틈이라기보다는 광분하면서 좁아진 시야가 그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한창 공격을 피해내는 고블린에게는 다른 고블린들과 마찬가지로 짝이 있었고, 지금까지 숨죽이면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그 짝은 상대방의 빈틈이 드러나는 듯 하자 망설임없이 그 목을 꿰뚫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챙-!
그렇지만 고블린의 의도는 목을 바로 목전에 두고는 실패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목을 노렸던 눈 앞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그를 막을만한 실력을 지닌 인간은 이곳에 단 한명 뿐이었다.
같이 달려왔던, 그리고 잠시 흩어지는 병사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다른 한명과 떨어져있던 그는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눈 앞의 고블린과 대항 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는 그 자신과 그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도 저절로 한 고블린과 대치하게 되었다.
두 고블린과 두 인간들의 대치는 상황이 어떻게 튀어나갈지 모를 정도로 긴장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