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괴변
프리트와의 대화를 끝낸 루프스는 모여있는 고블린들과 함께 하루를 휴식으로 보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성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처들어올거라 예상하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딱히 그들의 모습이 걸리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정찰까지 진행한 고블린들도 약간 지친 모습이 보였기에 하루동안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다음날 해가 떠오르자마자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다시 성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다만 프리트와 그의 부하들은 거점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 남아있기로 했다.
성을 향한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이미 한차례 침투한 전적이 있기 때문인지, 처음보다도 쉽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일부는 식귀들이 나타난다는 구덩이 부근을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 알리는 역할이었다. 인간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구덩이 부근을 막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안으로 진입해 있었지만, 만일에 대한 대책이었다.
그리고 다른 고블린들과는 뿔뿔이 흩어졌다.
홀로 움직인 루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긴가'
그가 도착한 곳에는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물을 기르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의 목적지는 다름아닌 성 안에서 필요한 용수들을 끌어올리는 우물가였다.
강가는 성에서 제법 떨어진 장소에 있지만, 성 안의 주민들이 물을 주로 끌어오는 곳은 이곳이나, 비가 내릴때 미리 받아두는게 보통이다. 강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먼데다가 대체제가 있으니 그쪽으로는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우물가가 한 곳이 아닌 수십여 장소에 놓여있으니 굳이 멀리 있는 강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우물가 부근에는 많은 인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루프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로 옆을 스치듯이 지나가도 눈치채는듯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우물가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어 혼잡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루프스에게 유리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다른 감각으로도 그를 포착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접촉으로 눈치채기 위해서는 상급 몬스터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일반 주민들이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을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가끔 일어나는 다툼으로 마구잡이식 싸움을 하는게 전부인 그들이 루프스를 눈치채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인원수가 많은 만큼 어쩔 수 없이 크게 접촉하는 경우도 워낙 혼잡하니 그가 들키는 경우는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바삐 물을 건져올리고 있는 우물가까이 다가간 루프스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그 중 조그마한 마른 지푸라기로 감싸인 무언가를 꺼내고는 우물 안으로 그 내용물을 풀어넣었다.
우물 안으로 희뿌연 가루와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내려갔고, 가루가 우물의 물과 접촉하는 것을 확인한 루프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빠져나갔다.
우물가에서 빠져나간 그는 구덩이를 감시하고 있는 고블린들과 합류했다.
병사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장소인만큼 들킬 염려가 가장 높은 장소였다. 그렇지만 루프스는 굳이 이곳을 합류지점으로 지정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병사들이 많이 머무르고 순찰도 주기적으로 실행되는 곳이었지만, 그들에게 들킬만큼 허술한 고블린들은 없다는 자신감이 그 첫번째 이유였다.
거기에 아마 인명피해를 걱정해서 거주민들을 퇴거시킨 듯 했지만, 그 덕분에 고블린들이 숨어들 장소가 많아진 것이 그가 이곳을 합류지점으로 지정한 두번쨰 이유였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병사들이 머무는데 이용하지만 그 중 일부는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는게 고블린들이 숨어들 장소가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병사들과 지휘관들 그리고 기사와 마법사들이 성 내부에서 가장 정예 병력들일 것이라는 짐작이 세번째 이유였다. 이곳에 있는 병사들을 미리 해치울수 있다면 이 성을 공격하면서 크게 이득을 보는 것이라는게 루프스의 생각이다.
"별 일 없었나 보군"
구덩이와 병사들의 감시를 시켰던 고블린들이 별다른 움직임 없이 감시를 지속하는 것을 본 루프스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고블린들은 지루한 감시만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구덩이와 병사들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 사이 다른 우물가로 향했던 고블린들이 하나 둘 씩 그들과 합류했다.
그렇게 고블린들 대부분이 합류를 완료했을 무렵, 루프스는 구덩이쪽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고블린이 도착했을 때. 구덩이에서는 전투를 여러번 거쳤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의 식귀가 나타났다.
전투가 없을 때 보통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들이 온 몸을 변이시켜서 나타난 것은 분명히 방금전까지 구덩이 안에서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음을 표현하는 증거였다.
그야말로 루프스가 원하는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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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귀들이 나타났던 구덩이. 그곳을 감시하고 있던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구덩이에서부터 나타난 식귀들의 모습에 대경실색했다.
병사들이 우왕좌왕 하면서 일순간이나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름아닌 조금 전에 구덩이의 안으로 병사들이 투입되었었다. 무엇보다도 구덩이의 안으로 투입된 병사들 중에는 혼자서 눈 앞의 식귀들 하나를 상대하는게 가능한 강자들이 셋이나 투입되었었던 만큼 병사들은 투입된 이들을 믿고있어 더더욱 방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도 정예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만일에 대비했던 만큼 투입되었던 이들의 두배에 달하는 강자들이 이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그 강자들 중 하나. 최고 지휘관인 칼라인이 고함을 치면서 병사들을 다그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나타난 식귀들을 둘러싸면서 포위진을 형성했다.
게다가 나타난 식귀들이 이미 상당한 상처를 입고 있는 모습이 깜짝놀라 무너져내렸던 병사들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시켜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나타난 식귀들은 이미 상당한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 앞서 투입된 이들이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다만 눈 앞의 식귀들이 나타난 만큼 그들의 생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병사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하지 않았다. 눈 앞의 적을 두고 힘빠지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이 포위진을 완성하자 선두로 이곳에 머무르고 있던 6명의 강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앞서나가는 모습에 식귀들도 위압감을 느꼈는지 일순간 주춤했다. 본능밖에 남아있지 않은 식귀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전력의 차를 느끼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일순간. 한걸음을 뒷걸음친 그들은 그에 반발하듯이 그보다 더욱 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앞서 나타난 6명은 만만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들의 뒤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그들에게는 종잇장과 다름이 없음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귀들은 여섯이 간격을 벌리고 선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본능만 남은 이들이 일부러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이들을 향해 다가가지 않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방책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여섯명을 떨쳐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식귀들이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앞장선 여섯이 옆을 지나쳐서 병사들을 향해 공격하려는 식귀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구덩이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귀들과, 구덩이를 막아서고 있던 병사들 간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발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