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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03화 (303/374)

303화

괴변

병사들은 큰 손실 없이 식귀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놈들 하나를 잡으면서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던것과 비교했을 때 장족의 발전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병사들도, 그들을 지하통로로 들어가게 만들었던 바르무어 성의 수뇌들도 그저 좋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 상대하는 것도 버거웠던 식귀를 열도 안돼는 병사들의 희생만으로 이겨냈다는 것은 충분히 사기가 올라갈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하 통로에서 식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애초에 식귀들이 이용했던 통로였으니 그들이 나타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과연 지금까지 나타났던 것들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식귀들일리가 없다는 점이다.

단 네마리의 식귀들을 위해서 이렇게 긴 통로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그들의 생각은 타당했다. 실제로 식귀들을 이겨낸 병사들은 부상병들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전진했지만, 얼마 안가서 발견된 식귀들 때문에 후퇴해야만 했다.

바르무어 성에서는 후퇴를 결정한 병사들의 보고를 듣고는, 식귀들의 서식처가 된 구덩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를 나눠야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게 좋겠는가?"

바르무어 성의 성주, 중후한 분위기의 중년 남성. 베오룬 바르무어가 자리를 채우고 있는 그의 가신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 구덩이는 너무 위험합니다. 식귀라고 불리는 그 변종 고블린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특히나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이곳으로 처들어오는 기색이 없는 지금 그곳을 완전히 매워버려야 합니다"

한 가신이 그를 향해 지하 통로의 폐쇄를 간언했다. 적들의 숫자도 놈들의 의도도 알 수 없는 지금 적들의 통로가 되어주는 그런 위험한 장소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안됩니다. 그곳이야말로, 그 불길한 놈들의 본거지로 이어져 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여러번의 정찰을 시도해도 알 수 없던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인데, 그런걸 단순히 위험하다고 덮어 둘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의견은 그곳을 없애지 말고,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험한 놈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본거지도 알 수 없는 전력도, 세력도 알 수 없는 적들에 대한 유일하다시피 한 단서를 허무하게 날릴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맞습니다. 최소한 저들의 본거지 쯤은 알아두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녹색깃발 기사단 때문인가...'

베오룬은 통로를 이용해서 식귀들의 본거지를 알아보자고 주장하는 가신들을 살펴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얼마전 식귀들에 의해서 죽은 녹색깃발 기사단의 이미 죽은 기사단원들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는 모습은 베오룬에게도 씁쓸하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 의견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통로를 조사해서 놈들의 본거지를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통로가 성의 바깥에 만들어졌을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버젓이 성 안에 저런 위험한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칫했다가는 민간인들이 휘말려서 불필요한 희생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통로를 막아내더라도, 놈들이라면 새로운 길을 뚫을수도 있습니다. 통로를 막아선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회의가 길어질수록 양측의 의견은 서로 부딪히면서 점점 갈등이 커져만 갔다. 그들의 회의는 하루가 지나가도록 끝을 맺지 못했다.

///

루프스와 고블린들이 슬금슬금 바르무어 성에 도착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기습을 위해서 이곳까지 왔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공격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일단 성의 주변에 거점을 잡은 그들은 몰래 성 안으로 들어섰다.

프리트와 그 부하들은 이런 잠입에는 어울리지 않고, 애초에 정찰을 위해서 데리고 온 것도 아니기에 거점을 지키도록 지시해두었다.

그리고 루프스는 몸이 날랜 고블린들과 함께 담을 넘어서 성의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에 머무는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후드를 쓰고 있음은 물론이고, 각자의 방법으로 눈에 띄지 않도록 각각 은신한 상태로 움직였다.

그가 몰래 숨어들어간 성. 바르무어 성은 그의 생각보다도 번화한 곳이었다. 과거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던 요새와 르윅 성과는 그 규모에서부터 달랐다. 고블린들이 차지했던 두 곳이 변경 중의 변경이었다면, 이곳은 변경에서 벗어나,상당히 번성하고 있었다.

루프스는 앞서 정찰조에게서 받은 보고로 이 성의 인원들과 전투를 벌인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을거라 예견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직접 찾아와서 확인하니, 상당한 피해정도로 끝나지 않고 자칫하면 전멸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성은 얼마나 큰지, 혼자서 모든 곳을 둘러보기에는 몇일은 걸릴 듯이 보였다. 그에 루프스는 함께 들어온 이들과 산개해서 성의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들어온 고블린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서 각각 둘에서 셋정도가 모여서는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고블린들이 정보 수집을 위해서 헤어지자 루프스도 성의 조사를 위해서 이동했다.

주점이나 광장, 혹은 공원과 같은 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지만, 루프스도 그리고 고블린들도 그런 장소로 가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다녀간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는 일부러 피해다녔다.

다른 고블린들이 어찌 행동할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을 피해다니다 보니 루프스는 저절로 뒷골목 쪽으로 숨어들어가게 되었다.

"흠..."

뒷골목으로 들어선 루프스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건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차근차근 파악해나갔다.

기본적으로 숨어다니면서 기습을 한다는걸 기본 전술로 깔고 있는 그로서는 이런 장소의 지리만큼 중요한 정보도 없었다.

뒷골목의 건물들은 들쭉날쭉 지워져있으며, 도보를 위한 길도 제대로 정비되어있지 않았다. 간혹 지나가는 인간들이나,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순찰병들의 대화를 훔처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은 빈민들이 살아가는 장소였다.

순찰병들이 나타났을 때는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순찰병들에게 들키는 일은 없었다.

'이런 장소까지 순찰을 도는군'

정비되지 않아 난잡하게 들쭉날쭉 늘어선 건물들과 폭이 마구잡이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길목은 순찰하기에 그리 좋은 여건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각지대도 많이 생겨나니 순찰을 돈다고 하더라도 그들 시야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곳의 병사들은 그런 곳까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별로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루프스는 저들의 행동이 의미없다고 보지 않았다.

병사들이 이런 외진 장소까지 순찰한다면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행동은 치안 향상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이 지켜준다는 안도감에 성 안의 주민들도 더욱 생업에 집중 할 수 있다.

게다가 단순히 치안을 도는 병사들이 훈련이 안되어 있다거나, 약한 것도 아니어마.

무의식중에도 서로 발맞춰 걷는 모습이나, 잡담을 나누면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성으로 처들어왔던 이들과 비견해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 치안병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루프스는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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