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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02화 (302/374)

302화

괴변

루프스와 프리트가 출발하던 날. 그들의 목적지인 성. 바르무어에서는 식귀들이 나타났던 구덩이의 조사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저벅 저벅

덜컹 덜컹

병사들이 지하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병사들이 진입한지 제법 시간이 지나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식귀들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태까지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대장님"

그러나 역시나, 식귀들이 나타났던 장소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한 병사가 이곳의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순찰조장. 현재는 정찰대장이 되어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조용한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이냐?"

그에게 말을 건 병사는 이 자리에 있는 정찰대 중 귀가 가장 좋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조그마한 목소리에서 불길함을 느꼈기 때문인가, 정찰대장은 자신 또한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시야에는 안보입니다만... 앞쪽에서 누군가가 걷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지만 정찰대장은 그의 말에도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정면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니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곳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주의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터벅 터벅

덜커덩 텅텅

얼마나 조심스럽게 나갔는지 다수의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발걸음을 내딛는데도 울리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내고 있는 소리라고는 오로지 그들이 뒤에서 옮기고 있는 물건에서 나오는 소리 뿐이었다. 그 자체로 제법 시끄럽긴 했으나, 그렇기에 정찰대장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 속에서,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와는 어딘가 다른 터벅터벅 걸어오는 듯한 소리가 그의 정면에서 부터 들려왔던 것이다. 귀가 좋았던 병사가 그에게 보고를 했을 때 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렇게 금세 혹시나 하는 생각은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루엣 또한 병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상대가 이족보행을 한다는 사실과 그리 큰 덩치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보다 앞서 들어왔던 정찰대는 없었으니, 보나마나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을 식귀임이 분명했다. 아직 확실한 정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었으나, 병사들이 경계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병사들이 경계심을 가지고 점점 다가오는 식귀로 추정되는 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놈도 병사들을 발견했는지 느긋했던 움직임이 갑자기 빠르게 바뀌었다.

꾸위이이이익-!!

마치 돼지의 멱을 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놈은 점점 빠르게 다가오더니 이내 그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을 덮쳤다.

끼기긱-

"크윽"

식귀가 나타나면서 놈을 견제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던 방패병이 방패로 돌진해오는 놈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식귀가 생각보다 강한 놈이었는지 식귀의 공격을 한차례 막은 방패병이었지만, 한번 휘청거린 몸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방패병이 그를 대신해서 식귀의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버텨! 좀만 더 버텨라!"

전위에 서서 서로 적 식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방패병들의 뒤로 정찰대장이 그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끼릭 끼릭

"조금만 더! 더 빨리!"

끼릭 끼릭

정찰대장은 상당히 다급한 눈치로 기구를 다루는 병사들을 재촉했다.

"장전 끝났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을 얼마나 재촉했을까, 슬슬 정면을 막아주고 있던 방패병들도 버티지 못하는 듯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하고, 간신히 소수만이 버티고 있을 무렵. 기구를 다루고 있던 병사들로부터 그가 그토록 원하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놈을 향해 조준해라!"

확 얼굴이 밝아진 그는 그가 가지고 온 무기를 상대 식귀를 향해 조준했다. 지금의 공격이 놈에게 결정타를 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놈들을 겨냥하고 만든 무기니 최소한 치명타는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조준 완료!"

"발사!"

정찰대장이 발사를 외치자, 전열에서 식귀의 공격을 막고 있던 방패병들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길을 터주었다. 그렇게 드러난 무기는 다름아닌 기존의 발리스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발리스타였다.

수차례 식귀들과의 전투를 겪으면서 인간 측은 무수한 희생을 겪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놈들보다 전체적으로 크게 약한 병사들의 피해는 하나를 상대할때 마다 적게는 백에서 운이 없을 때는 일천이 넘는 수가 희생을 치뤄야 하는 상황까지 겪는 경우도 상당했다.

자연스럽게 적은 피해로 적들을 상대할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지금 식귀를 향해 내쏘아지는 발리스타였다.

몬스터들이고 인간들이고 보다 높은 단계에 들어서면 보다 밑에 있는 자들에게 죽기는 커녕 피해를 입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딱히 하위에 위치한 이들이 상위에 있는 이들에 비해서 '격이 낮다'는 이유로 피해를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하위에 위치한 이들의 힘과 능력이 적들의 피부와 근육을 갈라내기에 부족한 것 뿐이었다.

보다 강자의 반열에 들어섰을 때. 몬스터들과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한 신체 능력이다. 그렇기에 다수의 병사들에 의해서 몇단계는 격상에 있는 식귀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 가능했다.

보다 강력한 물리력, 혹은 화력만이 등급에 상관없이 승리를 쟁취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걸 위해서 인간들은 저들 나름대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유효한 방법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런 밀폐된 동굴과 같은 공간에서라면, 특히나 일직선으로 뚫려있는 길 뿐인 이곳이라면 발리스타는 충분히 식귀의 목숨을 끊을 수 있으리라 짐작되고 있었다.

그것이 이들이 굳이 저들 몸집보다도 몇배나 큰 발리스타를 끌고 온 이유이며, 이번 공격 한방으로 식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콰드득

끼이잇-!!

멱이 따이고도 소리가 터져나오는 듯한 바람새는 소리가 섞인 비명이 울려퍼졌다.

발리스타의 화살이 정확하게 식귀를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급소를 꿰뚫지는 못했으나, 삼분지 일의 육신이 뜯겨져나가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데 성공했다.

터엉-

"흐아앗!!"

그렇게 비틀거리던 고블린을 향해 한 방패병이 방패를 앞세워 돌진했다. 비틀거리는 놈의 모습이 위태로워보였던것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끼기이이기이잇

방패병이 휘두른 방패는 그의 생각보다도 식귀를 향해 강력한 피해를 주었다. 특히나 그가 식귀의 뜯겨져나간 몸체를 공격했던 것이 유효했다.

식귀는 그의 공격에 견디기 힘든지 괴성을 내지르면서 뒤로 물러나려했지만, 그를 노리고 있는 것은 방패병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콰직-

내면의 피륙은 확실히 겉보다 그 내구성이 떨어졌는지, 한 병사가 내지른 칼이, 선홍빛을 내뿜는 식귀의 옆구리를 꿰뚫어 버렸다. 깊게 파고든 것은 아니었으나, 식귀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괴성을 내지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놈을 향해 한 병사가 검을 높이 치켜들더니 놈을 향해서 내리쳐버렸다.

버걱

고통에 몸부림치던 놈의 목을 향해 떨어져내린 검은 그대로 반쯤 파고들어갔다.

비록 목을 잘라낸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 식귀의 명줄을 따기에는 충분했다.

끼이이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놈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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