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괴변
프리트와 엘라. 하나의 고블린과 하나의 엘프는 여전히 그가 있는 성채에 머무르고 있었다.
본래 엘라는 엘프들의 생활을 돌보기 위해서 군락지 안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급한 일이 없었다면 그녀가 바깥으로 나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의 자식인 쿠알론이 이끌던 부족을 기반으로 해서 나타난 식귀들도 그렇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새롭게 나타난 인간들도 상당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루프스로서는 둘 모두 심각한 위협이었지만, 서로 종류가 다른 위협이었다. 식귀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정보를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개체 하나의 힘은 강력하다. 그들의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아마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뿐일 것이다.
기껏 모여서 다닌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수십정도 뿐이었다.
반면에 인간 병사들은 그런 식귀들과 정반대의 위험성을 띄고 있었다.
질 자체는 식귀들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루프스의 부하들보다 떨어지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그들이 동원 할 수 있는 수 있는 물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게다가 소수나마 상급과 최상급 고블린들을 감당하는게 가능한 적들도 있으니, 어찌보면 식귀들 보다 위험한 적들이었다.
그런 두 적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루프스는 둘을 불러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엘라와 프리트가 루프스가 있는 집무실로 찾아온 것은 그가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번에 나타났던 이들에 대해서 알아낸게 있다는게 뭐죠?"
그의 집무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엘라는 루프스를 향해 독촉하듯이 물었다.
"자자, 일단 진정하시지요. 족장께서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릴 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엘라의 모습에 프리트는 그저 진정시키듯이 조용히 타일렀다. 엘라로서는 이미 과거 인간들과 좋지 않은 일이 있었으며, 그들의 공격을 몇차례나 받으니 그들에 대해 알아낸게 있다는 소식에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엘라가 어느정도 진정되는 듯 싶자 그제서야 루프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됐나보군"
그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프리트와 엘라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가 말을 이었다.
"놈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던 놈들이 도주할때, 도주 경로 근처에 있는 정찰조에게 그들의 뒤를 밟도록 지시를 해두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처들어왔던 놈들과는 달라보이는게 좀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긁적 긁적
고블린의 듬성듬성 솜털이 나있을 뿐, 아무런 머리칼도 없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루프스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좀 전에 그들이 돌아왔지"
그가 보냈던 병사들이 돌아왔다는 말에 엘라도 프리트도 눈을 빛내면서 더욱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음짓던 루프스였지만, 곧 그는 웃음을 지우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과거 요새에 있을 때 우리를 공격했던 것은 이 성의 성주였지. 그 외에도 그와 연합을 맺고 있던 성주들이 둘이나 있었지. 지금이야 저들끼리도 바쁜 모양이라 신경쓰지 않아도 문제 없을듯 하다만은"
루프스는 문득 과거 요새에 처들어왔던 포로들. 그리고 성을 손에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손아귀로 넘어온 포로들을 쥐어짜듯이 정보를 얻어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이번에 처들어온 이들도 마찬가지로 성주들 중 하나더군. 복식이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놈들의 본거지가 이곳에서 떨어져 있는데다가, 이번에 처들어왔던 놈들은 단일세력이더군"
"단일세력이라면?"
프리트가 놀란듯이 되묻는 모습이,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듯 싶었다.
"그래, 단 하나의 성주가 쌓아올린 전력들 중 일부가 바로 놈들이었다. 뭐, 함정 전문가들이야 따로 고용했다는 모양이다만... 병사들의 훈련도를 보면 그리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듯이 프리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적들의 모습을 두 눈에 담은바가 있기에 더욱 그에게 동조했던 것이다.
"지휘관이 어설펐기에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만... 만에하나 제대로된 지휘관이 그들을 통솔하고 있었다면, 상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음, 내 생각에는 그래서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군"
함정 전문가들이 고용된 순간부터, 병사들도 이곳에 함정이 무수히 설치되어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직접 처들어가기보다는 상대를 끌어내거나, 아예 함정이 통하지 않을정도로 땅굴을 파서 처들어가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에 처들어온 이들은 정직하게 하나하나 함정을 해체하면서 성벽을 향해 다가왔었다.
명백히 불리한 포지션을 잡고 있었지만, 당시 루프스가 보기에 병사들은 그에 대해서 별달리 불만이 없어 보였다.
"아마 훈련 때 부터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그대로 수행해야한다는 식으로 거의 세뇌되듯이 교육받은 거겠지"
"그러고보니..."
루프스의 말에 프리트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항복하고 포로로 잡혔던 병사들이 순순히 고블린들의 지시에 따랐었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그들과 같은 몬스터들의 명령을 받기 싫다고 반항하는 이들이 나타나도 이상이 없음에도, 누구 하나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 포로들이 생각 이상으로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영향이 있을거야"
프리트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알겠다는 듯 루프스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건지?"
새롭게 나타난 적들이 꽤 성가신 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프리트는 그에게 물었다. 그와 엘라를 부른 것을 보면, 루프스가 생각한바가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정면대결은 피해야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지진 않더라도 제법 큰 피해를 입을테니까"
병사 하나와 그가 이끄는 고블린 하나의 전력은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고블린 하나가 천이고 만이고 감당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산해서 상대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저들이 일부러 분산해서 덤벼들리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전력차가 많이 나는 병사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만만치 않은 적들이 숨어있다면 그 자체로 상당히 성가셔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와 부족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기습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면으로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면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동시에 그는 그의 구역에서 싸우기 보다는, 적들의 구역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기습은 그런 그의 취향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공격 방식이다.
"다만, 기습이라고 해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놈들의 품 안에 독을 심어두는게 목적이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프리트와 엘라에게 그는 그에 한마디를 더 첨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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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가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의 표적이 된 오르셰와 중년 남성의 가문은 귀찮은 상황에 빠져 있었다.
캉- 카가강-
그들의 성의 한 구석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병사들과 그들도 모르게 성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변종 고블린, 식귀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놈들이 성의 안에서 나타났음은 분명했다.
성벽 어디에서도 뚫린 흔적은 없으며, 그 희생자들도 이 주변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변종 고블린들의 후방에 위치해 있는 구덩이가, 그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를 짐작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