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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97화 (297/374)

297화

괴변

병사들을 상대하는 루프스는 그를 향해 모여드는 병사들을 감당했다. 늪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그의 동족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병사들은 그의 생각대로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를, 그리고 그의 분신을 상대하는 병사들은 그들이 펼칠 수 있는 최선의 합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두에 선 병사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움직임을 최대한 봉쇄했다. 특히나 초근접으로 몰아붙여 그가 다른 병사들에 비해서 월등한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휘익-

휘파람 소리가 불리면서 병사들은 한꺼번에 뒤로 물러나 루프스 혹은 그의 분신과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 그를 노리고 화살이 떨어져내렸다.

궁수들도 상당한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는지 곡사로 쏘아냈음에도 대부분의 화살들이 정확하게 루프스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마치 비처럼 떨어지는 화살들은 거리가 벌려진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려는 그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병사들이 한순간에 그와 벌린 간격은 루프스나 그의 분신이라면 단숨에 줄일 수 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병사들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 한 뒤 날린다면, 그가 맞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차례 그에게 아군이 희생된 병사들도 지금은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근접 전투를 벌이고 있는 방패병들과 검병, 그리고 창병들과 원거리에서 그를 노리는 궁병들의 연계가 중요했다.

그들의 연계가 제대로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 이런 곳에서 들어나고 있었다.

그가 화살을 막아내면 다시 병사들이 달라붙어서 그의 체력과 기력을 빼내듯이 공방을 주고받는다. 그 동안 궁수들도 다시 공격을 준비하는 연계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루프스도 병사들이 그의 힘을 빼기 위해서 이렇게 달라붙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상처까지 입으니, 충분히 이길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에게 덤벼든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루프스가 일부러 상처를 입어가면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도 병사들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에게 모여들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병사들은 머릿속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생각으로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한자리에 묶여서 힘까지 제한하며 적들을 상대하던 루프스다. 그를 상대하는데 아무리 병사들이 모인다고 해도 그가 숨기고 있는 실력까지, 실력차이가 매우 크게나고 있었다.

결국 그와 분신체 넷을 향해 모여든 병사들이 최대치로 포화될때까지 모이게 기다린 그는, 다른 병사들이 움직이기 전에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휘익-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것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한순간에 한 병사를 향해 다가선 그는 도끼가 아닌 손날을 휘둘렀다.

그의 손날은 병사의 몸을 지나갔고 병사의 몸은 큰 충격에 찢겨나간듯 너덜거리면서 둘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루프스는 표홀하게 움직이면서 도끼를 꺼내들어 병사들을 향해 내리찍었다.

퍼억-!

"꺽!"

콰드득- 쩌억-

"...!"

"흐크-"

사방에서 도끼로 찍어내리는 소리와, 그에 의해서 갈라지고 쪼개지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루프스는 한손에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손도끼들을 병사들을 향해 집어던지고, 반대쪽 손에는 애용하는 도끼를 들어 병사들을 향해 직접 휘둘렀다.

그렇게 루프스가 날뛰기 시작한 즈음. 갑작스럽게 그들이 전투를 벌이는 대지가 늪지로 변해갔다.

"어...어라?"

"바...발이?!"

"히...히이익!"

묵묵히 아무리 동료가 죽어나가도 표정이 좀 일그러질 뿐 별다른 말도 하지 않던 병사들도 갑자기 바뀌어버린 환경에 당황해했다.

늪지에 발이 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과, 어느새 그들을 향해 다가온 그들이 상대하던 루프스와는 다른 고블린들의 출현은 그들을 당황케하기에 충분했다.

루프스와 프리트 그리고 그의 부하들의 연계야말로 루프스가 원하던 것이다.

늪지에 붙들린 병사들의 수가 제법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프리트들이 그리 오랜시간을 끌 정도로 강하고 정예화된 병력들이 아니었다. 루프스가 잠시 시간을 끌어주는 것 만으로 늪지에 갇힌 병사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충분했다.

루프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늪지로 들어서려는 병사들을 붙잡기만 했다.

그들이 늪지로 들어선다고 해도 프리트들이 패배할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안팎으로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하나나 둘 정도의 희생이 나올수도 있었고, 그거야말로 루프스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가 직접 나서서 병사들의 발을 묶어두었던 것이다.

루프스는 프리트와 부하들이 합류하자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살짝 뒤쪽으로 물러섰다. 병사들 대다수가 그는 물론이고 프리트의 부하들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약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기 전에 매우 소수였지만, 부하들 정도는 감당하는 것이 가능한 인간들이 셋 정도 그의 감각에 잡혀들었었다.

병사들과 전투를 지속하다보면 나타날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전선에서 한발 빠진 것이다.

그러나 루프스의 감각 어디에서도 그들이 잡혀들지 않았다.

"도망쳤나?"

눈을 게슴츠레 뜬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남아있는 병사들에서 부터, 그 바깥에 아무도 존재치 않는 벌판과 성까지 훑어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루프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프리트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향해 다가온 프리트가 그에게 물었다.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프리트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제법 힘을 지닌 놈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가 않아"

다시 한번 주변을 확인한 루프스가 말하자 프리트도 그와 같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분명히 그들이 이들을 총괄해서 지휘하던 놈들로 보였는데 어느새 사라졌군요"

그 무렵 병사들과 고블린들의 전투는 고블린들의 확고한 우세로 넘어갔다. 병사들은 죽는 이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비해서, 고블린들 측은 부상을 입은 이는 있지만 목숨이 위험할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전세는 확연히 고블린들에게 기울어졌다. 게다가 병사들인지 아니면 그들보다 조금 위에 자리잡은 하급 지휘관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을 통괄해서 지휘하던 최고 지휘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싶었다.

계속해서 고블린들을 향해서 격렬히 저항하던 그들의 기세가 한풀 꺾여있었다. 게다가 힐긋 힐긋 뒤를 돌아보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도주를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특히나 틈을 노리다가 갑자기 튀어나가듯이 도주를 시도하는 이들도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전장에서 한발 물러서있던 루프스와 프리트. 둘에 의해서 다시 잡혀와서 그들을 향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도 그 모습을 본 것인지, 아니면 도망치려던 이가 생각보다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때부터 하나 둘 병사들도 무기를 내려놓으면서 항복했다.

그러는 한편 병사들에 고용되어서 이곳까지 따라왔던 함정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로 병사들과 함께 저절로 항복하게 되었다.

루프스는 고블린들을 시켜서 그들을 포박시켰다. 이미 패배를 시인하고 항복하는 이들을 굳이 죽일 생각은 그에게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하기만 했을 뿐, 고블린들에게 부상 이외에 피해를 주지도 못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과 함정 전문가들을 포박한 그들은 포로들을 이끌고 다시 성의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은 다시 닫히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고블린들과 병사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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