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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96화 (296/374)

296화

괴변

뚝 뚝

"커허헉"

오르셰는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적들의 화살 공격이 멈췄으니, 무언가 다른 반응이 나타날것이라는 것 쯤은 짐작하기 쉬웠다.

그의 짐작대로 고블린측에서 반응이 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끼익- 쾅

천천히 열리는듯 하던 성문이 단번에 확 열어젖혀졌다. 제법 거대해서 일반 장정들로는 단순히 밀기만으로도 힘들어보이는 문이 단번에 열려버렸다.

그곳에서부터 여럿의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오르셰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데는 충분했다.

"이... 무, 무슨?!"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눈 앞에 들이댄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오르셰였다. 그리고 오르셰의 옆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몸이 기울어져가는 그를 부축하면서 의문을 느껴 그에게 물었다.

"왜그러십니까?"

온 몸을 덜덜떨어대던 오르셰였지만 그의 물음에 진정이 된듯 한숨을 내쉬면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한편 그에게 질문한 병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 저 놈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고블린들에게 책정했던 위험도를 몇단계는 높이게 만들 수 있는 놈이다. 젠장, 설마 고블린들 중에서 저런 놈이 나타날줄이야!"

오르셰는 고블린들의 족장, 루프스를 보면서 이를 가는 한편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났을 때 보여주는 반응과 유사했다.

그가 속해있는 가문.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싶으면 눈이 뒤집혀서라도 그들을 잡으려고 온갖 난리를 피우는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런 그들에게 고블린들에 대한 정보가 쌓여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눈 앞의 이들 이전 나타났던 고블린이 나타났던 것이 100여년이 넘어가는 상황이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는 온전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고블린들에 대한 자료를 훑어본 바 있는 오르셰였다.

그가 보았던 자료들은 고블린들의 생태라거나, 평균적인 신체적 능력치나 정신적 능력치. 거기에 역대 고블린들 중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놈들에 대한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살펴보았던 그 어떤 자료에서도, 눈 앞의 저 고블린과 비등한 덩치를 지닌 놈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명백하게 그들이 지금까지 만나본 고블린들 중에서는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놈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앞에 있는 탓에 주의가 집중되어서 순간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그의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는 고블린은 그와 비등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들 중 하나만 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병사들만으로 이길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와 비등해보이는 적이 하나, 그리고 그 외 그들보다는 약해보이지만 상당히 강해보이는 고블린들이 지금 병사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맞붙으면... 패배는 확실하다'

오르셰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생각했다. 이미 그는 고블린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화살만 날려댈때는 적들의 전력을 모르니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눈 앞에 두고 있는 적은 그런 희망을 산산히 부숴버리고 있었다.

이미 수차례 고블린들과 전투가 있었고, 그들이 덤벼드는 족족 패배한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은근히 고블린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그가 속해있던 가문에서 고블린들을 수월하게 지워나갔던 것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 고블린들과 충돌했던 이들, 르윅 성은 이미 고블린들의 손아귀로 들어갔지만 고블린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들 모두가 당한것은 아니었다. 그가 얻고자 했으면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지금 눈 앞에 있는 고블린들에 대해서 유효한 정보라고는 영역표시를 하듯 그들 영역에는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함정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끌고온 것이기도하다.

오르셰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고블린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들과 가까이 있는 병사들이 있는 장소를 늪지대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후방에 나타났던 고블린이 다수의 고블린들을 이끌고 늪지에 빠진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늪지에 빠지지 않은 이들은 그런 동료들을 돕기 위해서 다가가려 했지만, 그 또한 막혀버리고 말았다.

가장 먼저 튀어나와서 병사들을 상대하던 고블린이 한순간에 여럿으로 갈라졌다. 넷으로 갈라진 고블린은 동서남북을 점하듯이 늪지로 다가가는 병사들을 막아섰다.

병사들은 고블린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그들도 눈 앞의 적이 강한 개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여럿이서 덤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오르셰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생각이지만 고블린들에 대한 정보가 적은 병사들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오르셰는 혀를찼지만 첫 격돌은 그의 생각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생각보다 적이 약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것인지 그로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이야기하자면, 병사들은 고블린에게 달려들었고 달려든 병사들이 순식간에 당하고 말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 다르게 덤벼든 병사들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무사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적, 고블린을 향해 맹공을 펼치기까지 했다.

"어?"

그 광경에 오르셰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서는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가지고 놀고 있군'

고블린을 향한 병사들의 공격이 그를 몰아세우는 듯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몸에 상처가 생기고 있으니 병사들은 더더욱이 몰려들어서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늪지대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네 고블린들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르셰의 눈에는 그것이 그저 고블린의 조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처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전부 급소라고 할 수 있는 곳에는 조금도 병사들의 공격이 닿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병사들이 몰려듬에도 전세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전력은 늘어만 가고 있는데도 고블린의 움직임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오르셰가 보기에는 그것만으로 이미 고블린이 병사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잠깐 생각에 잠겼던 오르셰는 슬그머니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 정도의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그의 옆에는 그를 도와주는 병사가 있었다.

병사의 도움을 받은 그는 슬그머니, 그와 함께 온 병사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는 함정 전문가들도, 하다못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고블린들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슬그머니 움직였다.

///

루프스는 일부러 간신히 병사들을 감당 할 수 있는 듯한 움직임으로 병사들을 그가 있는 장소로 유도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함치면 그를 퇴치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의 힘만을 발휘했다.

아무리 몰려들어도 근접해서 그를 공격 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근접해서 전투를 벌일 때의 이야기였다.

병사들 중에서도 궁수는 있었다. 그리고 궁수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힘도 발휘하지 못했으니 그만큼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루프스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만큼 늪지에 있는 고블린들을 향한 공격은 줄어들어만 갔다.

늪지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고블린들 보다, 그들의 앞에서 동료들을 조금씩 줄이고 있는 네 고블린들이 더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루프스가 병사들이 그에게 가지길 바라는 생각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프스는 병사들을 향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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