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295화 (295/374)

295화

괴변

"쩝..."

루프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간편하게 처들어온 병사들을 물리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너무 무른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루프스는 마지막의 직전까지 아무런 힘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화살을 이용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궁수들에게 능력의 사용을 지시했다. 일부러 지금까지 억눌러뒀다가 단번에 적들을 몰아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역시 상대측에도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전력을 다한 궁수들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버리니 루프스도 곤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궁수들이 각자의 능력을 화살에 담아 쏘고 있지만, 그것도 각자 20~30발 정도가 한계였다. 충분히 많은 양이었고 어지간해서는 적을 전멸시키기에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에게 제법 피해는 입혔어도 치명타라고 할 정도로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키이, 키이"

"..."

더 이상의 여력이 없어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녀석들이 있는가하면 과하게 힘을 썼는지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전력을 다해서 쓰러져버린 녀석들을 보면서 루프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프리트와 그의 부하들이 그를 뒤따랐다.

저벅 저벅

지쳐서 헐떡거리는 고블린들은 물론이고, 돌과 기름 그리고 궁수들이 사용할 화살들을 옮기고 있는 고블린들 사이를 헤치면서 그는 직접 성문으로 다가갔다. 적들이 강하게 나오니, 그도 그만큼 신경써서 저들을 상대하고자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루프스와 프리트, 그리고 프리트의 부하들은 성문의 앞에섰다.

///

오르셰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무릎은 당장이라도 꺾일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속에서부터 역류한 피가 세어나오고 있어 그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커으으..."

확실히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방어막을 펼치고 있는 중임에도 절로 신음을 내뱉고 있는 그였다.

그렇게 공격을 막아서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방어막에서부터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와 병사들을 계속 두드려대던 화살공격이 그쳤다는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생각이 정확했는지 좀 전까지 시커멓게 화살에 뒤덮여있던 하늘이 다시 본연의 푸른빛을 뽐내고 있었다.

"화살이..."

휘청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 모습에 순간 긴장이 풀어진 것인지, 오르셰는 순간적으로 휘청였다.

그의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그를 부축하려했지만 그는 손사레치면서 거절했다. 힘겹게 다시 홀로 선 그는 공격이 그친 성벽을 노려보았다. 고생하게 만든 놈들이 있는 곳이다보니 절로 그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그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의 부하 병사들은 물론이고 고용해온 함정 전문가들까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오르셰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짜증이 치밀어오른 그에게 그런건 별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뭐하나! 얼른 나머지 함정들도 해체해라! 적들이 눈 앞에 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거냐?!"

버럭 고함치면서 병사들은 물론이고 머뭇거리고 있는 함정 전문가들을 독촉했다. 그리고 그의 고함은 그가 원하는대로 병사들과 함정 전문가 두 무리를 본격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쿠궁

달칼, 달칵 덜커덕 스응-!

이제 성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움직였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적들이 방심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는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오르셰의 병사들은 제법 피해를 입었다. 그런반면 고블린들은 소모품, 그 중에서도 화살을 대량으로 소모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손실은 없었다.

명백한 불리함이 표시되고 있는 전투였다. 그러나 병사들은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후퇴했다가는 지금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의 죽음이 개죽음임을 인정하게되는 꼴이다. 게다가 이번에 물러난다면 다음에 언제 기회가 올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르셰에게 더 이상 다음기회가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더욱 악을 써서라도 눈 앞의 고블린들이 점령한 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정비를 마치면서 함정들을 뚫고 있을 무렵이었다. 오르셰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확히는 일어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눈 앞으로 펼쳐졌다.

///

루프스가 성벽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데 소요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단숨에 부하들을 이끌고 루프스는 성문으로 다가갔다.

'직접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만...'

실제로 굳이 그가 나서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아직까지 나서지 않은 적 병력들이 있지만 대다수가 고블린들의 맹공으로 제법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저들의 남은 전력은 그의 부하들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괜한 희생을 낼 필요도 없지'

아무리 전력에서 차이가 난다지만 루프스가 참여하고 안하고는 피해의 규모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이들이 끝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쓰였던 식귀들과도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치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루프스는 이곳에서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직접 나섰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성문의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루프스는 성문을 열었다. 성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의 눈에 적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함정 전문가들이 함정들을 하나하나 파해치고 있었다. 사실 적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함정을 설치한 목적의 절반은 이룬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눈 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은, 그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먹혀들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적들을 눈앞에 둔 루프스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저들 중 2할정도가 전투직이 아니다. 오로지 함정을 빠르게 해체하기 위해서 보내진 이들일 뿐이다.

함정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병사들에겐 짐덩어리와 같은 이들이었다.

적들이 지닌 힘을 파악한 순간부터 루프스는 빠르게 앞으로 짓쳐들어갔다.

후웅-

빠르게 병사들을 향해서 도끼를 휘두른 루프스는 한 병사의 머리를 둘로 쪼개버렸다.

이어서 그와 똑같은 모습을한 고블린이 나타나 그의 옆으로 다가오는 병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병사들도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방패와 검 그리고 창을 들어올렸다.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루프스와 그 뒤를 쫓아오는 다른 고블린들을 향한 견제였다.

그러나 병사들의 견제는 이렇다 할 효력을 지니지 못했다.

병사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프리트가 가장 먼저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철벅 철벅

앞으로 전진하는 고블린들의 발소리에 질척거리는 진흙에 빠진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땅속으로 빨려들어갈듯한 질퍽거리는 진흙이었지만 고블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걸어갔다.

프리트의 늪지화가 사용된 것이다. 루프스와 프리트를 쫓아 성벽 밖으로 나선것은 대다수가 프리트의 부하들이었다.

이미 프리트의 늪지에서 활동하기 위한 대책이 세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속도가 좀 느리지만 멀쩡히 움직이는 고블린들이었다. 그에 반해서 병사들은 바닥에 빠진 발만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몰려있는 이들을 프리트와 부하들이 맡았고, 루프스는 외곽을 돌면서 프리트의 늪지 범위에서 벗어나있는 자들을 공격했다.

그리 넓은 범위가 아니었고, 실제로도 늪에 빠져있는 이들보다 그 외부에 있는 병사들의 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늪에빠져 공격당하는 이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들 전체를 루프스가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운이 좋게 늪지까지 도착하는 이들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프리트와 그 부하들로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