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294화 (294/374)

294화

괴변

"엇?"

성벽에 가까워지면서 공격이 없자 자연스럽게 풀렸던 긴장감은, 고블린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근접하자 다시 조여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늦은감이 있었다.

성벽과 가까워지면서 성벽 위를 처다보던 한 병사는 한가지 위화감을 느껴야만 했다.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성벽 위의 고블린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병사가 저도 모르게 소리로 내뱉었을 때. 다시 한번 공격이 시작되었다.

피비비비비비빙-!!

파공음을 내면서 화살들이 쏘아졌다.

퍼벅-

"끄악!"

"아아악!"

"컥..."

갑작스러운 공격. 특히나 이제 화살이 다 떨어진거라 생각했던 병사들에게는 재앙과 같이 쏟아지는 궁병들의 공격이었다.

티딩-

오르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살들을 처내면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침착해라! 방패병들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아라!"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다시 방패를 들어올려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느정도 공격을 막아가는 듯 싶자, 오르셰는 차근차근 지시를내려 진형을 다시 정비해갔다.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들은 각자가 호위를 맡은 이들을 위해서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함정 전문가들은 그 사이 재빠르게 함정을 하나씩 해체하면서 전진하는 속도를 높였다.

오르셰는 그런 그들을 독려하면서 발걸음을 늦추지 않도록 주의시켰다.

후퇴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물러날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르셰는 후퇴를 고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로서는 적은 피해로라도 후퇴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일 후퇴하는 중에 놈들이 추격에 나선다면...'

현재로서는 눈 앞으로 다가온 위기를 이용해서 억지로 사기를 끌어올리는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만일 그가 지금 후퇴를 결정했다가는 지금 병사들의 평정은 깨져버릴 것이다.

게다가 후퇴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리라 장담 할 수는 없었다. 당장 저 위에서 열심히 화살을 날려대고 있는 고블린들이 뛰어내려서라도 그들을 쫓을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전투직이 아닌 함정 전문가들 때문에라도 후퇴라는 결정은 내릴 수 없었다. 버리고 후퇴하는 것은 쉽지만, 그 후 다시 이곳으로 처들어올때 다른 함정 전문가들을 구할수도 없어질테니 그야말로 그만한 자충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르셰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는 오로지 성벽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르셰는 그 선택을 충실히 이루고 있었다.

///

루프스는 다시 한데 뭉쳐서 전진해오는 병사들을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일부러 적들이 곧바로 진형을 갖추기 힘든 시기에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의도는 맞아들어 다시 진형을 갖추기까지 병사들은 많은 희생을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성 밖의 여기저기에 쓰러져있는 병사들의 시체들이었다.

그렇지만 저들이 다시 뭉치면서 고블린들의 화살 공격을 순조롭게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루프스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정도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범위 내였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다시 그의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한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가진 능력을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

그리 크지 않은, 나직한 목소리로 루프스는 중얼거렸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성벽 위에 존재하는 고블린들 중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저 묵묵히 기계처럼 화살을 활에 매기고는 쏘아내는 일만 하던 고블린들이 씨익 웃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활을 이용해서 적을 공격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루프스의 지시가 떨어지면서 마찬가지인 일 사이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들이 섞여들어갔다.

화륵-

고블린들의 태도 변화에 따라 가장 먼저 눈에 띄어버린 것은 화살 촉의 끝 부분에서부터 불타오르는 모습이었다. 발화와 관련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고블린 궁수의 솜씨였다.

그리고 그게 신호탄이라는 듯, 온통 얼음으로 이루어져있는 화살이라거나, 제법 강한 바람을 휘감아 그 형태가 일그러져보이는 화살, 탁하고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듯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튼튼한 화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밖에도 특수제작된 활로 무기를 바꾸는 녀석들이라거나, 여러개의 화살을 단번에 매기는 고블린, 그 형태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화살을 지닌 녀석들까지 다양하게 각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선보였다.

///

피잉-

가장 먼저 쏘아진 것은 촉이 불타거나 화살 전체가 불로이루어진, 혹은 붉게 달궈져있는 화살들이었다.

그리고 이 특수한 화살들이 쏘아지는 것을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공격에 한껏 노출되어버렸다.

콰앙- 콰광-

화르르르륵

불이 깃들어있는 화살들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병사들에게 피해를 누적시켰다. 지면이나 병사의 방패에 닿은 화살들 중 일부가 폭발해버렸다. 폭발이 일어나는 곳에서 가까이있는 이들은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

간신히 폭발에 휘말려서도 살아남더라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막대한 열량에 화상을 입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숨을 들이키다가 그대로 기도가 홀랑 타버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화살의 경우에는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집어삼키면서 불길을 거세게 피워올렸다. 어찌보면 단발성으로 끝나는 폭발보다도 더욱 성가신 공격이었다.

게다가 불길이 지닌 화력이 상당히 강력해서 병사들의 무구들이 녹아내리고 그 영향으로 병사들은 그 열기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희생이 생기고 나서야 전진을 거듭하던 병사들이 고블린들의 공격 방식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병사들이 알아차린 사실을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오르셰가 알아차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화살들이 색색들이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공격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오르셰가 직접 전면으로 나서야만했다.

"ㅡㅡㅡ"

앞으로 나선 오르셰는 만일에 대비해 외워두었던 주문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와 병사들의 앞이 투명한 막이 화살을 가로막았다.

퍼버버벙- 쩌저정- 카가가각

공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방어막을 펼쳤고, 방어막은 그의 의도대로 화살들을 막아주었다.

"크윽..."

다만 문제는 이 방어막이 그렇게 오랜시간 버텨줄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거라는 초조감이 몰려들면서도 오르셰는 그저 저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일단 공격을 막아내야만 뭔가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온 힘을 다해서 방어막을 유지시켰다. 언제 고블린들의 공격이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어리석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를 비롯한 병사들이 고블린들을 공격 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

"잘도 막아내는군"

루프스는 굳은 표정으로 눈 앞에서 그의 부하들이 날리고 있는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방심하고 있기에 쉽게 물리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이들이 거세게 저항하는 모습이 루프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강력하게 공격 할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이 더했다.

그리고 루프스의 생각대로 성벽에서 화살을 날려대던 고블린들이 지쳐 주저앉는 모습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