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괴변
날아드는 화살을 향해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지금 이대로 묵묵히 공격을 얻어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대대대대댕-
티디디디딩
"크으으으윽"
푸부부부북
화살은 온전히 모두 병사들을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다. 대부분이 그들 근처에 떨어지긴 했지만, 아마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정확하게 사격하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의 일부지만 병사들을 타격하는 화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적중률은 10%가 될까 싶은 양이었다. 하지만 원체 발사된 양이 많았던 덕분에 상당한 화살이 병사들의 방패를 두드렸다. 온 몸이 날아드는 화살로 인해 흔들리면서도 병사들은 굳건하게 버텨냈다. 여기서 함정을 해체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잃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고달파질지는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계속되는 화살세례에 온몸에 부하가 걸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굳건히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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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으로 처들어온 인간들에 의해서 함정이 발동하거나 무너져내리는 소리로 인해서 고블린측은 적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각자 자리를 잡고 서는 한편, 현재 성을 책임지고 있는 루프스에게 적이 나타났음이 보고되었다.
루프스가 성벽까지 오는 사이 고블린들은 함정을 건드리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화살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간당간당하게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화살을 날렸던 것이다.
화살로 적들을 죽이기는 어려웠지만, 고블린들이 원하는 만큼의 역할은 충분히 해주었다.
멀리서 보이는 적. 인간들이 주춤하는 듯 보이자 고블린들은 더욱 거세게 화살을 쏘아보냈다. 다행히 그동안 생산하고 비축해놓은 화살의 양은 충분히 넉넉했다.
그렇게 한참 견제가 이어지는 와중에 루프스가 성벽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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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지탱하면서 병사들은 함정 전문가들을 보호했다. 그러던 어느순간 병사들은 방패에서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그친건가?"
죽음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온듯 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병사들이 조심스럽게 방패의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주변에는 어느세 화살들이 무수히 쌓여있었으며, 들고 있는 방패에도 각자 심여개는 족히 될 법한 화살들이 박혀있었다. 당연히 방패는 그런 화살들을 막아낸 덕분에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아마 몇차례 더 화살들을 막아냈다면 결국 뚫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더 이상 공격이 없자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화살을 다 소모한건가?"
조금전까지 마치 비처럼 내리던 화살이 뚝 그치자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병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의 생각은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오르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레짐작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이 경계를 풀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병사들에게 함정 전문가들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병사들도 방금전의 화살비 때문인지 묵묵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함정 전문가들은 조금씩 조금씩 함정들을 해제하면서 움직였다. 다행히 딱히 이렇다 할 만큼 기발한 함정들은 없었던 만큼 전문가들은 속속들이 함정을 파훼해나갔다.
그 와중에도 병사들은 철두철미하게 방패를 치켜들고 그런 함정 전문가들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까지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들의 경계심이 옅어지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살을 안쏜다고?'
'이렇게나 가까운데... 설마 진짜 화살이 다 떨어진건 아니겠지?'
'어차피 저 놈들 공격도 못하는거 아니야?'
'아으, 이놈의 함정만 아니면 벌써 이기고도 남았을 텐데'
병사들의 생각은 점점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쏠 화살이 없는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지만 오르셰는 계속해서 그들의 경계심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고취시켰다.
병사들과는 반대로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경계심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잠잠하다고? 이 고블린놈들 무슨 꿍꿍이가 있는건가?'
오르셰는 살짝 고개를 들어 성벽 위의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성벽 위의 고블린들은 마치 병사들이 사다리나 밧줄을 연결시켜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듯이 분주하게 움직여 돌이나 기름따위를 쌓아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로 화살이 없어 그 쪽으로는 생각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 오르셰가 더욱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하다못해 고블린들이 조금이라도 방해했다면 이렇게 의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블린들은 일부러라고 생각될 정도로 성벽으로 접근하는 병사들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었으니 그의 의심도 경계도 더더욱 짙어져만 갔다.
그렇지만 병사들은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가 고블린들을 경계하면 경계할수록 병사들은 점점 더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그들의 행동으로 더욱 두드러지듯 나왔다.
지쳤다는 듯이 슬그머니 방패를 내리려는 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그들을 지휘하는 각 지휘관들이 호통을 쳐서라도 방패를 다시 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방패를 드는데 지루함을 느끼고 지쳐갔는지 점점 방패가 바닥으로 향하는 빈도가 늘어만 갔다. 게다가 억지로 다시 들어올린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잡고 있는 방패는 조금의 힘도 없는 듯 흐느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성벽 위의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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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의 루프스가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화살을 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었다. 몇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화살이 무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화살을 보유하고 여전히 남아있기도 했지만, 그 소모량이 잠깐 사이에 삼분지 일에 달했다. 각자에게 보급된 화살들을 무차별적으로 날렸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렇게 날아가는 화살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인간 병사들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화살 소모 대비로 보면 그 효율은 정말 극악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루프스는 적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병사들은 방진을 짜서 차근차근 전진했다. 공격은 끊겼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방패로 보호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에게 틈은 보이지 않았다. 차근차근 조금씩 함정을 무너트리고 성벽으로 접근하는 그들을 보면서 루프스는 속에서부터 슬그머니 초조함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병사들이 성에 가까이 근접할수록 루프스는 병사들에게서 틈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루프스는 곧장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기다려온 것을 수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간신히 틈을 보이기 시작한 이들을 공격해봐야, 다시 경각심을 심어줄 뿐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나 견고해보이던 그들의 진형도, 굳건히 받치고 있던 방패도 틈이 생겨나 벌어지다 못해 너덜거리는 듯 했다.
저들의 지휘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슬슬 긴장이 풀어지는 병사들을 어쩌지는 못했다.
그렇게 병사들의 진형이 저절로 붕괴되어 갈 무렵 루프스가 움직였다.
'더 기다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군'
"공격을 준비해라"
병사들 사이의 틈이 극대화된 것을 확인한 루프스는 주변의 고블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블린들은 물자를 옮기며 혼잡해지는 성벽에서 몸을 최대한 가리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미 성벽의 가까이까지 접근한 병사들은 어느정도의 시력만 있어도, 성벽 위의 고블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풀어져있던 병사들도 슬금슬금 다시 긴장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병사들의 태도는 이미 늦은 뒤였다.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이미 공격태세를 갖췄기 때문이다.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