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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91화 (291/374)

291화

괴변

말상의 남자.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그의 주군인 중년 남성은 인상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그가 알아온 소식에 따르면, 결국 지금까지 그는 그의 표적인 고블린이 아닌 다른 놈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불필요한 전투 때문에 그가 지닌 카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카드를 허무하게 소비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였다.

"오르셰, 너가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결국 우리는 쓸데없는 놈들을 노렸다는 이야기군"

"...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전투로 녹색 깃발이라는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를 허비해버린거고"

"...그렇습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중년 남성을 보면서 말상의 남자, 오르셰는 그의 이야기에 긍정했다.

쿵-!

"어찌 이리 허무할데가!"

그는 주먹으로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면서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는 있는데로 스트레스를 발산하듯이 오르셰를 향해 온갖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녹색 깃발 기사단의 경우는 변종 고블린들로 알려진 식귀들을 가장 많이 사냥했으니, 그리 허무한 죽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노리는 것은 오로지 고블린. 그들이 나타나기 전이었다면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나타났고 그의 온 신경은 그들에게 쏠려있었다. 하다못해 고블린들이 발견되지 않았었다면 그가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으며, 변종 고블린들을 감당 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다. 그리고 어쨌든 모습은 고블린이니 더욱 그가 노릴만한 녀석들이었다. 즉 진짜 고블린들 루프스의 부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차피 그들과 싸웠을 거란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루프스의 부족이 없었다면, 쿠알론의 부족을 기반으로 나타난 식귀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그도 모르는 일이니 별 소용 없는 가정일 뿐이다.

어쨌든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고블린들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중년 남성이 부리는 이들은 그런 고블린이 아닌 엉뚱한 이들과 싸우다 화를 입었다. 어찌보면 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준비해라"

"예?"

그의 비난을 들으면서 입을 닫고 묵묵히 듣기만 하던 오르셰는 갑작스런 그의 이야기에 당황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 오르셰의 반응에 중년 남성은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모습으로 그에게 이를 갈면서 이야기했다.

"이번엔 너에게 맡기겠다. 지금 각지의 성들을 침략하고 있는 놈들은 고블린이 아니라는 판명이 났으니... 이번에 노리는 것은 르윅 성 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블린 놈들이다"

"..."

"이번에 명확한 성과를 확보해서 돌아온다면... 이번에 벌인 죄는 용서하도록 하마"

딱히 그의 부관인 오르셰의 실수라고 볼 수 없으며 죄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둘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의 이야기가 단순한 억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셰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수긍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과거와 달리 조금의 장난기도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가는 중년 남성의 손에 어떻게 될지 장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봐라"

화풀이를 통해 그나마 머릿속에 치밀었던 열기가 가라앉았는지 남성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에게 축객력을 내렸다.

///

잠에서 깨어난 루프스는 일어나자마자 프리트를 보아야만 했다.

"크으으으. 언제 왔나?'

목을 긁어내는 소리를 내면서 팔을 쭉 뻗은 루프스는 그의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프리트를 보면서 물었다.

"한 반나절쯤 되었습니다"

"그래? 왔으면 깨우지 그랬나"

루프스의 이야기에 프리트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런 프리트의 모습을 보고 루프스는 아직까지 그의 부족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흠... 자네 혼자 온건가?"

"엘라양과 함께 왔습니다. 지금은 족장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스트레칭하면서 풀어낸 루프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자신의 집무실로 옮겼다.

끼이익-

기름칠되지 않은 삐걱거리는 문을 밀어연 루프스는 집무실의 안으로 들어갔다.

"일어나셨군요"

문을 열고 들어간 그를 맞이한 것은 엘라였다. 집무실 안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는 루프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덜그럭

일어난 그녀는 족히 루프스와 크기가 비슷한 상자를 들더니 그것을 루프스를 향해 내밀었다.

"군락지에서 도착한 선물이예요"

그녀에게서 상자를 받아는 루프스는 바닥에 놓고는 바로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끼익-

"도끼? 시에란의 작품인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그는 이내 상자의 내용물 중 하나를 꺼내 들어올렸다.

"네, 당신에게 준다고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다더군요"

그의 추측이 맞다면서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루프스는 온 신경이 도끼에 집중되는 듯 했다. 도끼의 모습은 제법 원시적인 모습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들어낸 자루도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히 도끼의 날이었다.

날의 형태는 정확히는 도끼라기보다는 곡괭이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루프스는 한가지 특징을 더 발견했다.

"이건... 금속은 아니군"

도끼는 금속특유의 광택은 보이지 않고 상아에 가까운 재질로 보였다.

"사냥한 몬스터들의 부산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날은 와이번의 이빨이나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이용했다고 들었어요 "

그런 그의 의문에 엘라가 대답해 주었다.

루프스는 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만지작 거리면서 상자 속에 있는 도끼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도끼의 크기는 한손에 들기 편한 정도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흠..."

고개를 끄덕이는 루프스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최근 들어서 투척용 도끼는 그가 능력을 통해 만들어낸 가짜를 이용했었다.

충분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만들어낼때마다 그의 힘을 소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력이 진짜에 비해서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그와 비등한 수준의 적을 만난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미리 투척용 도끼들을 확보해두는 것은 그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만족한 루프스는 일단 도끼와 도끼가 들어있는 상자를 한쪽으로 밀어두고서는 집무실에 있는, 그의 의자에 앉았다.

"선물은 만족스럽군. 군락지 안에 있는 시에란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길 부탁하지"

"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프리트는 그와 마찬가지로 집무실에 있는 여분의 의자에 앉았고, 엘라도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잠깐 잡담을 나눈 그들은 본격적으로 이곳에 모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좋은 정보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적을 특정 할 수는 있었네"

루프스는 정찰을 다녀온 결과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식귀 놈들에게 잡아먹힌 동족들. 놈들은 분명히 쿠알론 녀석이 이끌던 놈들인게 분명하더군"

그리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다.

제법 많은 식귀들이 쉴세없이 먹을것 못먹을것 가리지 않고 먹고있는 모습이라거나, 그들을 통제하는 개체의 등장 그리고 드란이 주도한 습격까지 둘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둘. 엘라와 프리트는 절로 표정이 굳어져갔다. 특히나 드란이 과거를 기억하고 이성을 잃지 않은것 같다는 이야기에는 더욱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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