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괴변
푸욱-
날아든 촉수가 단번에 루프스의 몸을 꿰뚫었다.
푸부북- 퍽- 콰직
이어서 날아든 날카로운 검처럼 벼려져있는 식귀의 팔이 루프스의 어깨를 꿰뚫었다. 암석과 같은 단단한 주먹이 이어서 그의 머리를 강타했고, 톱날과 같은 이빨이 그의 몸을 물어뜯기도 했다.
언뜻 보아도 제법 심각해보이는 중상이었으나, 그런 공격을 받은 루프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이상한 현상이었지만 이미 이성이 날아간 식귀들에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루프스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그를 공격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식귀들을 지휘하는 지휘개체들은 머지않아 이상을 알아차렸다.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부하들을 부리는게 가능하기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미동도 없이 그저 당하기만 하고 있는 루프스의 모습은 딱 보아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증명되었다.
부웅- 콰득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지휘개체중 한 녀석의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루프스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의 모습이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본격적으로 숨어든 그를 찾을 수 없다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잠깐의 틈 사이에 다시 숨어든 그를 그들이라고 찾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루프스는 식귀들이 자신을 노릴 때. 몸을 피해내는데 성공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공격이 박히기 직전, 그 자리에 분신체를 만들어내고 그 자신은 모습을 감추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나 공격해오는 식귀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 감촉만큼은 감쪽같이 만들어지도록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정말 찰나간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순간에 이어진 작업이었다. 한치의 실수라도 저질렀다가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성공해냈다. 간신히 때에 맞춰서 분전하던 분신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그의 분신을 찔러낸 식귀들도, 그를 지켜보던 지휘개체들도 그에 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 증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혼잡해져있는 식귀들의 틈 사이로 숨어든 루프스는 성공적으로 지휘개체 하나의 목숨을 끊고 연달아 다른 하나의 목숨도 노렸다.
후웅-
그러나 쉽게 목숨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이 남은 지휘개체는 간신히 몸을 뒤로 젖혀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루프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캬아아아앗-
어느새 사라진 그의 분신으로부터 눈을 뗀 식귀들이 다시금 그를 노리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를 노려서 간신히 살아남은 지휘개체가 그로부터 떨어지고자 움직였다.
그렇지만 당연히 루프스에게 그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야 눈 앞에 있으니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적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지만 그가 숨어든다면 성가시게 될 것은 매우 뻔한 일이었다.
특히나 다시 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어가서 식귀들을 통제한다면 더욱 귀찮아질 것이다.
언뜻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식귀들이 더욱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식귀들은 그 겉모습이 그럴 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진 않는다. 그저 다가오면 쓰러트리면 될 뿐인 허수아비와 같은 이들이다.
그러나 놈의 통제를 받기 시작하면 그 때 부터는 귀찮은 놈들로 뒤바뀐다. 치명상을 입으면 일단 뒤로 물러나서 회복을 꾀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옥쇄의 각오로 그를 향해 달려든다. 통제받는 식귀들에게서 드러나는 이 두가지 특징이 더욱 그를 귀찮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러니 루프스로서는 절대 그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지휘개체는 이미 도주하고 있었으며, 그가 통제하고 있는 식귀들이 그가 있는 방향을 가로막아 그를 헤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식귀들이 그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들면서 그를 죽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루프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에게는 아직 한가지 방법이 남아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만들어내었던 도끼와는 다른, 그의 허리춤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던 도끼를 꺼내들었다.
루프스는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면서 멀리 도망치고 있는 지휘개체를 향해 도끼를 겨누었다. 지금까지 다루던 것과는 명확히 다른 무게감과 질감이 그의 감각을 더욱 곤두세우게 해주었다.
"흐읍!"
부웅-! 부웅-! 부웅-!
거칠게 허공을 가르면서 도끼는 도주중인 지휘개체의 뒤를 쫓아갔다.
후방에서 느껴지는 풍압을 느꼈는지 지휘개체, 하급 고블린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식귀는 도주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콰직-
그리고 눈 앞까지 다가와 거대하게 보이는 도끼가 그가 마지막으로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지휘를 할 수 있었던 식귀는 그렇게 절명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듯이 루프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공격해오는 식귀들의 행동도 더욱 거칠게 변해버렸다.
그러나 아무생각없이 돌진밖에 할 줄 모르는 그들은 루프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식귀들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곳에 모여들었던 식귀들 모두가 그 목숨을 잃고 한줌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리는 처지가 되어야만 했다.
///
식귀들로부터 벗어난 루프스는 곧바로 성으로 귀환했다. 르윅 성은 그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는지 그가 떠나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성으로 귀환한 그는 피곤에 절어 귀환 사실만을 전파하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식귀들의, 정확히는 쿠알론의 부족이 지냈던 거처로 보이는 통로를 발견하면서 그는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거기에 수백에 달하는 식귀들과 그들을 통제하던 다섯의 지휘개체가 덤벼드니 육체적으로는 견딜만해도 정신적으로는 피곤에 절어있었다.
결국 그는 휴식에 들어갔고, 그의 귀환 소식은 루프스가 깨어나기도 전에 요새에 도달했다.
그의 귀환 소식을 들은 그의 측근들 중 몇은 곧바로 르윅 성을 향해 출발했다. 그가 새로 들고온 소식과, 돌아온 그가 아무런 상처도 없이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루프스는 다음날 아침이 되면서 잠에서 깨자마자 그렇게 찾아온 그의 측근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
지하통로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하고, 그에대한 확인을 갔다가 다시 제라임 성으로 돌아온 드란은 이유는 몰라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하니 아버지께서 벌써 찾아오실 줄은 몰랐군요"
전혀 예상밖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 자체가 유쾌한듯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성으로 돌아온 그는 성 안. 특히나 깊숙한곳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쿠알론과 트레이가 초점없는 눈빛으로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드란은 그런 둘을 보면서 더욱 입가의 미소가 진해져갔다.
초점없는 눈빛을 한 두 고블린에게서는 그 어떤 이지성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오로지 드란의 모습만을 쫓는 모습은 절대 정상으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둘의 모습 자체도 만족스러운지 드란은 장난을 치듯이 잠시동안 방을 빙글빙글 돌면서 두 고블린의 시선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명확하게 그를 쫓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드란을 보면서 두 고블린은 오로지 문에만 시선을 고정해두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