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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7화 (287/374)

287화

괴변

루프스의 분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때문인지 식귀들은 더욱 신이나서 분신을 공격해댔다.

그러나 사실 분신이 입은 상처는 상처라고 할것도 없었다. 그저 루프스가 일부러 조금씩 타격을 맞는 부위에 맞춰서 피가흐르는 듯한 환상이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섬세하게 작업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체만을 운용했을 때 뿐이다. 숫자를 하나라도 늘였다가는 상처는 생기겠지만,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은 물론 상처의 생김새도 생물의 상처가 아닌 사물의 상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정도로도 이 식귀들을 속이는 것 쯤은 충분했을 것이라고 루프스는 생각한다. 그러나 식귀들의 움직임이 통제되고 있는 지금이라면 어쩌면 눈치챌 가능성도 제로가 아니다. 만일에 대비해서 그리고 하나만 운영하는 것이 둘이나 셋보다는 위력적이기에 두번째 분신을 꺼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귀들도 현재 루프스의 본체를 찾지 못하니 분신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분신체는 점점 더 많은 상처와 피를 흩뿌리고 있었지만 그 힘과 민첩함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격렬하게 식귀들을 몰아칠 정도로 상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식귀들은 그런 루프스의 분신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들 모두의 시선이 오로지 그에게 묶여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식귀들은 그를 향해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루프스가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루프스의 분신을 향해 식귀들의 시선과 공격이 몰리고 있을 때, 본체는 또 하나의 지휘개체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사실 이대로 도망가도 된다만은...'

은밀히 움직이면서 루프스는 속으로 슬쩍 이대로 분신을 내버려두고 본체는 도망간다는 것을 떠올렸다.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분신이 제대로 시선을 끌어주는 만큼 아무런 피해 없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프스는 속으로 떠올릴 뿐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놈들은 결국 우리에게 위협이 될 것이 뻔하고, 이길 수 없을 정도의 적도 아니니 굳이 도망칠 필요는 없지'

연계도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으며, 개체 하나하나의 힘도 그리 높지 않은 적들이다. 루프스로서는 시간이 걸릴 뿐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이었다. 특히나 이후 부족이 점령한 성이나 요새에서 이 정도의 수의 식귀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희생이 생길 것은 뻔한 일이었다.

지금 미리 헤치워 두는 것이 이득이라고 그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루프스는 지휘개체와 가까운 장소에 도착했다. 그의 시야로 이전 개체와 마찬가지로 주저앉아서 식귀들의 통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으음... 역시 이렇게 나오나'

지능이 그리 높지 않은 듯 보이기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그였지만 그가 생각했던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듯 싶었다.

주저앉아서 식귀들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은 같았으나, 이전과는 다른 것이 루프스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주저 앉아있는 지휘개체의 주변에는 호위를 위한 식귀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행히 숨어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정도로 감각이 민감한 놈들은 아닌 듯 싶었으나저 틈바구니로 들어가는 것은 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모두 헤치우려면 그럴 수 있기야 하겠지만...'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정도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만에하나 그가 지휘개체를 일격사 시키지 못하거나 식귀에 의해서 발각되는 순간에는 일이 귀찮게 될 수 있었다.

'남은게 저 놈 하나 뿐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무작정 공격을 시도 할 수 있는데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뜬 루프스는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많은 수가 그의 분신의 손에 의해 쓰러졌는지 처음에 비해서는 그리 많다고 볼 수 없는 수가 살아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어느새 무작정 달려들던 식귀들의 모습이 드물어져 있었다. 아마 수가 줄어들면서 통제가 수월해져서 그럴 것이다.

지금은 통제되고 있는 수가 이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또 다른 지휘개체가 하나는 더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혹시나 눈 앞의 지휘개체를 상대하는 사이 난입한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분신이 여전히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것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다. 시간이 지날수록 루프스는 조금씩 분신을 유지하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루프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지만 결국 강행돌파를 결정했다.

루프스는 조심스럽게 더욱 기척을 죽이면서 지휘개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주위를 네 마리의 식귀들이 지키고 서 있었지만 바로 옆을 지나고 있는데도 그들은 루프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곧 지휘개체의 앞까지 다가선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도끼를 휘둘렀다.

쐐액-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도끼는 지휘개체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대로라면!'

무사히 목적을 이룰 수 있을 듯 싶자 루프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챙-!

갑작스레 날아든 금속과 같은 광택을 내고 있는 손톱이 루프스의 도끼를 튕겨낸 것이다.

트득

도끼에 실려있던 힘 때문에 상대의 손톱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지만, 지휘개체가 살아난 것에 비하면 피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그르르르

지휘개체라고 하더라도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여전히 목을 울리면서 으르렁 거리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적개심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의 두 식귀의 눈에는 명확한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루프스의 도끼를 처냈다는 것만 보아도 눈 앞의 식귀가 지휘개체와 비등하거나, 그와 비슷한 존재라는건 분명했다. 혹시나 했던 루프스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몸을 숨기고 있었던 만큼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는게 가능했던 그였다. 그러나 지휘개체를 습격하는 일이 실패한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미 주변의 식귀들 대부분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가 이곳으로 오면서 분신은 반대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특히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언뜻 제법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버린 듯 했으나, 정작 루프스는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기도 했으며, 기왕 이렇게 된것 숨어다니는게 아닌 적극적인 공세로 나서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마침 적들도 그에게 어느정도 위협이 될 수 있는 녀석들도 눈 앞의 둘 정도 뿐인데 그들도 루프스에게 피해를 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즉 현재 그와 대치중인 이들로는 그를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잠깐 그가 상황파악을 하고 있을 때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식귀들 쪽이었다.

키야아아아아-!

지휘개체가 그를 견제하면서 통제가 풀려버린 식귀들이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루프스는 달려드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든 놈들은 그대로 팔을 휘둘러 그를 공격했다.

식귀들의 촉수와 같은 팔과 돌덩이 그 자체라고 불러도 좋을 팔, 그 외 다양한 생물이라고 보기도 힘든 종류가 섞여있는 그것들이 루프스를 덮쳤다.

그는 일부러 그에 대응하지 않았다. 마치 자포자기한듯이 그저 이성을 잃은 식귀들이 날려오는 공격을 그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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