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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5화 (285/374)

285화

괴변

루프스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눈 앞의 식귀를 노려보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적은 지금까지 그가 마주친 적이 드문, 원거리 공격을 주특기로 하는 자였다.

루프스는 특히나 원거리에서부터 오는 공격을 경험한 일이 적었다. 그나마 그가 기억하는 가장 강력했던 공격은, 현재 엘프들을 다스리고 있는 엘라가 그에게 날렸던 화살들이었다. 그것도 화살 자체의 공격보다는 계속해서 그를 향해서 유도된다는 성질이 짜증날 뿐이었다.

반면 지금 정면에서 온몸에 돋아나기 시작한 가시들을 내뿜기 시작하는 식귀의 공격은, 그를 향해서 유도되지는 않았으며 위력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공격이 무수히 많았으며, 연사력만큼은 엘라에 비해서 월등하다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피하거나, 도끼로 막아내면 충분한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서부터 날아오는 가시의 수량은 점점 늘어만 갔고, 공격에 노출된 루프스는 점점 회피와 도끼를 이용한 막기로는 버티기 어려워져갔다.

하지만 루프스는 그에 대해서 별달리 걱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막기 버거워지자 조금쯤 몸을 희생해서라도 버텨내기 시작한 것이다.

푸북- 타다다다다당- 푹

대부분의 가시들은 회피하거나, 도끼의 면으로 휘둘러 쳐냈다. 그러면서 둘다 용이치 못한 경우는 일부러 맞아주기도 하면서 루프스는 그저 버텨냈다.

그가 묵묵히 공격을 막으면서 버틸 뿐이자, 일시적으로 물러나 포위망을 굳혀가던 식귀들도 슬금슬금 달려들기 시작했다. 원거리에서의 공격으로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식귀가 있기 때문인지, 그를 향한 공격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는게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루프스가 노리던 것도 바로 이 순간이었다.

쉬이익-

역시나 거리가 좀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가장 먼저 그를 향해 공격 한 것은 촉수를 지니고 있는 식귀였다. 촉수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고, 그 때에 맞춰서 원거리 공격을 하던 식귀의 공격이 슬쩍 늦춰졌다. 아마 동료가 공격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를 견제하기만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부웅-

그렇지만 그 때야말로 루프스가 노리던 타이밍이었다. 루프스는 공격을 막는 동안 준비해두었던 분신을 공격을 늦춘 식귀의 뒷편에 출현시켰다. 그리고 그의 분신은 나타나자마자 곧장 손아귀에 쥐고 있는 도끼를 휘둘렀다.

키깃?!

식귀는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일순 놀랐지만 침착히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도끼를 휘두르는 것은 다름아닌 루프스의 분신이었다. 머리를 쪼갤듯이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내리쳐지던 도끼가 분열했다.

도끼가 한순간에 네갈래로 갈라진 것이다. 하나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정수리를 쪼갤듯이 내리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목을 가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으며, 두개는 사출되는 가시가 집중되어있는 양쪽 팔을 절단내기 위해서 양 어깨를 각각 내리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분열된 도끼에 식귀는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면서 손발이 어지러워 졌다. 오른쪽 어깨를 내리치는 도끼와 목을 베어오는 도끼는 어떻게든 떨쳐내는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두 도끼는 목적을 이루었다.

쩌억- 콰득

왼쪽 팔이 도끼에 의해서 날려졌지만, 그보다 정수리를 찍어낸 것이 치명적이었다. 루프스의 일격에 지휘개체 식귀가 또 하나 목숨을 잃었다.

지휘개체로 보이는 식귀 둘을 쓰러트렸지만, 루프스는 다시 조금 전처럼 잔챙이 식귀들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 혹시나 또 다른 지휘개체가 남아있을 수 있었고, 그들이라면 루프스에게 피해를 주는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의 본체는 일단 적들을 견제하면서 몸에 박혀있는 침을 뽑아내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의 분신이 본체를 대신해서 식귀들을 공격했다.

분신의 공격 방식은 과거 그저 도끼를 휘두르기만 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저 본체가 틈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에 분신이 결정타를 날리던 것이 루프스가 그동안 분신체를 이용해서 싸웠던 방식이었다.

그 효과는 생각보다도 좋아, 그와 비슷한 수준의 적들도 제법 수월히 해치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루프스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분신체들을 더욱 유용히 쓰고 싶었고, 분신들이 그의 능력을 쓰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을 목적으로 제법 오랜시간 훈련과 연구가 이어졌고, 성과가 생겨 단 한개체를 부릴 때 뿐이지만 그의 능력을 사용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변이하기 시작한 동족의 모습이었던 식귀들을 상대하는 그의 분신체는, 한껏 그의 능력을 이용해서 날뛰고 있었다.

분신체가 그렇게 식귀들의 사이를 헤집어다니고 있을 때, 루프스는 날카롭게 식귀들을 훑어보았다. 여전히 이전의 이성 없이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모습이 아닌, 조금씩 그의 분신체의 힘을 뺴려는 듯 움직이는 식귀들을 보니 아직 지휘개체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분신체가 날뛴다고, 그를 향한 공세가 얌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가시를 뽑아내는 정도의 시간은 벌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주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체력은 유한했고, 분신의 존재는 그의 체력을 비교적 빠르게 앗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저 적들이 오는대로 상대하기만 하는 것은 그리 현명치 못한 처사였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한눈 팔지도 못하고 변이하면서 한껏 덩치를 부풀리고 있는 식귀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음을 곧 알 수 있었다.

변이한 식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아직 변이하지 않은 시귀가 남아있었다. 루프스의 생각으로는 변이한 녀석들로 시야를 가리고, 그러면서 변이하지 않은 녀석들을 섞어 더욱 그를 햇갈리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의도로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의도처럼 루프스의 눈길을 피해갈 수는 없었고, 루프스도 곧 의심스러운 녀석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둘?'

그가 발견한 것은 두 개체 뿐이었지만, 이미 앞서 그와 같은 수의 지휘개체를 절명시켰기에 루프스의 예상으로는 저들이 마지막이지 싶었다. 게다가 두 지휘개체를 격파한것이 원인인지, 둘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로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잔챙이 식귀들을 상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숨어있는 놈들 중 하나를 향해 다가갔다. 두 개체가 서로 어느정도 거리를 벌리고 있었기에 우선 하나라도 먼저 상대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이루어졌다.

어느새 지휘개체로 의심되는 식귀와 가까이 다가간 루프스가 한 것은 분신체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신체는 그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부웅- 부웅- 콰직

퍼걱! 콰지직 쩌억-

분신체는 일부러 화려하게 움직였다. 손아귀에서는 계속해서 도끼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끼들은 하나같이 적들의 머리를, 몸통을, 팔과 다리를 찍어버리고 찢어날려버렸다. 그렇게 움직이는 분신체의 목표는 다름아닌, 루프스가 있는 장소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또 다른 지휘개체로 의심되는 녀석의 근방이었다.

루프스로서는 분신체가 시선만을 끌어주어도 좋고, 혹은 그들이 만일에 대비한 비장의 수라도 사용하게 만들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의 분신체는 점점 그들의 지휘개체와 가까운 자리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루프스의 생각과는 달리 그 때까지도 놈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식귀들을 부리면서 가까이 접근해오는 루프스의 분신을 저지하기만 할 뿐이었다.

정확히는 분신을 감당하지 못하니 저지로 끝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비장의 수 같은 것은 없었는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루프스는 그의 분신이 시선을 끌어주는사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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