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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4화 (284/374)

284화

괴변

루프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동족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식귀를 바라보면서, 다시 도끼를 꺼내들었다.

콰직-!

손도끼를 식귀의 머리를 향해 강하게 찍어내려서 또 하나의 적을 처치하고, 루프스는 적들과 거리를 벌려서 견제했다.

그르르륵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를 내뱉으면서 식귀들은 루프스를 노려보았다. 다만 그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 루프스와 마찬가지로 견제를 할 뿐 직접 달려들지는 않았다.

'어느정도 지능은 있는건가?'

조금의 이지성도 느껴지지 않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식귀들이었지만, 겉모습과 달리 어느정도 지능은 있는 듯 동료가 둘이나 당한 지금, 처음과 달리 그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저 그의 주변을 조금씩 조금씩 잠식해가듯이 포위하는 움직임만을 보였다.

식귀들이 직접 그를 향해 달려들지 않자, 이대로 시간만 보낼 생각이 없던 루프스가 먼저 움직여 버렸다.

"흡!"

후웅 후웅 후웅

한손을 크게 뒤로 넘긴 자세를 잡은 그는 다짜고짜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정면으로 내던졌다.

퍼억!

공중을 나돌면서 나아간 도끼는 다짜고짜 정면에서 루프스를 경계하던 식귀의 어깨를 직격했다.

끼이이이익!!

정확히 도끼의 날이 어깨로 파고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끼의 자루가 식귀의 어깨를 내리쳤고, 제법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던 도끼는 그대로 고블린의 어깨를 잘개 부수어버렸다.

루프스의 공격은 한 식귀의 팔을 완전히 봉쇄하는데 성공했다. 언뜻 중상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변이한다면 금방 회복될 정도밖에 안되는 부상이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틈이 생겼고, 루프스는 그 틈을 노릴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키기잇!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 그가 마주쳤던 식귀들과 같았다면의 이야기였다.

루프스는 억지로 비집어 만들어낸 틈을 이용해서 공격하려 했지만, 동족의 모습을 한 식귀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런 그를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쉬익-

틈을 더욱 넓히기 위해서 루프스는 팔을 내저으려 했지만, 그 의도는 불발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무언가에 의해서 방해를 받은 것이다.

"큭?!"

은연중에 바로 이전에 상대했던 식귀들을 떠올렸었는지, 설마하니 이런식으로 반격을 당할지 생각지도 못했던 루프스는 순간 당황했다.

푸욱-

날아든 것은 그대로 그의 팔에 박혀들었고, 순간 밀려오는 통증은 그의 움직임을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잠시 멈칫하는 그 틈에 앞을 막아섰던 식귀들의 뒤편에 있던 한 식귀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타난 놈은 어째서 지금까지 눈에 안띄었던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 변이한 것도 아닌듯 보이면서, 그 덩치가 루프스보다 약간 작은 정도였다. 게다가 한눈에 알 수 있는 저릿저릿한 기세까지 느껴지니, 루프스로서도 얕볼수 없는 적이었다.

머리와 몸을 한순간에 옆으로 기울여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루프스는 다가온 적을 향해 바짝 붙었다. 내심은 떨어져서 거리를 벌리고 싶었지만, 그를 포위하고 있는 식귀들 때문에 차선책으로 적의 품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에게 일종의 행운이 되어주었다. 어째서인지 그가 막아주는 사이 공격을 시도하려던 식귀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적의 품 속으로 파고들면서도, 주위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루프스도 당연히 식귀들의 그런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굳이 이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식귀들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고, 움직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그와 가까이 있는 식귀 뿐이었다. 그가 다른 식귀들의 지원을 받았더라면, 헤치우기는 어려웠겠지만 지금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다른 식귀들에 비해서 한 수 위의 존재라 하더라도, 루프스의 온 힘을 실은 도끼질을 온전히 버텨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어느새 그의 손에는 다시 도끼가 쥐어져 있었고, 그 도끼는 정확히 적의 머리를 내리찍어버렸다.

퍼석

다만 다급하게 내리찍었기 때문인지 정확히 날로 적의 머리를 쪼개지는 못했다. 다만 그 충격만큼은 온전히 전해졌는지, 마치 둔기로 내리친 듯이 식귀의 머리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퍽-

머리가 부서진 식귀는 루프스를 향해 쓰러졌고, 루프스는 쓰러지는 식귀의 몸을 단번에 발로 차버렸다.

차여진 식귀의 몸은 허공을 날아, 그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 중 한 식귀에게 던져졌다. 그의 몸이 치워지면서 드러난 루프스를 향해 공격하려던 한 식귀가 그렇게 던져진 동료의 몸을 강제로 받아내야만 했다.

그것은 저절로 식귀를 일순간 홀로 다른 이들보다 발걸음이 늦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드러난 틈으로 이번에야말로 루프스는 몸을 비집어 넣었다.

콰득

틈으로 파고든 루프스의 도끼는 그의 적, 식귀의 목을 찢듯이 잘라내버렸고 루프스는 그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포위를 벗어난 순간,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식귀들은 그를 제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한 식귀의 목에 도끼를 박아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박힌 도끼를 루프스는 회수하지 않았다.

그저 손아귀에서 도끼를 새롭게 만들어버릴 뿐이었다.

새롭게 그의 손에 솟아나듯이 나타난 도끼를 루프스는 다시 쥐고는 휘둘렀다.

퍼억!

그의 도끼는 다시 또 다른 식귀의 몸으로 파고들어갔고, 루프스는 역시나 그 도끼를 회수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손에 도끼를 새롭게 만들어내면서 식귀들을 도륙했다.

포위망을 벗어난 루프스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식귀들이 다시 그를 포위하기 전에 최대한 수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루프스가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도륙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던 것인지, 식귀들은 희생을 내고 있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그를 다시 포위해 나갔다.

그리고 포위망을 형성시키기 위한 비장의 수로, 온전한 식귀와 비슷한 모습을 한 또 다른 식귀를 그의 앞으로 내보냈다.

식귀는 방금 루프스의 손에 의해서 머리가 부서져버린 식귀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루프스의 생각으로는 아마 그와 같은 계열의 고블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타났지만, 루프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적들이 비장의 수로 그를 내보냈지만 그를 상대하지 않으면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하고자 그는 일부러 그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다만 완전히 방심하기에는 위험한 적이라고 판단했기에 청각과 후각과 촉각 만큼은 그 식귀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식귀들을 도륙하던 와중에도, 그가 하는 공격을 회피 할 수 있었다.

쉬익-

그것은 그의 어깨에 박힌 것과 매우 유사한 물건이었다. 마치 선인장의 가시와 같은 그것은 그를향해 날아왔고, 루프스는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면서 빠르게 일어난 그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단단하게 굳어있는 마치 돌덩이와도 같은 주먹을 내지르는 식귀의 팔을 잘라내고, 그대로 머리를 내리찍어 버렸다.

그러면서 주의는 그에게 가시를 사출한 식귀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 발사된 가시를 그는 피해낼 수 있었고, 연이어서 발사되는 또 다른 가시들 마저 회피하는게 가능했다.

이대로는 그를 헤치우기 전까지는 다른 적들을 물리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더 이상 다른 적들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일말의 기습에 대한 대비를 제외한 모든 감각을 그를 향해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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