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283화 (283/374)

283화

괴변

갑작스러운 고블린들의 침공으로 골치를 썩이고 있던 한 성주는, 결국 비보를 듣고야 말았다.

"그렇군... 다섯 성주들과 그들이 이끌던 병력들 모두, 전멸해버리고 말았나..."

그의 입장에서는 좋은 방파제가 되어주었던 이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은 이제 전선이 한단계 밀려남으로서 그와 그의 영역이 최전선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비보였고, 그렇기에 소식을 들은 그의 표정이 굳어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다스리는 영역. 성으로부터 반경 수십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는, 지금까지 비교적 평화로이 보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주었지만, 이제는 그 영토가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성주로서는 당연히 피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지만, 방파제가 되어주었던 다른 성들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기병을 빌려줬던 것인데"

후우

사태가 이렇게 돌아간다면, 그와 다른 성주들 몇이 함께 모여서 파견한 기병들의 생환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게 옳을 것이다. 만일 성주들이 어떻게든 고블린들을 막아내면서 버티기라도 했다면, 추궁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죽은 이들에게는 그런 일도 불가능하다.

사태가 생각보다 어렵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는 일단 시간이라도 끌기로 결심했다. 처들어오는 변종 고블린들에게 순순히 목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 그로서는 최소한 시간이라도 끌기를 결심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사전에 이런 일이 있을것이라 예상했었기에 어느정도 대비는 미리 해놓았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휘하 지휘관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가능한한 많은 주민들을 대피시키도록 지시하고, 그 스스로도 고블린들을 막기위해 직접 움직였다.

///

성주연합의 붕괴는 일반 주민들은 물론, 그들을 지배하는 다른 성주들, 그리고 수도에까지 그 정보가 흘러들어갔다.

민간에 퍼지는 것은 그저 기괴한 괴물들을 막아내고 있던 성주들이 그 세력과 함께 모조리 죽어버렸다는 소문 정도였지만, 성주들과 수도의 왕궁으로는 보다 자세한 정보가 들어갔다. 그렇기에 비교적 미적거리며 움직이고 있던 수도의 귀족들과 왕족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 동안 잘 막고있는것 같기에 별로 신경쓰지도 않고 있었던 그들은, 설마하니 그들이 이렇게 단기간만에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적어도 서너달 정도의 시간은 더 벌 수 있으리라 보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보고도 한마리씩 여러 장소에서 나타나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뭉쳐서 나타난다는 정보가 들어왔지만, 그것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게 그들의 본심이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보로, 제 2진이 되어주는 성주들에게 알려주었을 뿐, 그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다.

일단 여럿이 뭉친 변종 고블린들은 매우 드물었으며, 각자 행동하니 어떻게든 버텨내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 자신감을 얻었던 성주들이 한번에 고블린과 맞붙는다는 멍청한 선택지를 골라버렸고, 그 때문에 예상보다도 빨리 무너져버린 것이다.

골렘과의 일전으로 피해를 본 전력 때문에 지원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직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병사들을 변종 고블린과 싸우도록 보낼 수 는 없었다. 국경을 경계하고 있는 병력들을 물린다면 가능하겠지만, 그쪽도 최근 심상치않은 기류가 흐른다고 한다.

즉, 국경을 방어하고 있는 병력들을 빼기란 불가능한 일이란 이야기였다. 아마 최근 악재가 덮치는 플루 왕국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인접국가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명분이 없기에 처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인접 국가들, 특히나 플루 왕국과 사이가 좋지 못한 나라에서 처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서 정예 병력을 보존해두어야 했다. 그렇기에 변종 고블린들을 상대하기 위한 병력을 못 보내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느 한쪽에 의해서 멸망에 다가가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수도에서는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연일 회의가 벌어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는 것이 그 지하에 있었다. 어둡고 습한 지하에서도 숨겨져있던 더더욱 깊숙이 내려가는 지하에는 그에게 있어서 끔찍하게만 보이는 참상이 있었다.

유일하게 희미하나마 불빛이 있는 장소였지만, 루프스에게는 그것만으로 마치 대낮과 같이 훤히 어둠을 꿰뚫고 시야를 확보 할 수 있었다.

"으음..."

지하실은 그야말로 시체의 산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괴기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눈을 돌리는 곳 어디에나 시체가 존재했다.

시체는 그야말로 종을 구별하지 않고 있었다. 그와 동족인 고블린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들의 시체 그리고 다양한 몬스터와 동물의 시체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모습만으로는 이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서로 먹고 먹히고 있었다는 것 만큼은 분명했다.

그리고 한쪽 벽으로는 철창들이 무언가를 가두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있었던 듯한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지만, 먹고 먹히는 흔적을 보면 이곳에서 식귀와 관련된 무언가가 벌어졌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알아낼만한 것이 없음을 알아차린 루프스는 얼른 빠져나왔다. 이런 기분나쁜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짐작했다.

그렇다기 보다 거의 버려진장소로 알아내 보았자 과거의 일들 뿐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 통로와 곳곳의 폐허들은 기껏해야 식귀들이 숨어서 지내는 장소 중 일부로 이용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루프스는 일단 이곳에서 벗어났다. 다시 어두컴컴한 통로로 들어선 그는 제법 길을 헤매었지만,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만 그곳에는 그가 예상하지도 못 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기히이이이-

그르르륵

마치 그가 이곳으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수의 식귀로 보이는 고블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족히 삼십은 넘어가는 그들의 틈바구니로, 그는 익숙한 모습의 한 고블린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씨익-

한차례 웃음을 짓고는 사라지는 그 모습은 분명히 그가 잘 아는 고블린, 드란이었다. 화들짝 놀란 그가 다시 그곳으로 시선을 집중했을 때는, 이미 드란은 사라지고난 뒤였다.

"설마..."

게슴츠레 뜬 눈으로 무언가 짐작가는게 있는듯 침음성을 흘리며 생각에 잠기려 했지만 고블린들이 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키에에에에에-!!

괴성을 지르면서 한 고블린이 그 몸을 변질시키면서 달려들었다. 그와 같은 녀석들에게서 많이 본 유형, 손과 팔을 촉수로 변형시키는 종류의 식귀였다.

이 정도의 적 쯤은, 그에게 별로 어려운 적도 아니었으며 그 공격은 그에게 거의 듣지 않는 정도의 적이었다.

몸을 한차례 옆으로 돌리고는 자신을 향해서 달려든 식귀를 향해 손아귀에 들고 있는 도끼를 내던졌다.

퍼억-

그의 공격은 식귀의 이마를 찢어버리다 못해 머리를 두쪽으로 갈라버렸다. 그것만으로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고블린은 녀석 뿐만이 아니었다.

기이이잇

그때까지 멈칫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그를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