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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2화 (282/374)

282화

괴변

성주 연합의 성주들과, 그들의 부하들이 머무는 장소. 이곳에는 사실 민간인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성주들은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다가올 경우를 경계해서, 가족들은 이미 왕국의 수도로 보내두었다. 그리고 병사들도 최대한 멀리 가족들을 보내거나, 아예 변종 고블린에 의해서 희생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 이유로 이 곳에는 민간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극소수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나마 안도하는 이유였다.

푸욱

"컥"

한 병사의 목을 살짝 붉은색이 감도는 촉수가 꿰뚫었다. 목을 꿰뚫린 병사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몸이 고꾸라지면서 절명해버렸다. 그와 같은 광경은 지금 이곳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성주 연합이 머무는 곳은, 굳건하게 세워진 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견고한 방책이 만들어져 있었던 만큼, 변종 고블린들이 처들어 왔을 때 어느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변종 고블린들에게 그와 같은 방책은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휘익-

또 하나의 고블린이 방책을 뛰어넘어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병사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갔다. 수십의 병사들과 그들을 뒤에서 받쳐주던 보급병들 수백은 순식간에 전멸에 가까워졌다. 그나마 새롭게 징병한 병사들이 저항을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듯 보였다.

징병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들 대부분이 떠나간 이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된 이들이며, 마구잡이로 진행된 징병이 병사들의 질을 유지시켜줄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을 때, 고블린들이 처들어왔을 때 그들을 지휘해야만 했던 성주들은 미리 만들어져있던 지하로 이어지는 샛길을 통해서 방책으로 둘러쌓여있던 마을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 성주들의 의도를 알았던 것인지 방책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변종 고블린들 중 일부가 그들이 빠져나올 장소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누가 하나 자기가 책임을 짊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후퇴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성주들은 그렇게 변종 고블린들의 손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무렵 방책의 안에서 기를 쓰고 방어하던 병사들은 마지막까지 항전했지만, 역부족으로 결국 마지막 하나의 병사가 쓰러질 때 까지 단 하나의 고블린도 쓰러트리지 못했다.

그렇게 제라임 성 주변의 성들은, 연합까지 해가면서 그들에게 대항했지만 계속되는 소모전이 한계에 치달아 그 대부분이 제라임 성과 비슷한 말로를 그려내고야 말았다.

///

다섯 성주의 연합은 성주들의 죽음으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각자의 성에는 조금이나마 병력이 남아있거나, 따로 숨겨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 본인이 죽어버렸으니 모두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계속되는 변종 고블린들의 출현과 일일이 그들을 막아냈던 병사들의 전투는 그야말로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적은 경우는 오십 정도의 병사들이 하나의 고블린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상당한 운이 작용하거나, 비교적 허약한 개체가 걸려든 경우의 이야기다. 보통은 백은 기본으로 이백, 삼백의 희생으로 하나의 고블린을 잡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나마도 고블린들이 뭉치면서 그 교환비율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늘어났다. 개체 하나 하나가 심하게 차이나기 때문인지, 하나를 막을 때 보다 둘 셋을 막을 때 그들을 막아야하는 병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종래에는 그들을 떨어트려서 공략하다보니, 그 희생자가 변종 고블린 하나에 천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 후에는 그나마 새롭게 전략을 가다듬어 보다 효율적이게 고블린들을 상대했지만, 그것도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었던 것이다.

성주 연합은 충분히 고블린들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어주었으며, 동시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만일에 대비해서 왕국의 수도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수도는 고블린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은, 다섯 성의 바로 후방에 놓인 성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변종 고블린들의 등장에 침착하게 대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쾅-

이제는 완전히 뭉쳐서 다니기로 한 것인지 한 자리에 다섯에 달하는 변종 고블린들이 뭉쳐서 마을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을에 있던 병사들은 요령도 좋게 그들을 각각 따로 나누더니 미리 짜놓은 듯이 차륜전으로 몰고갔다.

공격 하나가 곧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필사의 일격이었지만, 온전히 방어에만 신경을 써서 그런지 그런 공격들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다섯의 고블린들을 상대하면서 제법 많은 피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직후, 병사들을 통솔하던 한 기사는 분통을 터트렸다.

"저 놈들을 막고 있다던 다섯 성주들은 대체 어떻게 된거야?! 연합까지 해서 막고 있다면, 놈들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일이 없어야하는게 아닌가!"

다섯 성주가 이루어낸 연합이 허무하게 산화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어느곳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저 만일에 대비해서 왕국이 다섯 성주들의 후방에 있는 성주들에게 정보를 전해주었고, 그에 맞추어서 병사들이 훈련을 이어갔던 것이다.

훈련이 제법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변종 고블린들을 상대하는데 그들 생각만큼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병사들과 그들을 지휘하던 기사들의 내심에 안도감이 떠오르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들을 놓쳤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그들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성주들을 성토하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해야 할 적을 생각하기도 다급한 상황에 그런 불만사항이 떠오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사는 내내 투덜거렸지만, 어찌되었든 고블린들의 출현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상당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그에 대한 보고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보고로 성을 다스리는 성주들도 변종 고블린들의 등장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

새롭게 고블린들의 침공을 받고 있는 성주들 중, 한 성주의 방. 이곳에 있는 것은 성주 본인 단 한명 뿐이었지만, 그는 생각에 잠겨있는듯 골똘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듯, 그의 앞에 놓여있는 서류에는 고블린들의 침공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주제였다.

"고블린 놈들이 처들어왔는데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건... 둘 중 하나인데 말이지"

다른 성주들에 비하면 상당히 젊어보이는 남자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보이는 모습이 그의 나이가 겉보기보다 많아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는 아무 소식도 없이 고블린들이 그의 영역에 나타난것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성주 연합으로부터 이야기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통신수단도 마련되어있는 만큼, 소식의 전달이 늦는다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예상 할 수 있는 경우는 두가지로 나뉘게 된다. 다섯 성주의 세력이, 결국 고블린들을 놓칠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거나, 아니면 성주 연합 자체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을 가능서이었다.

두가지 모두 그에게는 골치아픈 이야기였고, 특히나 후자의 경우라면, 완전히 방어선이 뒤로 물러나 고블린들을 막아내는 이들 중 하나로 그가 선정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다섯 성주가 계속해서 남아있어주기를 원했던 그였지만, 그가 원하는대로 될 일은 없었다.

그가 고민에 잠기게 했던 다섯 성주에 관한 소식은 결국 비보로 그의 귓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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