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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1화 (281/374)

281화

괴변

후우우우웅

지하로 발걸음을 옮기는 루프스의 귓가로 바람이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음산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띄는 이 장소는 그야말로 불길함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장소였다. 루프스는 그런 분위기는 일절 무시하고 나아가고 있음에도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슬거슬한 벽은 물론이고, 별로 세심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지 만들어져 있는 계단도 다듬지 않아 거칠은 모양새였다. 그 형태를 보면 용케도 계단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계단은 상당히 길었다. 그리고 그만큼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깊었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애초에 지하였고, 불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장소였던 만큼 그건 그저 느낌이라고 치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일까, 계단을 내려가던 루프스는 곧 그 끝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끝에서 비춰지는 불빛을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대체 뭘..."

제법 긴 시간동안 계단을 내려온 루프스는 불빛까지 금방 도달 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피면서 이동했기에 천천히 갔던 것이지, 그 끝이 보인다면 굳이 주저할 필요는 없었기에 금세 도착 한 것이다.

제법 긴 시간만에 마주치는 불빛은 비록 밝지는 않더라도 일시적으로 루프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는 되었다. 찰나라고 해도 좋을 적응의 시간이 지나고 제대로 눈을 뜬 루프스의 눈에 이곳에서 벌어졌던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

변종 고블린의 무리와 전투를 벌였던 일반 병사들은 뒤늦게 합류했던 녹색 깃발 기사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목적지도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서 그리 먼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귀환하자마자 보고를 올렸고, 그들의 보고는 금세 성주들의 귓가에까지 들어갔다.

"또 다른 변종이라니..."

지금까지 나타난 것 만으로 충분히 다양한 변종 고블린들이 나타났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로 뭉뚱그릴수 있었다. 그들이 지닌 힘이나 능력은 굳이 따지자면 거의 균일한 수준이었고, 기본적으로 같은 최하급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같은 카테고리로 묶어놓았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보고로 들어온 정보는, 그들보다 상위 개체에 관한 소식이었다.

"변종 고블린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게 많으니, 보다 상위의 개체가 나타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오. 하지만 상위개체가 나타났다는건 그보다 상위에 있는 개체가 따로 있을수도 있다는걸 암시하고 있다고 보오"

이 자리에는 성주들이 다수 모여있었다. 보통 원거리로 연락을 하곤 했었지만,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각 성의 최고 권력자인 성주들이 모여있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발언을 내뱉은 이도 그런 성주 중 한명이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당장은 주변 성주들로부터 빌렸던 기병들에 관한 것이 가장 큰 난점이오"

변종 고블린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성주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발언 때문에 그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보다 위협적인 상위개체가 나타났다는 소식보다는, 당장 주변 성주들로부터 빌린 기병들에 대한 책임소재가 그들에게는 더욱 급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맞소. 아직 결과가 전해지지 않았으니 괜찮겠소만... 시간이 지나 소문이 퍼지거나 기병들에 대한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절대 좋은소리는 듣지 못할거요"

세번째 성주는 기병을 잃은 책임을 추궁받을까 걱정되는지 열성적으로 그에대한 대책부터 세워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의견은 무시 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의제가 새로 나타난 변종 고블린에 관한 이야기보다 우선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병들의 도움이라면 충분히 다시 처들어오는 변종 고블린들을 상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졌을 경우에 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난제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일단은 시치미를 떼면서 버티자는, 조잡한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이 이제 남은 힘이라고는 과거에 비해서 미약할 뿐인 성주들이 내린 최선의 수였다.

성주들은 기병들에 대해서 일단락 되자 그제서야 변종 고블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위협적인 변종 고블린들에게 새로운 변종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전혀 달가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들에 관한 의논은 기병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처럼 손쉽게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병사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뒤늦게 나타났던 녹색 깃발 기사단이 도와준 덕분이었다. 성주들도 그들이 어떤이들인지 알고 있었으며,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지만, 그건 또 그들에게 충분히 납득이가는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을 잡고자 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이 이런 일에 빠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이미 그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을 것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전법으로 다루던 것들 중 하나가 그들과의 합류이기도 했으니 그들의 참가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병사들이 정보를 들고 왔으니, 그들에게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비록 들어온 정보가 그들에게 유용한 것이든 그렇지 않으면 한낱 휴지조각과 같은 것이던지 말이다.

"녹색 깃발 기사단 덕분에 병사들이 도망 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오만...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 보다 성가신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오"

최초 이 이야기를 의제로 꺼내려던 성주가 이제서야 말을 끄집어냈다.

"음... 지금으로서는 상대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것이 아닌가?"

네번째 성주가 이야기했다. 이미 여러차례 벌어진 전투로 병사들이 지쳤거니와, 녹색 깃발 기사단의 생사도 불명확하다는 것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혹시나 단 한개체 남았다는 고블린에 의해서 그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을 수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놈에 의해서 전멸할것이 아니오?"

첫번째 성주는 이대로 있을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고, 누구도 그 말에 반대를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길 가능성이 없다면... 이 땅을 버리고 도망치는게 낫다고 생각됩니다만"

다섯번째 성주가 입을 열었고, 그 말은 다섯 성주 연합을 혼란으로 빠트려버렸다. 그에 동조해서 영토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을 챙기자는 이들과, 다스리는 영토와 목숨을 함께할 것이라는 이들로 나뉘어졌다.

결국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서로 말다툼만으로 회의는 막을 내렸다.

///

성주들이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을 무렵, 루프스가 행방을 놓쳤던 고블린은 다시 행동을 시작했다. 루프스와는 길이 엇갈리면서 서로 마주치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다시 이전만큼의 병력을 보충해서는 다시 통로의 밖으로 나섰던 것이다.

통로를 나선 고블린의 목적지는 병사들이 도주한 성주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변종 고블린들을 통솔하는 지휘개체는 병사들이 도주한 방향을 목적지로 삼았다. 한번 노렸던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굳이 주변의 다른 생존자가 있는 마을이 아닌 병사들의 흔적을 쫒았다.

그렇게 성주 연합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고 있을 때, 성주들은 각자의 보신만을 생각하면서 서로 말다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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