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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80화 (280/374)

280화

괴변

식귀로 변한 고블린들이 정신없이 주변 사물들을 먹어대기만 하던 장소에서 빠져나온 루프스는, 일단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정확히 어느곳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만큼, 일단 무작정 돌아다니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통로가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짐작했기 때문에, 다음 마을로 건너가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그 후 루프스는 약 다섯에 달하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 어디서도 제대로된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곳은 없었으며, 오히려 이러다간 이 통로 전체가 무너지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먹어대는 식귀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외에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가 최초 쫓아왔던 녀석도 길이 갈라졌는지 그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운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다섯번째 마을이었던 흔적을 지난 루프스가 다음으로 발견한 곳은 그가 원하는 정보가 있을 것으로 짐작 되는 곳이었다.

'흐음...'

또 다른 마을이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장소로 들어선 루프스는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찾았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으니, 그것이 그의 관심을 끌어모아주고 있었다.

그가 찾은 또 다른 마을로 보이는 장소는 지금까지 발견했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식귀가 들러붙은 동족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동족까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닌 어떤 생명체도 그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그 이외의 면에서도 이질적이었다. 지금까지 찾은 장소와는 다르게 이 마을은 그 어디에도 문제는 보이지 않으며, 마을을 짓고 생활하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발견했던 마을들이 하나같이 무너져 있고, 식귀들에 의해서 마을이라는 정체성이 조금도 남지 않았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명확히 이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모습에 루프스는 일단 마을을 둘러보았다.

저벅 저벅

루프스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마을이기에 마음이 놓인 것인지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걸었다. 실제로 지금도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접근하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직접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안 것은 멀쩡해 보이는 마을이었지만, 그것도 다른 마을과 비교했을 때라는 사실을 그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바닥에는 고블린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는 물론 각종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망치면서 쓰러진듯한 모양새인 물건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가 떨어트린 듯 덩그러니 있는 물건도 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하다가 엎은 듯 보이는 고기는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었으며, 채소는 색이 변색되고 말라버려 몸에 해로워 보였다.

명백히 무슨 소동이 벌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건물들, 대체로 움막들이었지만, 무너져 내린 것이 극소수인 것이 물리적으로 위험한 일이 벌어진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루프스는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곳의 넓이가 다른 마을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도 하기 힘들정도로 크다는 사실이다. 다른 마을들은 식귀들이 벽을 파먹었기 때문인지 대폭 넓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본래의 마을 크기를 짐작하는 것은 건물의 터가 남아있는 위치만 보아도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확인했던 마을들과 비교했을 때, 면적으로 지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커보이기까지 했다. 밀집되어있듯이 많은 건물들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채는게 늦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루프스는 이곳에서 어쩌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귀 놈들의 무차별적인 식사에 의해서 넓어진 면적은 본래 마을의 두배하고도 반배정도. 아무것도 있지 않은 곳이기에 더 넓어보이는 면이 없지않지만, 그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소와 비등한 면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십중팔구 이곳이 본래 쿠알론이 이끌던 고블린 무리의 수도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 사실을 유추한 루프스는 최대한 마을의 중심부를 향해서 움직였다. 본래부터 중심부에 자신의 집을 짓고는 했던 루프스를 지켜보았던 그의 아들들이라면 이곳에 그들의 거주지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는 자식들이나, 그런 면에서는 루프스를 닮은 행동을 하는 그들의 행동을 떠올리면 거의 분명할 것이라고 루프스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중앙에 세개의 천막이 놓여져 있었으며, 그 중 하나는 유독 커다란 모습을, 그리고 나머지 둘이 그보다 조금 작은 형태였다. 부족을 나갔던 그의 자식들의 숫자는 셋이니 이곳이 그들의 거주지라고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루프스는 가장 먼저 제일 큰 천막을 걷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예상대로 이곳은 그의 아들중 하나가 사용했던 곳으로 보였다. 게다가 침상 이외에도 커다란 옥좌와 같이 보이는 의자와, 그보다 약간 간소한 의자 두개가 그 주변에 있는것으로 보아선, 보통 셋이서 의사를 결정하거나 부하들로부터 보고받는데 함께 사용한 장소로 보였다.

루프스의 생각보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먼지가 쌓여있는 모습이 이 천막의 주인이 오랜시간 자리를 비우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막을 샅샅이 뒤졌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 루프스는 다른 천막도 확인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허탕만 쳤다. 두번째로 진입했던 천막을 헤치고 나온 그는 이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천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펄럭-

아무것도 찾지 못한것에 짜증이 났던 듯 천막이 거칠게 펄럭였지만, 루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별다른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앞선 두곳과 달리 이곳만큼은 의심스러운 점이 남아있었다. 다른 두 천막과 마찬가지로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그 두께가 비교적 얇았다. 아마도 세 장소에 먼지가 쌓인 것은 식귀에 의한 문제가 발생한 뒤 아무도 찾지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듯 한데, 이곳만 비교적 먼지의 두께가 얇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루프스는 모두 살펴봤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한번 더 살펴보기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샅샅이 뒤져보니, 생각을 달리했기 때문인가 좀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스으윽-

그것은 이곳의 주인이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의자였다. 큰 천막에 있던 것에 비하면 덜 화려한 의자였지만, 충분히 크고 다양한 장식이 달려있는 의자였다. 그리고 그 의자의 다리가 있는 곳 부근이 루프스에게 의심을 안겨주었다.

바닥을 쓸어내면서 더욱 세심히 관찰한 루프스는 그것이 무언가가 끌린 자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의자의 무게가 가벼운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충분한 내구성을 지닌 물건을 이용한 것인지 자국은 그리 크지 않은 정도가 아닌, 희미해서 가까이서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의자가 끌린 자국도 은폐하는 그 기술력에는 의아함이 들기는 했으나, 루프스는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를 잊지 않았다. 바닥에 생겨나 있는 끌린 자국에 따라 의자를 옮겼고, 의자는 그의 생각보다 쉽게 옆으로 밀려났다. 의자가 치워진 그곳에 있는 것은 언뜻 조잡해 보이기도 하는 문이 하나 있었다.

콰직!

굳이 문을 여는걸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루프스는 잠금장치를 향해 손을 내뻗어 그저 무식하게 잡아뜯어 버렸다. 문은 성대하게 박살이 났지만, 그런것은 루프스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끼익-

기름칠이 안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문은 열렸고, 그 안을 향해서 루프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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