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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78화 (278/374)

278화

괴변

기병의 지휘관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 두 눈에 가장 처음 담은 것은 무참히 잘려나가고 있는 동료들의 머리였다.

데굴데굴

멀지 않은 거리에서 공중으로 치솟은 한 기병의 머리가 그의 앞으로 굴러왔다. 공포에 질린 표정의 머리는 잘린지 얼마 안돼었기 때문인지 움찍움찔 움직이고 있는듯도 보였다.

"아....어..."

마치 착란이라도 일은것 같은 광경에 기병 지휘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동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모습에 그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괴로움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앞에서 벌어진것보다 오히려 더하다고 할 수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참상이었다. 말과 인간의 몸이 이리저리 얽히고 섥혀서는 끔찍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 그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짐작 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달리고 달려야할 기병이 어째서 멈춰 있는지, 그리고 멈춰선 이들의 뒤편이 어째서 이렇게 엉망이 되어있는지는 지휘관이면서 스스로 기병이기도 한 그는 못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착란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그를 향해서 뻗어오는 마수가 있었다.

푹-

괴로운 상황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지휘관이 그 공격을 피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단숨에 그의 머리는 꿰뚫렸고, 머지 않아서 발이 묶여있던 기병들도 전멸을 면치 못했다.

///

병사들은 고블린들의 측면을 공격한 기병들이 전멸했음을 알지 못했다. 바로 코 앞에 있는 고블린들을 신경쓰기도 바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정면을 공격한 병사들과 측면을 공격한 기병들 사이의 간격은 상당했으며, 시야에 들어오는 곳은 비대한 덩치의 고블린이 막아서면서 서로의 상황을 살피지 못하게 막았다.

살펴보고자하면 못할것도 없었지만, 그 사이에 발생하는 희생과,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기병들을 믿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고블린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기병들은 패배했다. 그렇게 되면서 저절로 기병들 쪽에 집중되어 있던 인원들이 병사들 쪽으로 모여들었다. 기병들 쪽은 그쪽을 수습할 한두마리의 변종 고블린만이 남아있고, 나머지는 이곳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렇기에 앞서 병사들과의 전투로 지친 고블린을 뒤로 빼돌리는 차륜전 방식을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개체 하나하나의 차이가 큰 인간의 병사들과, 변종 고블린들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희생을 치루며 놈들을 상처입히고,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더라도 교대하듯이 다음 적이 나타나니, 병사들로서는 손쓸 방도가 점점 없어져 갔다.

그건 그들을 지켜보던 루프스도 같은 의견이었다.

'곧 결판이 나겠군. 결국 저 놈들의 대장을 끌어들이지도 못하는 수준인가'

유심히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루프스는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뭉쳐다닐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일렀다. 이미 기병은 모두 전멸했으며 변종 고블린들과 고군분투 하고 있는 병사들도 전멸이 가까워진 만큼 그의 판단이 틀렸다 말하긴 어려우나, 새로운 난입자가 끼어들면서 판도가 바뀌어버렸다.

촤악-!

한 변종 고블린이 동료와 교대를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과의 전투로 치명상은 없었지만, 제법 많은 상처로 전투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되었다. 굳이 교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상대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던 만큼 뒤로 물러선 것이 그의 명을 단축시켜 버렸다.

한 난입자가 뒤로 물러서는 변종 고블린을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단을 시켜버렸다.

"녹색 깃발이다. 원호하지"

갑작스레 나타난 난입자는 병사들을 향해 담다히 말하고는 후방으로 빠져 있던 또 다른 고블린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이들이 나타나 휴식과 회복을 취하고 있던 고블린들을 공격했다.

전체적인 능력치는 분명히 변종 고블린들측이 우위였지만, 후방에 대기하던 이들은 이미 한차례 전투로 지치거나 다쳐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변종 고블린들은 오로지 명령만 듣도록 한차례 다른 고블린들보다 가공을 거친 이들이다.

휴식을 취하라는 지시를 들은 그들은 반격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병사들을 상대하던 고블린들은 뒷쪽에서도 적이 나타났기에 상대하려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함을 눈치챈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발을 묶어두었다. 덕분에 갑작스레 등장했던 녹색깃발 기사단은 그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손쉽게 휴식을 취하던 변종 고블린들을 전멸시켰다.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은 거지?'

기사단장은 자신과 부하들이 베어가르던 고블린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 중요한 전투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것은 일단 털어두었다.

다른 변종 고블린이 죽으면서 가루가 되어 흩날릴 때, 검에 묻은 이물질도 마찬가지로 흩날렸지만 기사단장은 버릇처럼 검을 한차례 털어냈다. 그리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변종 고블린을 상대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합류했다.

병사들과 합류한 기사단장이 한 일은, 지친 변종 고블린들을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거의 변종 고블린과 동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던 만큼 이미 숫적으로 압도하고 있던 병사들을 상대하느라 은근히 지쳐있던 고블린들을 상대하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변종 고블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멸에 이르렀다. 병사들의 생존자는 그 수가 매우 적었지만, 전멸의 위기에서 구해준 기사들 덕분에 약 오십여명이나마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아직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양측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멀직이 떨어져있는 루프스만이 아니었다. 변종 고블린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고블린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단장은 싸움이 거의 끝나갔지만 마음을 놓지 않았다. 상대는 그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이들과는 다름을 그 위압감으로 알려주고 있었던기 때문이다.

"흐읍! 대열을 다잡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후퇴해서 놈에 대해서 알려야한다!"

그정도로 그의 위험성을 인식하기에는 충분했고, 기사단장은 다급히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의 지시를 받은 기사들은 움직여 아직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고블린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그리고 기사들 덕분에 살아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사 단장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고블린의 모습을 확인했다.

게다가 놈은 지금까지 마주쳤던 고블린보다 한층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는, 최초 확인했었던 지휘개체가 분명했다. 그 밑에 있는 고블린들 만으로 상당한 고생을 했던 그들은 기사단장의 말에 황급히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하나 남은 변종 고블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앙-!

달려드는 순간 이미 모습이 변해있던 고블린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고, 그 표적인 기사단장은 무의식중에 들어올린 검으로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아...안보였다니?!'

지금까지 겪어본적이 없는 사태에 당황한 그였지만, 그가 흔들리는 정신을 수습하기까지 고블린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쉬익- 핏

고블린의 공격은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 여파는 그런 산들바람 같은 것이 아니었다.

푸화악-

순간적으로 평정심이 흔들렸다해도, 일반 변종 고블린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그가 단숨에 목이 잘려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최후에 이어서 그의 부하인 기사들도 그를 따라가기까지는 조금의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이미 도망친 병사들은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지금까지 나타났던 다른 변종 고블린들과 다르게 놈은 왔던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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