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괴변
지휘관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기다리던 이들이 도착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노린듯이 변종 고블린들의 대열 맞추기도 마침 끝이났다.
두두두두
병사들의 뒤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듯한 발소리를 들으면서 병사들은 정면에 도열해있는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고블린들의 수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스물이 될까 싶은 정도의 숫자였다. 하지만 소수인 적을 얕보고 있는 이들은 이들 중에서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의 눈 앞에 있는 고블린들에 의해서 목숨을 달리한 사람들의 숫자가 몇이나 될지 짐작도 하기 힘들정도였으니, 그 누구도 눈 앞의 정신이 팔려있는듯 보이는 고블린들을 얕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변종 고블린들도 병사들을 향해, 마치 너희들이 공격해 보았자 별볼일 없다는 듯 도열 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들의 태도에도 아무도 선제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변종 고블린들의 태도가 의미 없는 허세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병사들은 고블린들을 먼저 공격하지도 못하고 그저 칼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지만, 먼저 공격을 시작한 쪽은 고블린들도 아니었다.
"쳐라!"
병사들의 뒷편에서 들려온 말이 공격의 신호탄이었다. 순식간에 병사들이 있던 장소를 기점으로 둘로 갈라져서 돌진해오는 기병들이 나타난 것이다.
말이 달리는 다그닥 거리는 소리가 무수히 겹쳐 커다란 소음을 발생시키면서 병사들의 양쪽 측면에서부터 나타났다. 그리고는 곧장 고블린들을 향해서 돌격해 들어갔다. 그들의 돌진에는 고블린들 따위가 자신들을 막을 수 있을리가 없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있었다.
그렇지만 기병들의 앞에 있는 것은 병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변종 고블린들이었다.
왜소하고 조그마한 형상의 한 고블린이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기병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척에 도달했을 즈음, 고블린의 신체가 급격히 불어나 기병들의 앞길을 막았다. 그것은 기병이 공격해 들어오는 양 측면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고블린들과 가까이 접근한 기병들로서는 피할수도, 그리고 피할생각도 없는 상태였기에 고블린들의 모습이 변하든 말든 계속해서 돌진했다.
쿠어어어--!
크게 소리지른 고블린은 비대해진 몸을 웅크려 기병의 돌진을 막아섰다.
"이야아아아아!"
그런 고블린들을 향해서 기병들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퍼억- 퍽 퍼퍽-
"으아악!"
"..."
쿠워어어어어-
최초에는 고블린이 아닌 기병들이 오히려 튕겨져 나갔다. 이전의 모습이 무색하게 현재의 형태와 무게가 적용되는 것인지 비대해진 고블린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기병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 변종 고블린과 튕겨나가는 아군을 보면서도 기병들은 침착하게 계속해서 놈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다섯, 여섯, 일곱 기병이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중심을 잡기 힘든것인지 여덟기째 기병의 공격으로 변종 고블린의 몸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아홉번째 기병의 공격으로 몸이 쓰러져버렸으며, 열번째 기병의 공격으로 몸이 튕겨져 길을 비켜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무렵에는 그의 뒤쪽에 있던 변종 고블린들의 대비가 끝난 뒤였다.
달려드는 기병의 발 밑으로 끈끈이와 같은 무엇이 주욱 깔렸고, 달리던 기병들의 속도가 점점 급감하고 이내 멈춰버렸다.
전방의 기병들은 단순히 몸이 묶이는 정도였지만, 중간부분과 후방의 기병들은 서로 추돌사고를 내면서 혼잡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기병들을 향해서 양 측면 각각 셋의 고블린들이 멈춰서버린 기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후방에서는 다수의 기병들이 목숨을 잃고 중상을 입은 이들도 다수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블린들이 직접 달려드니 기병들이 무력화 되는 것도 순식간 이었다.
기병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그 때, 기병들이 변종 고블린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병사들도 이미로 고블린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이 달려들면서 동시에 변이한 고블린들의 손짓 한번에 한 병사의 몸이 부서지고 튕겨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병사들은 계속해서 고블린들을 향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휘리릭-
고블린으로부터 날아든 촉수가 병사가 휘두른 검을 잡아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빈틈을 향해서 후방에 위치했던 궁수가 화살을 날렸다.
퍼억-
그으으으-
화살은 멋지게 고블린의 품으로 파고들어 가슴께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변종 고블린은 희미한 울음소리만을 낼 뿐,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병사들 중 누구도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정도 피해로 저 두려운 변종 고블린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절치않은 병사들은 전면에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둘러오는 족족 촉수를 휘둘러 빼앗는 고블린이 있는가 하면, 단단한 갑각으로 공격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버리거나, 마치 액체와 같은 몸으로 변해 물리적인 공격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반칙같은 변종들이 병사들의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최초와 비교해서 상처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습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병사들은 저들이 외견과 달리 속으로 피해가 누적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흐읍!"
한 병사가 검을 뺏으려 휘둘러지는 촉수를 잘라냈다. 촉수는 금방 재생되었지만, 좀 전보다 비교적 느릿한 속도로 재생되었다. 단단한 각질과 같은 피부 갑각을 두른 고블린은 계속된 공격으로 슬금슬금 피부에 금이 가고 있었으며, 액체와 비슷한 신체를 지닌 고블린의 몸집은 좀전보다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관찰력이 좋은 병사들은 눈 앞의 고블린들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는 흔적들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이번에도 변종 고블린들에게 승리를 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서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항상 원하는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죽어라아아!"
한 병사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앞에 있는 촉수를 다루는 고블린은 여러번의 부상으로 재생속도가 확연히 느려져 있었고, 지금은 잘린 촉수 중 하나가 수초가 지나도록 재생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고블린의 모습에 병사들은 고무되어 쉬지않고 검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아냈다.
그런 병사들에 대응하듯이 변종 고블린은 검을 잡아 빼앗거나 쳐내고, 화살은 촉수로 막아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공격에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 병사는 변종 고블린이 기이한 낌새를 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공격을 피한 고블린은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취했다.
탓 타닷-
한번 뒤로 뛴 그가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있던 자리를 매꾸는 고블린이 그의 뒤에서 등장했다. 다름아닌 측면에서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변종 고블린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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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한참 변종 고블린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는 그 때.
기병들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본래 그 돌파력이 가장 큰 무기인 기병들이 처음부터 고블린에 의해서 돌격력이 약해진 시점에서 사실 이미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크... 크윽..."
기병을 통솔해야하는 기병대장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가장 선두에서 고블린들을 향해서 질주했던 그는, 갑자기 비대하게 커진 고블린과 충돌했었다. 그리고 놈에 의해서 튕겨졌지만 천운이었는지 훈련에 의한 반사적인 움직임 때문이었는지, 묵직한 갑주와 말과 함께 쓰러져 있었지만, 그 목숨만큼은 붙어 있었다.
그 후 짧게 기절했지만, 금방 회복하고 지금 그는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끄는 기병들이 자신이 쓰러졌다고 멈췄을리는 없으며, 그 강한 힘을 익히 믿고 있는 만큼 고블린들의 틈을 유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그에게 보이는 것은 그런 희망적인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