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괴변
루프스가 갑작스레 나타난 고블린의 모습을 한 식귀들을 경계하고, 드란이 수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던 그 때.
플루 왕국은 한창 변종 고블린들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여전히 제라임 성 근처의 성에서만 출몰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속적인 변종 고블린들의 공격 때문에 대부분의 성들이 이미 함락 직전까지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승전보를 올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강자인 변종 고블린들이 지치지도 않고 끝도 없이 나타나니 그들로서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미 놈들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왕국에서 도움을 주는것이 정상이지만, 바로 직전에 골렘과의 일전 때문에 그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그 때 희생된 병력과 고급 전력들 때문에 더욱 놈들과의 싸움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주변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것도 반응이 시원찮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공격을 당하는 성들끼리 알아서 대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마을이 여럿 버려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으아악!"
"사... 살려... 커헉?!"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다수의 변종 고블린들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도망치는 인간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한 비대한 덩치를 한 고블린은 인간들을 향해 몸을 굴리면서 압사 시키는가 하면, 팔이 지렁이와 같은 끝이 뭉툭한 형태의 촉수로 바뀐 고블린은 그걸로 도망치는 이들의 목을 졸라 교살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무기를 휘두르는 고블린은 보이는 족족 참살시키고 있었다.
세 고블린은 마치 물만난 물고기마냥 날뛰어 대고 있었다. 비대한 고블린에 의해서 찌부러진 이들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목이 졸린 이들은 피는 흘리지 않지만, 온몸으로 오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고블린에 의해 죽거나 다친이들은 절단면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온 바닥이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되고 있었고, 날뛰는 고블린들의 몸도 한치의 틈도 없이 그것들로 채워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대로 계속해서 주변의 인간들을 죽일 뿐이었다.
뿌지직
"기잇... 기잇... 기잇"
온몸을 굴리면서 인간들을 압사시키고 있던 고블린은 마치 지쳤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뜻 약해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마을에 남은 인간들은 그에 신경쓰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놈으로부터 달아나려 애썼다.
세 고블린으로부터 유린당하고 있는 마을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 구석에 처박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패닉에 빠져있는 이들이있었다. 각자가 변종 고블린들의 공격으로부터 대처하는 자세는 달랐지만, 하나같이 그들의 눈에는 절망이 차올라있다는 별로 좋지 못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을 절망케 한 것은 세 변종 고블린들의 몫도 상당하지만, 그보다 더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절망감이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이들도, 가족을 일초라도 더 살리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도, 한 구석에 처박혀 멍하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이들도 모두 이곳으로 지원군이 올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준동이 일어난지 제법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왕국 전역의 백성들이 놈들의 등장을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직접 침공받는 성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그에 대해서 모를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마을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각 성에서 파견된 병사들이 그들을 막아주고는 했었다. 최초에는 변종 고블린을 해치우는 일은 드물었지만, 패퇴시킨 경우는 종종 있었다. 당시에는 어쩐지 움직임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패퇴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병사들이 패퇴 당하거나 전멸하는 일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거의 싸우는 족족 지기 일쑤였다.
당연히 성주들은 허비하듯이 병사들을 버릴 수 없었고, 더 이상 마을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하나의 성이 지닌 병력으로 대항하기에도 녀석들은 너무도 버거웠다. 그 때문에 주변의 성주들끼리 뭉쳐서 새롭게 군을 꾸렸고, 현재 그들에 의해서 간신히 전선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 이 마을 처럼 희생되는 마을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었다. 병사들을 뭉쳐 변종 고블린들을 대응하는게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그만큼 놈들을 막아선 방어선이 좁아졌다. 자연스레 방어선의 바깥에 있는 이들은 버려졌고,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 마을도 그에 속하는 장소였다.
"으, 흐크아아아앗!!"
그저 고블린들에게 쓰러지기만 하는 것을 억울하다 생각했는지, 한 청년이 놈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으?
퍼억!
그렇지만 힘의 차이가 역력하기 때문일까, 청년의 공격은 변종 고블린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그저 그 목숨을 헌납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청년을 마지막으로 마을의 마지막 생존자도 목숨을 잃게 되었다.
마을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생명체는 없었고, 세 고블린들은 뭔가에 홀린듯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게걸스럽게 입으로 쏟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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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마을이 완전히 끝장이 났지만, 그 비극은 오로지 마을사람들 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마을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어떤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보다 큰 전투였다.
변종 고블린들과 인간들이 뒤섞인 난전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들은 조금이라도 고블린들의 전진을 막기 위해서 분발했고, 고블린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들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압도적으로 유린하기만 했던 고블린들이 이곳에서만큼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일부일 뿐이지만 그들이 밀리는 기색을 보여주는 전선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도 일부일 뿐이라는 것일까, 가로막히고 저지당한 곳 보다 더 많은 장소에서 고블린들의 전력에 밀리고 있었다.
양측 모두 크나큰 사상자를 내고 있었지만, 그것에 신경쓰는 것은 오로지 인간측 뿐이었다. 고블린들은 동족들이 죽어나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저 눈 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성주 연합의 병사들의 구명줄이었으며 유일한 승기의 잔상이었다.
변종 고블린들은 함께 싸우나, 협력하지는 않았다. 서로 공격을 하지 않을 뿐, 누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전체에 이득이 되는지를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반면 병사들은 독기에 차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버리고 온 마을 중에는 자신의 가족이 살던 마을이 있으며, 오랜시간 보살펴준 은사가 머물고 있는 마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들 전부를 버린다는 각오를 하고 모여있는 것이었다. 그런만큼 전력적으로는 약하지만 단합력만큼은 절대적으로 고블린들에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병사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온몸을 던져서라도 구하며, 적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구해진 목숨도 헌신짝을 던지듯이 버려버릴 수 있는 이들이 뭉쳐 있는 것이다.
당연히 방해만 하지 않고 있을 뿐인 고블린들에 비해서 월등했다.
병사들은 죽음을 불사하면서 싸웠고, 그 덕분에 고블린들 보다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변종 고블린들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는 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었다. 전체적인 비율로는 아직 열세였지만, 그래도 고블린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고무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