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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73화 (273/374)

273화

괴변

거의 하루를 온전히 사용한 회의였지만, 모든것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르윅 성과 요새가 각각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달하고, 적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한 이야기를 나눈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틀 뒤 군락지에서부터 도착한 이들과 함께 다시 회의를 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군락지에서부터 이곳까지 도착한 이들은 스콘드와 티토 그리고 그룬의 세명과 넷의 최상급 고블린이었다. 군락지 내부에 있는 영역을 지켜야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이곳에 도착 한 것이다. 요새에 도착한 그들은 가장 먼저 루프스에게 새롭게 나타난 식귀로 추정되는 적들에 대해서 들어야 했다.

"식귀가 나타났단 겁니까?"

스콘드는 식귀가 나타났단 사실이 놀라웠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반문했다. 그 또한 식귀 토벌에 참여했었던 만큼 적이 지닌 힘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 밖의 둘은 태어나기 전의 일이거나, 참여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그와 공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 때 놈과 싸워보았던 고블린들에 의해서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만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식귀가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스콘드는 그 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일단 우리끼리 어떻게든 대처하게로 결정했다. 다만 문제는 놈들의 존재 자체다. 충분히 대적 가능한 수준의 적들이고 군락지 안에 있는 부족까지 처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너희를 이 자리로 부른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나름 수긍이 갔는지 세 고블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고 이쪽은 천연 방패막이 있으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고 봅니다만..."

최상급 고블린 중 한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루프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면서 부정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만은... 놈들은 하필이면 동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만일 그곳에 나타났을 때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칫 당하는 수가 있다"

특히나 전투에 돌입하기 전의 모습이 동족의 최하급이나 하급 고블린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자칫 그들이 군락지 내부의 마을로 침투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정보를 공유해서 최대한 놈들에 대해서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천연의 방패막이라고 해도, 놈들과 싸우다보면 뚫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 당장 우리가 그 증거이기도 하지 않나"

루프스의 이야기에 수긍한듯 군락지에서부터 온 고블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비를 한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셋을 따라온 최상급 고블린 중 하나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동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니, 길을 잃었을 뿐인 동족과 구분을 하는게 가능한지 걱정하는 듯 싶었다.

"구분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루프스는 주변에 있는 이들을 향해서 그가 직접 싸우면서 얻어낸 정보를 알려주었다. 거기에는 전투가 시작되면 놈들의 몸이 기괴하게 변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는 시종일관 어벙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들이 있었다.

겉보기로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태도는 명백히 고블린과는 또 다른 것이니 충분히 구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스콘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족장, 그러면 놈들이 다수 나타났을 때를 대비한 방법은 없습니까?"

스콘드는 만에 하나지만, 식귀로 보이는 적들이 다수 나타났다는 이야기에 한꺼번에 그만한 적이 나타났을 때를 상정해서 물어보는 듯 했다.

"음... 한 개체 정도라면 상급 정도의 병력이면 충분히 상대하는게 가능하지. 상급 고블린 정도는 우리 측에 상당수가 있으니, 그들을 상대하는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진짜 문제는 그보다 상위의 적들이겠지"

루프스는 단 한개체 뿐이었지만, 이전의 식귀와 비등한 힘을 지니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면서 말을 꺼냈다.

그가 이전 지금보다 약하던 시절, 많은 부족원들을 동원해서 간신히 잡았던 것이 두더지형 식귀였다. 지금이야 상당히 쉽게 잡을 수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상급 정도의 힘밖에 없는 허약한 개체와 그보다 상위의 개체가 나온 시점에서 보다 강한 개체가 없다고는 장담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적들이 최하급 그리고 그보다 한단계 높은 것이 하급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 주목할만 했다.

루프스의 예상으로 그들은 다름아닌 쿠알론이 이끌고 있는 전(前) 부족원의 자식들일 것이다. 그 외에는 외부에 있는 그들 부족을 제외한 고블린들을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곳에는 적어도 중급의 고블린들 까지는 확보가 되어있을 것이다. 당시에도 어느정도 강하다 싶은 이들의 등급이 중급은 되었었으며, 그들을 이끄는 쿠알론들도 지금이라면 최상급의 등급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즉, 적으로 나타날 고블린들이 더욱 강한 이들로 나타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루프스로서도 그들에 대해서 딱히 이렇다 할 방책이 없다보니, 다른 이들과 그들을 막을 방법에 대해서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가지 방책을 이끌어내고, 돌아가면 그들이 이 중 실현 가능한 것들을 추려서 미리 적들이 처들어 올 때를 대비 할 것이다.

///

그르르릉-

어둡고 어두운 밀실에서 이지를 가진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존재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그 소리는 어찌들으면 생물의 울음소리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동굴이나 좁은 통로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온몸이 단단히 포박된 두 개체의 고블린들이었다. 팔다리가 쇠사슬과 수갑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있음은 물론, 몸부림치지도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몸통과 허벅지 등을 쇠사슬로 칭칭 감아두고 있었다. 실제로 두 고블린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이성 없는 울음소리를 밖으로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이 고블린들만 묶여있는 장소였지만,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려는 듯 유일하게 밀실에 달려있는 문을 통해서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모습을 나타낸 것은 다름아닌 드란이었다. 그는 벽에 묶여있는 두 고블린. 과거 그의 형제이기도 했던 쿠알론과 트레이를 보면서 태연히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저들을 이곳에 가둬둔 것도 그이니, 그의 태도는 그다지 이상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르르르릉-

그의 모습을 확인한 것인지, 강렬히 눈을 빛내고 있는 두 고블린이었지만 이성은 없기 때문인지 그저 그를 보며 조금 더 크게 울어댈 뿐이었다.

"이제 조금인가?"

드란은 그런 둘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뇌까렸다.

"형님들. 좀만 더 분발해 달라구요. 슬슬 희생양으로 써먹고 있는 놈들의 수도 간당간당하니, 저항은 그만 두시고 말이죠"

그워어어어어-!! 키야아아아아아악!

드란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 것인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고블린은 포효성을 내질렀다. 그렇지만 온몸이 포박 당한 상태이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기 때문일까 위협을 위한 포효소리가, 고통에 들어찬 신음성으로 들리는 듯 했다.

드란은 그런 둘의 모습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잠시 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내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한번 빙긋 웃고는 다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다시 어둠만이 가득차오른 듯한 밀실에 울리는 두 고블린의 포효성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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