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괴변
사라져버린 시체를 보면서 루프스의 분신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분신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루프스도 다른 적들이 더 없나 수색하던 와중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가 상대했던 적이 이전 상대했던 식귀와 완전히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매우 유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그 기괴한 신체가 첫번째 특징이었다. 이전 상대했던 놈은 그렇게까지 기괴해지지는 않았지만, 땅속을 파먹으면서 다니던 놈 답게 그 피부가 마치 대지와 같은 단단하고 굳세었다. 결국 어떻게든 잡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미리 풀어둔 독에 당했기에 상당히 물러진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땅을 파고다니던 두더지였기 때문인지 특징은 그정도 뿐이었지만, 이미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그런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고블린의 신체도 그런 느낌이 서려있었다. 당시 두더지형 식귀보다는 매우 약했지만, 우둘투둘했던 피부는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블린이 습격 할 때 사용한 것. 일종의 촉수로 보였던 그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끝부분이 둥근 것이 지렁이를 닮아 있었다.
아마 지렁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듯 싶었다. 그 외에도 곤충과 동물을 합쳐놓은 듯한 다리와 마치 고목과 같은 촉수의 반대쪽 팔은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붙여버린 듯 싶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놈이 죽었을 때, 과거 식귀가 죽으면서 나타난 마치 영혼과 같은 그것은 나오지 않았지만 시체가 사라지는 모습은 완전히 판박이였다.
다른 점이라고는 식귀보다 한층 더 느린 속도로 분해되어갔다는 점 뿐이다.
그 외에도 전투하면서 느꼈던 감각 등이 놈이 이미 과거 싸워본 식귀와 닮았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적의 정체가 당시 상대했던 식귀와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되니 루프스의 몸이 절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멈춘 그를 보면서 고블린들은 걱정했지만,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한 그는 재빨리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을 돌려보내고는 스스로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영역으로 침투한 식귀로 생각되는 적들을 찾아나섰다.
상대가 식귀라면 정찰대의 고블린들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가 나선 이상 만일 희생이라도 난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희생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적이 어느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이제 파악 할 수 있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정찰대는 거추장스러운 짐과 같았다.
그러니 일단 정찰대는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빠르게 수색을 진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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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루프스는 사냥을 진행했다. 동족인 고블린의 모습이었지만 상대는 다름아닌 식귀였다. 다른 생명체의 몸으로 들어가는 빙의체였다. 어느정도 지성이 있거나 일정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면 피할 수 있지만, 무슨 수를 썼는지 최하급 고블린의 몸 속으로 어떻게 들어간 놈들이었다.
그렇지만 본래의 식귀보다 약하기에 찾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때려잡을 수 있는 정도였다. 실제로 홀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체의 식귀로 예상되는 고블린을 마주쳤고, 순식간에 목숨을 끊어낼 수 있었다.
두체의 고블린들도 앞서의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가루가되어 흩날리듯 사라졌고, 루프스는 계속해서 다른 식귀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수색을 진행했다.
식귀인 고블린을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루프스는 위화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확실히 적들은 식귀와 유사하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이전의 두더지형 식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가신 놈들이었다.
하지만 직접 상대하는 그로서는 그야말로 위화감의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그는 이전에 한차례 본 적 있었던 마치 식귀의 본질과도 같았던 흑백의 구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설마, 이놈들은 제대로된 놈들이 아닌건가?'
마치 능력이 폭주해버린 듯한 기괴한 외형. 그리고 전체적으로 허약한 능력치까지, 이전 한차례 전투가 있었던 식귀도 그들 중에서는 상당히 약체로 알고 있었던 루프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고민에 잠겨 있던 그 때. 그는 이제까지 본 것과는 다른 그렇지만 적이 분명한 고블린과 마주쳤다.
그르르르-
그와 마주친 고블린이 내뱉는 소리는 마치 귀로 듣는다기 보다는 온몸으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블린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고블린의 모습을 그다지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두개의 팔과 다리는 멀쩡한 모습이었으며, 몸통의 형상도 그다지 다른 고블린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와 이제까지 나타난 고블린들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비교적 멀쩡한 외형을 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고블린들에 비해서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정도면... 딱 하급 정도의 크기. 그리고 다른 놈들이랑 다르게 두상에까지 변형이 온 점. 전체적으로 본래 형상을 잃지는 않은듯 싶다만은... 어쩌면 그래서 비교적 멀쩡한 외형인지도 모르겠군'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타난 적을 노려보면서 루프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타난 고블린은 다른 녀석들과 행동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적인 루프스가 가까이 접근하자 망설임없이 공격해오는 점까지 똑같았다.
카각
아무 무기 없이, 그저 하체 가림막만을 입고 있을 뿐인 고블린이 루프스를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 정면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보면서 루프스는 도끼를 고블린의 주먹과 마주쳤다. 과연 철과 같은 광택과 빛깔을 띄고 있다 싶었더니 그 강도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듯 싶었다.
루프스의 도끼와 정면으로 마주친 주먹은 기스조차 나지 않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루프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아예 관심이 없는지 그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적 고블린을 향해 한방 한방 도끼로 찍어내릴 뿐이었다.
'흡! 이 정도면 과거 마주쳤던 식귀와 비등한 힘을 지닌 듯 한...데!'
한번 더 도끼를 크게 휘둘러 달라붙어오는 고블린을 멀리 떨쳐냈다.
"후우"
한번 숨을 고른 루프스는 다시 고블린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드는 루프스를 향해서 고블린도 지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뻗었다.
카각- 칵- 카카각
철이 긁히는 소리가 나고, 양쪽 모두 손발이 얼얼한 충격 이외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렇지만 양쪽 중 어디가 우세한지는 금세 나타났다.
서로가 가진 무기가 계속해서 휘둘렸다. 그러는 사이 고블린은 다른 고블린들이 했던 것 처럼 신체를 변형시켜서 공격해오기도 했지만, 루프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블린이 어떤 공격을 해오던지 그저 여유롭게 공격을 막아냈다. 마치 지금까지 허둥댔던 것이 거짓말처럼 금세 안정을 찾아간 것이다.
그렇게 서로 상처 입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루프스는 여유롭게, 고블린쪽은 점점 다급해져 갔다.
고블린쪽은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이 희박한 듯 싶었지만, 일말의 이성은 남아있는지 위험하다 싶은 순간에는 절제하거나, 갑작스레 루프스의 행동이 바뀌면 탐색하듯이 소극적인 공격만을 하였다.
수시간 루프스는 마치 탐색을 하듯이 견제에 집중했고, 고블린은 죽기살기로 덤벼들었다.
'이정도면 되겠지'
적 고블린에게서 전투 데이터를 뽑아낼만큼 뽑아냈다고 생각한 루프스는 빠르게 전투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가 힘을 빼고서 고블린을 상대했던 이유는 단 하나. 이 녀석이 다른 고블린들이 상대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적인가 확인한 것이다.
"크아아압!!!"
결정을 내린 그는 고블린을 향해서 연격을 내리쳤다. 마치 오랜시간동안 주기적으로 낙하한 물방울에 의해서 바위가 패이듯이 단단한 고블린의 피부. 그것도 같은 부위를 향해서 연달아 도끼를 내리 찍었다.
그러면서 루프스는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해서 놈의 눈과 감각일 혼란시켰다.
고블린의 눈 앞에는 루프스의 도끼가 수십 수백개로 분열하는듯 보였다. 다급히 막았지만 그 무수한 공격을 모두 막을 수 있을리 없었다. 거기에 도끼를 찍힌 부위에 충격이 들어오니, 고블린의 감각을 점점 혼란시켰다.
콰작-!
그리고 결국 고블린은 연달은 공격으로 다리의 기동성을 먼저 빼앗은 루프스가 날린 최후의 공격에 의해서 그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고블린은 쓰러졌다. 쓰러진 고블린으로부터 과거 한차레 본적이 있는 형상의 구체가 떠올랐다.구체는 흑과 백이 뒤섞인 매끄러운 공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거 보았던 것과 달리 무수한 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체는 이내 스러지듯이 사라졌고, 그 직후 고블린의 육체도 바람에 흩날려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