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괴변
루프스는 속속들이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벌 받고 있는 기분이군"
그에게 들어오는 보고는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역의 경계부분에서 적이 나타났고, 간신히 토벌했다는 소식이었다.
"보고를 올리는 정찰대는 평균적으로 중급이 넷, 상급이 하나로 편성되어있는데... 하나같이 간신히 이겼다는 소식들 뿐이군. 게다가 돌아오지 않는 정찰대는 이놈들에게 패배한건가..."
주기적으로 영역의 경계를 정찰하는 이들이 다섯개 조가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삼일동안 열다섯개 조가 정찰 활동을 했고, 그 중 열개 조만이 다시 르윅성으로 귀환했다. 귀환하지 못한 다섯 조는 아마 쿠알론 측의 고블린들로 추정되는 적들에 의해서 당했을 확률이 높아보였다.
"애초에 그것 말고는 못 돌아올 이유가 없겠지만"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 수만큼, 어쩌면 그보다 많은 수가 그들의 영역을 침투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간들이 안처들어온다고 투덜댔더니, 이제는 떠났던 동족이 처들어오는군. 후우..."
바로 얼마전에 엘라를 향해서 불안감을 토로했던 때가 떠오른 루프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인간들이 처들어오지 않아서 불안감에 떨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적이 나타나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하필이면 동족이다. 전체적으로 거동이 수상하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들의 틈으로 숨어든다면 발견하지 못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미리 그가 나서서라도 영역 내에 있는 적들을 지워버려야 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던 루프스는 세 조 정도의 정찰대를 이끌고 영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
스륵- 스륵-
가도를 벗어난 수풀 속. 비교적 조용한 곳에서 풀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프스와 그가 이끌고 있는 정찰대원들이 나아가는 소리였다.
요새와 연결되어있는 가도는 정리를 했지만, 그 외는 신경쓰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잡초가 우후죽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루프스는 그동안 정리를 안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상당히 높이 자라난 수풀은 루프스와 정찰대의 몸을 가리지는 못했지만, 최하급 고블린 정도의 크기라면 충분히 가릴 수 있는 크기였다. 그리고 적으로 추정되는 고블린들은 하나같이 발견된 최초에는 최하급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수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곳은 신경써야만 했다.
그렇지만 고작 수풀이기에 바람에 의해서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지만, 아직까지 적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약 다섯 조 정도가 적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서로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같은 개체에 의해서 당했을 확률이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하나, 혹은 정찰대의 이목을 피한 이들까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수가 영역으로 침투했을거라 짐작하고 있는 중이다.
가도라면 이미 정찰대를 따로 보낸 상태다.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딱히 달려들거나 하지 않는다니, 만일 발견하거든 감시병만을 두고 귀환해서 보고하도록 지시를 해놓았다.
그렇지만 루프스가 따로 수색에 참여 할 때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었고, 만일 소식이 들어왔다고 해도 이미 파견 보낼 병력을 구성해놓은 상태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일일이 찾아 해매다가 습격을 당하기 좋은 가도 이외의 장소였다. 그렇기에 전력적으로 확실한 우위를 잡고 있는 루프스가 나선 것이다.
하지만 찾고 또 찾아도 나타나지 않자 루프스로서는 또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있는 거야?"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짜증을 내던 그는 보다 빨리 영역으로 침투한 침입자를 찾기 위해서, 조금 무리 할 것을 결심했다.
잠시 멈춰섰던 그는 금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변으로 다섯의 분신체가 나타나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훈련으로 최대 일곱체까지 분신을 꺼내 들 수 있게 된 그는 간신히 무리가 가지 않는 정도로 분신을 불러내서 주변으로 퍼트린 것이다.
"이정도면 충분히 발견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프스는 본체도 마찬가지로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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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의 분신체는 천천히 주변을 수색해 나갔다. 현재 분신과 본체의 차이라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있는가 아닌가 정도 뿐이었다.
그리고 분신을 불러낸다는 점을 제외하고 분신과 본체의 전력 차이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즉, 분신체 만으로 적으로 짐작되는 고블린들을 물리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의 분신체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본체와 달리 분신체이기에 만일 치명적인 기습을 받아 사라지더라도 약간의 정신적 충격 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린 혹들이 없기 때문에 본체보다도 더욱 빠르게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훑으면서 나아가던 루프스의 분신체는 어느순간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쉬익-
그리고 그것이 괜한 느낌이 아니었다는 듯이 갑작스러운 공격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퍽-
갑자기 그를 향해 날아든 물체는 그의 가슴을 꿰뚫을 듯이 강하게 쳤지만, 그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공격해온 물체를 잡더니 그대로 잡아당겨 버렸다.
팽-
팽팽하게 당겨진 물체는 끝에서부터 한 생명체를 달고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렇게 날아온 그것은 분명히 그가 찾던 것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다름아닌 그와 같은 고블린의 모습에 여러 이질적인 모습이 섞여있는 괴상한 모습의 생명체였다.
"음?"
상대를 본 루프스의 분신은 그런 적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모를 익숙함을 느꼈지만, 그는 그 느낌을 훌훌 털어버렸다. 상대는 본래 그의 아들이었던 쿠알론이 그를 따르는 부족 고블린들과 함께 빠져나갔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익숙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퍼걱-!
날아드는 고블린을 향해서 그는 주먹을 휘둘렀고, 그의 주먹은 단번에 적의 심장을 무너트렸다. 그럼에도 루프스의 분신은 쉬지 않고 이격을 날렸다.
퍼석
좀 전 보다 약한 소리를 내면서 고블린과 같은 모습의 머리가 부서져 버렸다. 올라온 보고 중에는 적이 기상천외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항목이 있었기에 일단 심장과 머리 양쪽을 파괴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한 것인지 심장부분은 살짝 재생하려는 흔적이 남았지만, 머리가 부서지는 순간 멈춰야 했는지 전체적으로 너저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상대를 끝낸 루프스의 분신은 적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정찰대중 열 정도가 녀석들을 상대했었지만, 그 중 시체를 가져온 이들은 없었다. 정확히는 가지고 오려 했지만 어느순간 시체가 사라졌거나, 눈 앞에서 시체가 분해되었다는 영문모를 소리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시체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스르르르
루프스의 분신은 점점 사라져가는 고블린의 시체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야했다. 시체가 어느순간 사라졌다는 것도, 눈 앞에서 분해되었다는 이야기도 양쪽 모두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루프스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이렇게 사라져가는 적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욱 화려하고 기괴하게 사라져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었다.
다름아닌 그가 상대했던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적인 식귀가 이처럼 사라져갔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