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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69화 (269/374)

269화

괴변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상황은 영역을 침범해온 고블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정찰병 고블린들은 방심해서 얻어맞은 흔적들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는 부상 때문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 고블린이 비교적 우위를 잡는 이유가 될수는 없었다.

고블린들과 대치중인 고블린은 단순히 기습을 가했기에, 혹은 기본적으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전투 중 우위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걱-

끼긱가가가가가-!!

오히려 녀석은 대장 고블린보다 더 약한 상대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주변을 공격하던 중, 대장 고블린의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그것만으로 고블린을 완전히 물리칠수는 없었지만,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손날을 마치 칼처럼 만들어 날린 일격은, 고블린의 촉수를 잘라내고 몸에도 긴 자상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처 중에서는 분명히 치명상이라고 부를만한 상처도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은 죽지 않았다. 죽기는 커녕, 잘려나간 신체부위를 순식간에 재생시키고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그저 고블린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마치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온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블린들이 점점 수세에 몰려가고 있는 이유였다. 온몸을 변화시켜서는 공격해온 이 이상한 고블린은 신체가 불에 타거나 전기에 지져져도, 얼려지고 녹아내려도, 하다못해 직접적으로 잘려나가는 일이 있어도 마치 아무런 고통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무너진 신체를 복구시켜서는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분명한 고블린들의 우세였지만, 죽음을 불사하듯이 덤벼드는 고블린을 상대하는데 있어서는 두가지 모두 간신히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밖에 해주지 못했다.

대장 고블린을 비롯한 고블린들이 상대하는 놈의 모습은 이제 고블린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나?"

그나마 다른 고블린들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대장 고블린이, 적 고블린을 상대하던 중 점점 변질되는 고블린의 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최하급 고블린의 모습은 물론이고, 팔이 촉수로 바뀌는 모습은 영락없이 그런 종류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듯 싶었다.

그렇지만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변신 능력이 다른 모습으로 신체를 변형하는 능력이라지만, 저렇게 무지막지한 재생력은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변신이라기 보다는 변질이라고 부르는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끼에에에에-

아무 의지도 없이 그저 정면으로 달려들기만 하는 모습에서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꿈틀거리면서 변하고 있으니 저 모습이 고블린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수있었다.

게다가 점점 변질되는 모습은 갈수록 이상해져가기까지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최초 팔이 변해서 생겨난 촉수가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촉수의 갯수는 늘어만 갔다. 지금은 촉수만으로 뭉쳐서 강력한 둔기로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였다.

퍼걱-

"키헥-!"

눈 앞의 변질되어버린 고블린은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뭉쳐져 마치 망치와 같아진 촉수의 공격은 대장 고블린을 제외한 고블린들이 버티기에는 어려운 공격이었다. 놈의 공격을 얻어맞은 한 고블린은 다른 이들에 이끌려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멀어져갔다.

'이로서 전투에 참가 못하는 녀석들이 둘, 기잇 이대로 가면 좋지 않은데!'

까득

대장 고블린은 굴러가는 사태가 좋지 못함에 이를 갈았다. 상대에게 피해는 줄 수 있지만, 주는 족족 회복해버리니 주지 못한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에 비해서 딱히 회복능력을 지닌 이가 없는 정찰병들 쪽은 피해를 입는 족족 피해가 누적되어갔다.

'그렇다고 구원이 오기를 기다릴수도 없고, 키잇...!'

쿠웅-

몸을 전혀 사리지 않고 공격해오는 고블린을 피하면서 대장 고블린은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놈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현 상황은 물론이고, 하필 최초에 당했던 고블린이 정찰병들 중에서 원거리 통신을 맡고 있던 이였다. 아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했으니 그가 르윅 성 쪽으로 연락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다음 정찰병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쪽에서 어떻게든 하는 수 밖에 없겠...군!"

탓-

콰앙-!

연이어지는 공격으로부터 몸을 날려 피하면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다시 변질된 고블린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시잉- 서걱

끼기기기에에엑-!!

대장 고블린의 검의 연격은 고블린의 촉수를 다발로 잘라내버렸다. 그것도 곧바로 회복해버리지만, 그 짧은 잠깐의 사이를 놓치지 않았다. 한호흡을 내뱉는 정도의 시간만에 다시 촉수를 회복시키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잠깐이라면 촉수가 잘려나간 상태라는 이야기였다.

"크아아!"

쉬익-

촉수가 잘려나간 순간 더욱 고블린의 품으로 파고든 대장 고블린은 그 목을 노려서 검을 휘둘렀다.

키이잇!

아쉽게도 공격은 빗나갔지만, 고블린의 목에 생체기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다. 곧바로 촉수를 휘둘러왔기에 다시 거리를 벌려야만 했지만, 이것은 그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기기깃, 게다가 회복이 느리군. 아직 본래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저 이상할 정도의 재생력이 적용되지 않는 거로군'

그가 잠시 물러나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다른 두 고블린이 그 대신 변질된 고블린을 상대하고 있었다. 회복된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는지 양쪽 모두 온 몸에 자상과 타박상으로 점철되어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대장 고블린도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함부로 공격해 들어가기 보다는 조심히 상황을 살펴보았다. 어디를 공격해야 유효한 타격이 되는지는 이제 알았으니 기회를 노려서 정확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고블린이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중상을 입고 뒤로빠진 이들도 사실 죽이려면 기회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어서 자신을 공격한 고블린만을 노렸기에 무사히 뒤로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좀 전 목을 베어버리기까지 했던 대장 고블린에 대한 관심은 없고, 다른 두 고블린에게 집중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장 고블린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조심히 움직여서 변질된 고블린의 배후를 잡아갔다. 팔다리에서 솟아난 촉수와 비대해진 몸은 그 목을 숨겨주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기회를 노려야만 했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찬아왔다.

촤르륵- 콰앙!

"키헥?!"

갑작스럽게 온 몸에 솟아난 촉수를 하나로 뭉쳐서 두 고블린중 하나를 향해 내려친 것이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대비는 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견딜 수 있는 물리력이 아니었다. 피한다고 피했으나, 몸통을 훑듯이 지나간 공격은 한 고블린의 몸통 앞면을 갈아버렸고, 다른 고블린도 풍압에 날려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 남은 두 고블린들이 피해를 입고 하나는 중상으로 전투 불능, 하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랐는지 공황상태에 빠져 한동안은 싸우지 못할듯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은 대장 고블린에게 기회였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촉수를 모았기 때문인가, 놈의 목을 가려주는 것은 현재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내려치는 그 순간 이미 달리고 있었다.

그가 지닌 능력까지 사용했는지 내려친 촉수들을 회수하기 전 이미 그는 고블린의 머리 뒤쪽으로 다가온 후였다.

쉬익-!

숨을 들이키고는 온 몸에서 힘을 쥐어짜서 팔에 실었다. 그리고는 그 힘을 한번에 방출하듯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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