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괴변
루프스는 최근 왠지모를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미 한참 전에 처들어와도 처들어와야 했을 인간들이 벌써 몇년째 잠잠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뭘 그런걸 가지고 불안해하고 그래요? 안처들어오면 우리야 좋은 일이죠"
계속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엘라가 그를 타박했다. 별달리 위험한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도 유난을 떨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루프스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정말 뭐가 그렇게 불안하길레 그래요? 전력도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그걸 방해하는 움직임조차 없는 지금 상황이 불만이라는 건가요?"
후우-
그녀의 말에 한숨을 내쉰 그는 어째서 자신이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한번이라도 처들어왔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았을거다. 그렇지만... 몇년에 걸쳐서 단 한번도 처들어오지 않으니, 혹시나 무슨 꿍꿍이라도 있나 싶어서 그러는 거지"
"단순히 우리를 신경쓰지 못 할 정도로 큰 일이 터진거라면요?"
"그렇게 단순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여전히 끙끙거리는 그의 모습에 엘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정찰이라도 좀 보내 봐야 하나'
그 사이 루프스는 다시 고민에 빠졌고, 결국 수년만에 영역을 벗어나 외부로까지 정찰 지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부하들에게 정찰을 지시하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하기 시작한 루프스였다. 그렇지만 이번 정찰의 결과가 어떻게 돌아올지,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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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쿠알론은 오랜시간 잠에 빠져있었던 듯한 나른함을 느끼면서 깨어났다.
철그럭- 철그럭-
주변을 살피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했다. 강철로 만들어진 수갑이 손목과 발목에 채워져 있었으며, 수갑과 연결된 사슬의 끝은벽과 연결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르르륵-"
입에서 절로 튀어나오는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였지만, 막 깨어난 그가 그런것에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깨어남과 동시에 느끼는 감각 때문에 그런데 신경쓸 겨를이 전혀 없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꾸르르륵-
속에서부터 마치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거대한 울림이 그의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소리에 반응하기 보다는 주변을 더욱 꼼꼼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바닥에 떨어져있는 먼지 한 톨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꼼꼼함에 한번 더 꼼꼼함을 더한 듯 한 자세로 감옥으로 보이는 이 장소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꾸르르르륵-
그러는 사이 그의 배는 다시 한번 허기짐을 호소했고, 주변을 둘러볼 이성도 여유도 점점 잃어갔다.
덜컥
쿠알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 때, 문이 벌컥 열리고는 거기서부터 드란이 안으로 들어왔다. 만면에 미소를 그리는 그였지만,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다른 싸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풍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쿠알론이 허기짐에 이성을 잃고 포박당한 상태에서 날뛰게 된 원인은 다름아닌 그에게 있었으니, 그가 다르게 보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 깨어나셨군요"
느긋한 목소리로 그는 쿠알론을 향해서 입을 열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향해서 으르렁 거릴 뿐이었다. 이 사태에 의아하다거나 분노를 느낀다거나 하는게 아닌, 단순한 허기짐 때문에 그를 먹잇감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란은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그 동안 감춰두었던 힘을 겉으로 뿌렸다.
"크르, 컥!"
한순간에 숨이 턱 막히면서, 드란을 향해서 이를 내보였던 쿠알론이 점점 얌전해져갔다. 더해서 이성을 찾아가는 듯, 그의 흐리멍텅하던 눈빛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크으..."
발광하듯이 움직이던 그는 정신을 차리자 먼저 신음성부터 내뱉었다. 그의 정신은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허기짐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드란은 다시 한번 그를 향해서 말을 걸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십니까?"
그는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쿠알론을 향한 어조에는 평탄함, 그리고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드란... 빠드득- 네놈!"
그는 이렇게 포박당하고 신체도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 상황이 그의 수작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고민을 그가 해결해주겠다는 이야기의 결과가 지금이니 모를수가 없었다.
"어이쿠, 기운이 넘치시는 군요. 이것 참 그런 상태에서도 힘이 나십니까?"
그는 쿠알론의 팔다리를 고정하는 수갑과 이전에 비해서 비쩍 말라가고 있는 육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분도 계시는데 너무 날뛰시는 군요"
순간 흠칫하면서 한가지가 떠오른 그는 황급히 옆을 바라보았다.
"트레이!"
그곳에 있는 것은 그와 비견되는 또 다른 한명인 트레이가 그와 같은 몰골에, 같은 구속으로 벽에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는 정신을 차린 쿠알론과는 달리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절해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쿠알론의 심기를 더욱 어지럽히고, 노기를 드러내 드란을 노려보게 만들었다.
"드란! 네놈이 어떻게!"
트레이는 은근슬쩍 드란을 경게하고 있었지만, 쿠알론은 그렇지 않았다. 고난을 겪으면서 처음의 오만함이 많이 줄어들고, 그 동안 동고동락한 형제들에게는 특히나 신뢰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겉으로도 드러내곤 했던 신뢰가 이렇게 돌아오니 그 배신감이 얼마나 클지는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것 따위, 드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그를 향해서 뽐내듯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쿠알론은 이제야 변한 드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충격에 빠져 입을 쩍 벌린 그였지만, 드란은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크후후후, 그야 지금을 위해서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충실한 부하겸 동생을 연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드란은 유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어 젖혔다.
트레이는 그 와중에도 드란의 모습을 보면서 어지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불이 없는 것은 별다른 지장이 안되었지만, 허기짐 때문에 계속해서 의식이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드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괴이하다는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고블린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으나, 온몸의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명백히 고블린과는 다른 모습들이었다.
오랜시간 굶은 듯한 비쩍마른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그에 뒤지지 않게 이질적이게도 불필요한 살 한점 없는 마치 돌 혹은 강철과 같은 근육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는 비쩍 마르고 헐어버린 듯한 새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하고자 한다면 몸을 공중에 띄우는 것 조차 가능해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의 거죽은 고블린의 피부가 아닌 거무죽죽한 비늘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 그 기본은 고블린의 모습이었지만 더 이상 고블린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너... 몸이..."
그의 모습은 쿠알론에게도 큰 충격이었지만, 그는 그의 모습을 더 이상 관찰 할 수 없었다. 허기짐 뿐만이 아닌, 무슨 이유에선지 몸의 내부에서부터 뻗어오는 고통으로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끄아아아악!"
"흠"
그런 쿠알론의 모습을 잠시 관찰하던 드란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