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괴변
제라임 성과 인접한 한 마을. 수시로 처들어오는 고블린들 때문에 슬슬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한 마을 주민들과 병사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처들어오던 고블린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평소의 일상을 구가하고 있던 한적한 날 중 하루였다.
"어?"
그것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의 모습은 그들이 그동안 봐온 고블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비쩍마른 모습에, 입가를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것에 더해서 홀로 나타났으니, 마을을 지키는 경비들도, 마을의 주민들도 딱히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르르
하지만 그런 주민들과 경비들의 부주의함은 커다란 비극을 만들고 말았다.
입 안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뱉던 고블린이 갑작스럽게 눈 앞에 있는 마을의 목책을 보더니, 괴성을 질러대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엑-!!
괴기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마을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굳센 눈빛으로 달려들고 있는 고블린을 노려보면서 화살을 쏘아냈다.
쉬익-
한발의 화살이 고블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조그마한 덩치는 경비들에게 고블린이 가장 밑바닥의 최하급 고블린이라 판단하게 만들어주었고, 그렇기에 단 한발의 화살만이 고블린에게 날아갔다.
팅
하지만 달려드는 고블린의 몸에 맞은 화살은 튕겨져나갔으며, 그에 놀란 경비들이 추가로 쏜 화살도 고블린의 몸에 조금도 파고들지 못하고 그저 튕겨져 날아갔다.
결국 고블린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마을의 목책 부근까지 도달했다.
눈 앞에 자신을 가로막는 목책이 나타났지만, 고블린은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전진 할 뿐이었으며, 앞을 가로막는 목책을 향해서도 그저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화살이 통하지 않는것에 놀라긴 했지만, 마을의 경비들은 그렇다고 고블린이 목책을 통과하진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만 했던 초기의 목책이 아닌, 처들어오는 고블린들을 막기 위해서 파견된 경비들과 함께 견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방호력을 믿고 있었다.
콰앙-
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단 한번 휘둘러졌을 뿐인 고블린의 일격은 한번에 목책을 우그러트렸다. 나무가 부러지면서 무너졌지만 그나마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고 얼기설기 엮여서 완전히 주저 앉는 것만은 면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길지 않았다.
콰앙-
고블린은 재차 검을 휘둘렀고 목책은 두번째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후두두둑
무너진 목책은 더 이상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처참히 망가진 상태였다. 목책을 무너트린 고블린은 앞길을 막는 것이 더 이상 없자 다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
그 순간 경비병들도, 그들을 돕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마을 주민들도 멍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다. 설마하니 고작 최하급으로 보이는 고블린의 이격만으로 목책이 무너지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너진 목책에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콰직- 콰직- 콰직
순간적으로 목책에 시선이 빼앗겨, 고블린을 놓쳤고 그것은 곧 희생자를 만들어낸다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럽게 계속되는 파육음은 한순간에 이목을 모았고, 그곳에는 목책을 무너트렸던 고블린이 한 경비병의 목을 잘라내버리는 모습이 있었다. 그의 뒤로 또 많은 수의 경비들이 쓰러져 있는 것이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 목숨을 잃은자들로 보였다.
고블린의 공격은 그저 목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단숨에 몸통과 목이 분리된다는 결과는 똑같았으나, 그것은 베어낸다기 보다는 어거지로 찢어낸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경비들을 죽이는 고블린의 모습이었지만, 경비병들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저 고블린을 향해서 무기를 겨누고 방패가 있다면 방패로 가로막았지만, 별로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비병들은 고블린을 막지 못했으며, 오로지 고블린의 손에 목숨만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마을 주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비병들과는 달리 싸움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은 그저 고블린의 손아귀에 허무하게 목숨만을 잃고 있었다.
고블린을 얕보고 움직이지 않았던, 그리고 마을 목책을 고블린의 손으로 박살이 나는 순간 이미 이 마을의 운명은 정해졌던 것이다.
결국 고블린의 행보를 누구도 막지 못했으며, 마을은 순순히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제라임 성 인근의 마을 대부분의 장소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처들어오는 고블린들은 대부분이 조그마한 체구의 최하급 고블린들보다도 오히려 작아보이는 체구를 하고 있었으니, 그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 조차도 없었으니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중년 남성은 제라임 성 인근의 고블린들을 먼저 처치하고자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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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인간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조심 조심 움직이는 그들은 어뜻 보아서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중히 몸을 가리면서 움직였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최근 이변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제라임 성이었다.
하찮게만 생각하던, 처들어와봐야 별다른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인식이 슬슬 박히고 있던 고블린들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하나 하나의 전력이 급증하면서 어지간한 마을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자 주변 성주들이 의논 한 결과,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파견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하나의 마을로 숨어들고 있었다.
이미 제라임성 내부의 마을에서 본래 살고 있던 인간들은 대부분이 죽은 뒤였으며, 마을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라고는 고블린들 뿐인 상황이었다.
지나오면서 여러 마을을 확인했었지만, 아마 고블린들의 수가 적기 때문인지 방치된지 오래된 마을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제라임 성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주변에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산맥과 가까운 장소이니, 아마 고블린들이 살고 있을거라는 판단이었다.
선두에서 앞서가던 이가 뒤따르는 이들을 향해 정지신호를 보냈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그의 태도에, 뒤따르는 이들도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가장 앞에 있던 이는 슬며시 숨어있던 건물의 모퉁이로부터 머리를 빼꼼히 밖으로 내밀었다.
"...!"
그곳에 있던 것은 생각보다도 놀라운 광경이었고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생각보다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콰작- 콰작- 끄득- 으드그득-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동족산장의 현장이었다. 고블린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또는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건지는 그들로서는 알길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은 누가보아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기괴한 모습에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고블린들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았다. 저들이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를 알아본다면 갑작스럽게 강해진 고블린들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거라는 직감이 왔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는게 좋다고 생각한 그는 함께 온 부대원들과 함께 움직여서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대한 마을에서 떨어져갔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소로사라졌고, 멀리서부터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눈길도 그들이 숨어든 장소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