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정비와 혼란
인간들의 영역으로 처들어가서, 요새와 성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그 두개의 거점이 루프스가 이끄는 부족의 중심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부족의 중심지는 군락지의 안에 있는 숲속 마을을 비롯한 마을들이었으며, 그곳에서는 연신 새로운 고블린들이 태어났으며, 그만큼의 수가 투쟁으로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루프스가 이끄는 고블린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힘이 부족해도 머리가 좋다면, 그리고 특출난 재주가 있다면 요직에 오를 수 있고, 다른이들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블린들에게 익숙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가치관도 방식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힘이었다. 당연히 성체가 된 고블린이라면, 훈련보다는 사냥을 나가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이들도 무수하지만, 반대로 죽어나가는 고블린들도 무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블린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루프스의 존재가 그들이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성장 할 수 있는 끝에 다다른다면 족장인 루프스의 힘으로 저절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니, 포기하려야 포기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부족의 주변에 성장을 위한 동력이 부족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급에서 중급까지는 비교적 손쉽게 올라 갈 수 있다. 부족에서 관리하는 어장과 개미집이라는 두단계의 과정을 통과한다면 중급까지는 손쉽게 올라 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죽는 이들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희생이 적은 것도 중급의 과정까지. 상급 이상으로 넘어간다면 그 때 부터 재능,센스, 인내 세가지중 하나라도 부족한 순간 어지간히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고블린들의 향상심은 줄어들지 않고, 매번 큰 희생을 치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희생도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상급으로 진화하는 이들이 나오며, 지금 루프스의 눈 앞에 있는 이들이 그러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그 눈에 열망을 담아서 눈 앞에 서있는 그들보다 족히 반배는 더 큰 루프스를 바라보았다. 루프스는 매번 자격에 닿은 자들을 다음단계로 넘어가게 도와주었고, 지금도 그 일환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격은 그리 거창하지도,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많은 적을 헤치우고 헤치우다보면, 어느 순간 한번에 강해지고 그 뒤로는 전혀 성장의 체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다름아닌 하나의 단계의 끝에 도달해 정예로서 거듭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예가 되었다는 것은 다움 단계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루프스에게는 따로 수단이 있기에 누가 정예에 도달했는지 못했는지 알아 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 스스로 알아내서 그를 찾아와야만 한다. 이제는 수십만을 넘어 백만에 가까이 다가가는 고블린들의 명단을 일일히 찾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 앞의 이들은 성장을 확신하고, 그에 대해서 루프스가 직접 확인까지 한 이들이다.
"준비는 되었나?"
엄숙한 목소리로 루프스는 이 자리에 모여있는 이들에게 물었고, 그에 대해서 고블린들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예!"
그들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뻗어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있는 고블린들을 향했다.
"흡!"
"크흑"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신음성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우드득- 빠드득-
그리고 그들의 온몸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탈구되고, 다시 되붙고, 자리를 찾아가는 듯 온몸이 기괴하게 움직이고, 뼈가 서로를 긁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광경은 제법 시간이 소요되고 나서야, 그 끝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성장해 키가 자라나있는 고블린들은 그 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힘에 희열을 느끼는 듯,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도 루프스의 부족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부족의 구성원 덕분에 차근차근 전력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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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쉬쉬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 마을의 주변에서 들려왔다.
푸부부부북
"갘!"
"키야아아앗!"
"...!"
그리고 소리의 주인공은 하늘에서부터 낙하하더니 그 밑에 있는 생명체의 몸을 꿰뚫었다. 바람을 가르던 것은 다름아닌 화살이었고, 그 화살에 관통당해 쓰러지고 있는 것은 고블린들이었다.
"기기깃... 후...후퇴한다"
까드득
이 자리에 있는 고블린들의 무리를 이끄는 듯 보이는 한 고블린이 이를 갈면서 어거지로 후퇴의 지시를 내렸다. 다른 고블린들도 그다지 마음에 안드는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지시에 따라야만 했다.
그들에겐 소수의 고블린들이 지닌 능력을 제외하고는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공격이 적었으며, 이렇게 화살을 쏘아대는 것을 보니 저 마을도 그들이 이미 겪은 바 있던 준비된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수차례 준비가 끝난 마을로 처들어가고 희생된 고블린들로부터, 제법 정보를 얻어냈기 때문에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 처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퇴 소식은 제라임 성에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받고 있던 쿠알론의 귀에도 들어갔다.
"으음..."
무슨일인지 드란 없이 쿠알론과 트레이 둘뿐인 집무실에서 둘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전부터, 영 수확이 신통치가 않군"
쿠알론은 최근 연달아서 들어오는 악재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알고 있었던 트레이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이어서 이야기했다.
"게다가 희생도 제법 커. 아직까지야, 이전까지 성장했던 녀석들이 남아있는 편이라 아직 감당 할 수 있는 정도지만... 이대로라면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얻는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올수도 있겠어"
"후우... 어째서 이렇게 되었지?"
쿠알론은 트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두덩이를 주물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골치만 아파졌기 때문이다.
쿠알론과 그가 이끄는 고블린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이지는 않았다지만, 성의 영역 바깥의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해서 고블린들의 영역을 넓혔던것이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매번 계속해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지만, 고블린들이 영역 경계에 인접한 마을들을 습격하는 것은 비교적 자주 있던 일이었다. 그것도 초반에는 제법 쏠쏠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움직임이 더욱 커진 감도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들에게 반격의 단초를
고블린들의 침략 루트가 어디인지, 그들이 평균적으로 끌고다니는 전력이 어떻게 되는지, 보다 효율적으로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등을 알 수 있게 다양한 정보를 수집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정보가 모이고 고블린들의 침공을 막을 나름 최적의 방식이 세워졌다. 그리고 나서는, 오히려 고블린들 쪽 희생이 커진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들 쪽이 방어하는 것을 더욱 수월케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어느순간 부터는 그들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게 된 것도 그리 이상 할 것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쿠알론의 고블린들은 밑바닥의 고블린들은 계속해서 충원되고 있지만, 보다 높은 하급 이상의 고블린들은 여러번에 걸친 희생으로, 성을 얻은 직후와 비슷한 숫자로 변하고 있었다. 그나마 인간들이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나설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상황과 쿠알론과 트레이 그리고 드란의 세 고블린들 덕분에 그들의 세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