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256화 (256/374)

256화

정비와 혼란

계속해서 업무에만 신경쓰는 것은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래서 루프스는 어느정도 하고자 하는 일들이 일단락 되는것 같자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휴식이라고 해도, 루프스에게는 일종의 일의 연장선이었다. 상처를 회복하거나, 피곤함 때문에 강제로 휴식을 취하는 일은 있었지만, 여가시간을 가진적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폐해였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지만, 그는 바깥으로 나왔다.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성 전체를 둘러보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의 마을들은 현재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머무는 장소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그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것으로 판단되는 물건들은 한 곳에 상가가 집중된곳으로 모이더니, 상인들에 의해서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아주었다.

시장에서는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은 물론이고, 최근 고블린 부족에서부터 도착한 물건과, 요새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도 팔리고 있었다. 반대로 이곳의 물건이 부족이나 요새에서 팔리기도 했다.

본래 돈을 사용하지 않던 고블린들인 만큼, 돈을 이용한 화폐경제에 적응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거라 생각했었지만 좋은 오산이 벌어졌다. 부족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대장장이드로부터, 요새에서는 이제 슬슬 고블린들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 주민들로부터 배우게 된 것이다.

물건을 사고, 돈을 준다. 단순한 거래의 한 장면이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루프스에게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듯한 감각을 느껴야 했다.

생각보다 화폐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발걸음을 다른 장소로 돌렸다. 이미 스스로 어느정도 궤도에 들어선 기술에 강제로 태클을 걸 마음은 없었던 덕분이다.

다음으로 그가 이동한 것은 병사들의 훈련소였다.

각자의 본업에 모두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역시나랄까, 일손이 비는 인원들은 많았고 그들은 하나같이 군사로서 살아가길 원한 것이다. 이전 성주가 다스리던 시절의 군병들은 대다수가 죽었거나, 간신히 살아난 이들은 은퇴하거나 상대도 되지 못한 고블린들의 모습에 트라우마를 지닌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소집 할 생각은 루프스에게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새롭게 군이 되고싶다고 나서는 이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서 자원한 이들이었다. 대부분이 다시 본업에 복귀하긴 했지만, 그래도 잉여 인력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이들에게 대가를 주고 식량을 공급해줄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고민에 잠겼던 그에게, 그들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자원한 것이다. 아마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것이지 않나 싶었다.

자원한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병사로서 훈련시켰다. 고블린이 싸움속에서 성장하는 것 처럼, 그들도 방식이 다르더라도 성장하는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각자가 조건이 충족된다면 고블린들처럼 단계를 나아가는게 가능했고, 전투와 관련된 직종이라면 실전에서 성장하기도, 훈련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 이 성에는 루프스는 커녕 하급 고블린을 감당하는 이들도 드문 상황이다. 그들이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루프스와 고블린들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만큼 루프스는 그들을 통제 할 수 있다고 믿고있었다.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던 루프스는 다시 자리를 떠났다. 순조롭게 훈련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볼 것은 없었다.

주민들의 주거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가 그곳에 갈 필요도 없으며, 그곳은 기본적으로 인간들만 있기로 되어있는 만큼 그의 모습이 더욱 크게 눈에 띄일 것이다. 루프스가 고블린들의 모습에 은근히 불안에 떠는 인간들이 그나마 가족과 있을 때 만은 편안하도록 루프스가 나름 배려해준 것이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지시해둔 몇몇 고블린들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직접 가는 고블린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저절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오락구간 이었다. 더 이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간들이 요새에서 오는 이들뿐인 만큼, 숙박업은 축소되었다. 다만 환경이 크게 바뀐 탓에 스트레스가 쌓인것인지 술의 소비량이 늘어났다. 그나마 이곳에도 요새에도 술을 만드는 주조장인들이 있던 덕분에 자체적으로 생산 할 수 있다는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어떻게보면 즐거운 곳이고, 어떻게 보면 위험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락 구간도 둘러본 그는 평온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여러 갈등도 빚어지고, 기껏 살려둔 이들이 죽는 불상사도 벌어지곤 했지만 어느새 안정되어가는 성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이리 잠잠한거지?'

한가지 의문을 품은 상태로.

///

루프스의 영역이 한창 평온에 잠기고 안정을 찾아갈 무렵. 본래 그들이 차지한 영역의 주인인 플루 왕국에서는 점점 혼란이 커져만가고 있었다.

정예를 꾸려서 골렘을 상대하러 보내도, 결국은 목숨을 잃고 소식이 끊기기 일쑤였다.

그래도 골렘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는지, 여기저기 망가진 초라한 몰골이 더욱 초라해져서 나타나기는 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원상복구가 된다는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런 골렘의 모습에 토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해도 까다로운 상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왕국에서는 더욱 강력한 전력을 보내기 위해서 연일 회의가 열리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루프스가 한가롭게 성의 안을 쏘다니는 이 때도 왕성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왕국을 대표하는 성주들, 그리고 대신들의 대부분이 모여서 원탁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만이 비어있는 상황이었다.

웅성 웅성

서로 옆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회의실이 시끄러운 상태였지만, 이내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목소리에 묻히게 되었다.

"폐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회의실에서 가장 거대한 문. 그곳에 서있던 한 인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용한 한마디였지만 그 말을 못들은 이는 없었던 듯하다. 그에 맞춰서 시끌벅적하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침묵이 잠겼다.

기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곳에서 화려한 의복을 입은 한 노년의 남성이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회의실에 앉아있던 이들도 그가 들어오자 모두 동시에 일어서서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내 상석에 도착한 그는 일어선 이들을 보면서 손짓을 했고, 서있던 이들 모두가 자리에 착석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노년의 남성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는 노년의 남성, 국왕은 가만히 자리에 있는 이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폐하, 왕국을 혼란에 빠트린 무도한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용한 한마디였지만, 조용한 회의실에서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윤허한다"

그리고 국왕도 단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들어온 문을 통해서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아무 의미도 없었던 듯한 회의였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는 끝나있었고, 국왕의 허락만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국왕도 굳이 그들의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단숨에 허가를 내리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성에서는 한 무리의 인물들이 빠져나갔다. 지금까지 나섰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들은 분명히 골렘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서는 이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