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정비와 혼란
고민에 잠겼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루프스는 일단 주변을 정찰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가도를 통해서 요새를 사이에 둔 마을들이나, 주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두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곳을 정리한 것은 아니었으니, 일단 본래 이곳 성주의 영역으로 인정받는 곳 모두를 정찰해볼 생각인 것이다.
"혹시라도, 뭔가 쓸만한것을 건질지도 모르니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루프스는 성에 있는 고블린들을 여럿으로 나눴다. 각자 뻗어있는 가도의 한곳씩 나눠서 보낸 것이다.
성의 주변 전체에 대비를 하기 보다는, 보다 싸우기 좋은 곳, 요지에 함정을 비롯한 대비를 해놓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성의 주변에 깔아놓을 함정에 대해서는 일단 단락을 맺었지만, 아직 실행할 일들은 많았다.
성에서 살던 주민들은 물론, 반항하지 못한 성 밖 마을의 주민들도 현재 이곳으로 몰아넣은 상태다. 다만 아무래도 루프스와 고블린들이 교류가 없던 몬스터였기 때문인지 전력이 어느정도 있는 마을이라면 하나같이 싸우기를 결정했었기 때문에, 성까지 데리고 온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성의 인구 수용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일단 그렇게 몰아넣어 놓기는 했지만, 딱히 루프슨에게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거두는 것 자체로 이득이 생기게 만들어야 했다.
일단 본래부터 농사를 짓던 가정은 그대로 농사를 짓고 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 중 일부를 거둬가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농부들은 애초부터 그에게 반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세금을 걷히던 때 보다 오히려 조금 더 내는 양이 줄었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농노들의 경우도 딱히 별다를것 없다는 태도였다.
애초에 루프스가 인간들의 영역으로 침투해서 차지한 영역이 그렇게 넓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군락지에 있는 부족과 직접 교류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식량들은 단순히 이곳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먹고 살아갈 용도로 남길 뿐이었다.
그리고 루프스는 성에 남아있는 이들을 각자의 직업에 맞추어 직공은 직공으로,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로, 세공사는 세공사로, 제빵사는 제빵사로 각자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도와주었다. 도와줬다고 해도 그들이 각자의 본업으로 돌아가도록 지시를 내렸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것만으로 인간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다시 본업에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 하나의 직종이 루프스를 다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다름아닌 상인들이었다.
다른 직종들은 대부분이 생산직이기 때문에, 지금 루프스의 지배하에서 억지로라도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상인은 이야기가 많이 달랐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화 하자면 생산자에게서 물건을 받아서 소비자에게로 전달하는 것이다. 즉, 그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역할 뿐이라면, 루프스로서는 별 쓸모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입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빼앗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일도 안하는 잉여인구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다른 인간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래의 권력자들까지 끼었다면 더 성가셨겠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루프스와 고블린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후이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다.
루프스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고블린으로서만 살아가는 이였다면 단호하게 그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평범한 고블린과는 다른 기억이 있었고, 그것이 상인들을 죽이길 주저하게 만들었다.
일단 계속 고민에 잠겼던 그는 일단 상인에게 평소처럼 일하라고 일러두었다. 그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돈이었지만, 성과 요새의 주민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돈을 주고받는 거래에 익숙한 이들이고, 노동에 대한 대가도 필요했기 때문에 성내에서라도 상거래가 이뤄져야했다. 부족한 상품은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일도 있지만 그 문제라면 일단 부족 내에서 생산하는 것들과 요새와 교류를 하는 것으로 임시로라도 틀어 막을 수 있으며, 이 기회에 고블린들에게도 돈의 개념이 생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루프스는 그 밖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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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가 새롭게 얻은 성을 새롭게 단장하고, 처들어올 적들을 대비하고 있던 그 때. 마찬가지로 성을 얻은 쿠알론도 내실을 다져갔다.
성을 얻고 반항하지 않는 인간들을 살렸던 루프스와는 다르게, 그는 인간들이 눈에 띈다면 모두 죽이거나 노파를 제외한 여성들은 포로로 잡아갔다. 고블린들의 손에 죽는 이들은 그들에게 성장의 양식에 되어주었고, 포로로 잡힌 이들은 고블린들의 수를 늘려주는 역할을 강제로 맡아주었다.
얼마전 새롭게 발견한 성의 비밀공간에 갇힌 이들과, 지하부족에 갇혀있는 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어린 고블린들을 출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수십에서 많을때는 백에 가까운 고블린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성의 영역을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이 하나 하나 인간들을 죽이고 죽여 쌓일때마다 조금씩 성장해서 한계단을 올라서는데 성공하는 일이 제법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루프스가 있던 때에 비해서 많이 느린 속도긴 했지만, 충분히 빠른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력을 보충하는 한편, 외부와 연결된 길목. 그리고 나름 중요한 부지라고 생각되는 곳곳에 함정들을 깔아놓았다.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쿠알론의 부족도 나름대로 내실을 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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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들의 준동으로, 그들에 피해를 본 지역들은 하나같이 긴장을 하고 혹시나 놈들이 처들어오지는 않나 노심초사해야했다. 실제로 한번씩 처들어올때 마다 제법 피해를 입으니, 그들이 경계심을 내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들도 더 이상 고블린들에게 신경 쓸 수 없었다. 신경 쓸 수 없는 정도가 아닌 그들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허둥대야만 했다.
제라임 성과 르윅 성이 빼앗긴것은 안타깝지만, 주변 성주들에게는 결국 남의 일이다. 게다가 두 성이 고블린들의 차지가 되었음을 알고 눈독을 둘이고 입맛을 다시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갑작스러운 이변에 그에 대해서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나타난 골렘은 각자의 영토를 마구잡이로 휘저으면서 피해를 양산했고, 그것은 어느날은 서쪽에 있는 성의 영역이기도 했고, 동쪽에 있는 성의 영역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쪽에 나타나더니 다시 서쪽에 나타나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루에 두개의 성에 있는 여러 마을이 궤멸당하는 일도 심심치않게 벌어졌다. 인간들의 규모 전체로 본다면 새발의 피와도 같은 피해였지만, 역시 주변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언제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번져가고, 그것은 성주들의 통치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다. 당연히 성주들로서는 골렘 토벌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들이 골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일반 병사들은 보내보았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죽을거라는 사실과, 그 골렘이 아무래도 과거 군락지에서 갑작스레 나타났던 골렘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골렘의 덩치가 아주 거대하고, 아주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골렘에게 피해를 입은 성주들은 골렘을 상대하기 위해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파견하게 되었다.
성주들에게 명령을 받은 삼백의 기사들과 오십의 마법사들은 한껏 긴장을 그 속에 담은채로 미지의 적인 골렘을 상대하기 위해서 떠나갔다.
그렇게 떠나간 이들은 골렘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해서 경로를 바꾸고 바꾸기를 반복했고, 결국 그 두 눈으로 골렘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 결과는 여전히 움직이는 골렘의 모습과, 하나 귀환하는 이 없는 기사와 마법사들로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