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영역 확장
과거, 그저 일직선으로 전진 밖에 모르던 골렘이라고 보기에는 지금의 골렘은 그 행보가 많이 달랐다.
가까이에 몬스터나 인간이 나타난다면, 그들을 죽이려하긴 했지만 굳이 떨어져 있는곳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피해를 주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골렘은 약간 떨어진 곳에라도 살아있는 생명이 있다면 반드시 다가가 죽이고 보았다.
그렇다고 나무와 같은 것까지 죽어라 쫓아가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많은 것이 다른 행보였다. 그리고 그런 골렘의 행보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다름아닌 인간들이었다.
쿵- 쿵- 쿵- 우직- 우지직-
둔중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육중한 소리를 코 앞에 두고 마을의 자경대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식은땀을 흘리면서 창백한 안색을 한 그들은 상황의 타개책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듯 그저 부동자세로 서있을 뿐이었다.
쿵- 쿵- 쿵-
하지만 그런 그들의 자세에도 아랑곳 않고, 소리는 갈수록 점점 가까워져갔다. 과연 중세마을이라고 해야할지, 산과 숲으로 가려져 둔중한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는 주체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정찰한 결과로 마을의 주민들은 물론 자경대들도 저 소리가 한 존재의 발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은 분명 그들이 절대 상대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마을의 누구하나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을 떠난다면, 어디서 살아갈지 막막한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이제 근거리까지 다가온 저 적이 그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쩌저저적
그리고 곧 그들이 생각했던 존재가 눈 앞의 숲을 쓰러뜨리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골렘이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그 거체를 가리기도 힘들어보이는 존재였다. 그리고 최근 뜬소문으로 여기저기 마을을 부수고 다닌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꿀꺽"
골렘을 눈앞에 두고, 그들을 상대하고자 나선 자경대들이었지만 하나같이 그 눈에 절망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눈 앞의 골렘은 거체도 거체였지만, 그 몰골도 매우 끔찍해 보였다. 거체의 대부분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곳곳에 균열이 가있으며 그 몸을 감싸는 덩쿨이나, 잔해가 남아있는 돌덩이들 그리고 그 거체를 보면 분명히 과거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거체는 거체지만, 전체적으로 마른 형상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가느다란 몸체가 더욱 그것을 기괴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어찌보면 형편없고, 어찌보면 거북스러움을 불러오는 그 형상은 마을에 남아있는 인물들 모두에게 공포와 꺼림칙함 그리고 절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ㅡㅡㅡ!
직접적인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골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기파(氣波)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당연히 그것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라고 그것을 피할 수 있을리는 없었다.
"흡"
"꺽"
"커헉!"
앞서나와있던 자경대의 신체가 건강한 이들은 단순히 몸이 굳어지고 으슬으슬해지고 온몸이 떨려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법 떨어져 있었던 마을 주민중 나이가 많거나 비교적 허약한 신체를 가진 이는 그 단순한 포효로 보이는 행동만으로 절명에 이르렀다.
그것이 시작이라는 듯, 골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우우웅-!
지금까지 골렘이 다가오면서 울렸던 땅울음과는 격이 다르다고 해야 좋을 진동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땅울음은, 지면에 서 있는 마을 주민들이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미 능력치에서부터 큰 차이가나는데, 발까지 묶어버린 것이다.
이어서 골렘은 팔을 내뻗었다.
콰드드득-
사람은 물론, 땅까지 갈아 엎으면서 내질러지는 팔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마을의 앞에서 경계를 서던 자경대 중 다수가 갈려나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으, 으아아아악!!!"
단 한번의 공격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공포에 잠식되어있던 마을 주민들을 패닉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슬슬 진동이 멎어 다리를 움직 일 수 있는 외곽부분 부터 하나 둘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골렘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눈 앞의 굳어있는 자경대와 조금 남아있는 주민들을 상대했다.
푸스스스-
하지만 완전히 신경을 끈것은 아니었는지, 그 몸에서 떨어져나온 돌가루에서 부터 나타난 골렘과 같은 모습을 한 소형의 골렘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도망치기 시작한 마을 주민들을 쫓기 시작했다.
골렘이 남은 주민들을 모두 그 손으로 뭉개버리고 다시 자리를 옮기려는 무렵. 돌가루와 같은 몸을 붉게 물들인 골렘의 분신이 검붉은 안광을 빛내면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골렘의 몸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떨어져나왔던 분신들이 다시 돌아오자, 골렘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느껴지는 또 다른 생명체들을 찾아서.
///
"흠..."
제라임 성에서 다른 두 형제와의 회의를 끝내고, 드란은 굳이 지하부족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많은 고블린들이 빠져 조금 횅해 보이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아직 제법 많은 고블린들이 떠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하부족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게 잠시동안은 시간을 벌어주겠지'
그가 두 형제에게 한 이야기는 그가 가장 원하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둘을 설득하는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얻은것이 많은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빈 전력을 매꿀려면 다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을 벌고 싶다고 상대방이 가만히 있어줄리는 없었다. 둘의 앞에서는 성을 빼앗아 힘을 보여주었으니, 신중을 기하느라 한동안 저들의 움직임은 없을거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진심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이 자신들이 전력을 다시 비축하려는 것임을 눈치채고 다시 처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만큼 시간을 끌어야만 했고, 마침 작업을 진행하면서 좋은 미끼가 있어 그것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행한 일을 떠올리면서 그는 눈에서 기이한 붉은 안광을 흘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한번에 줄어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후우..."
한숨을 내쉰 그는, 살짝 흐려진 눈빛을 흘리면서 의자를 밀어내고 그곳에 있는 비밀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
영역의 바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루프스가 회의를 마치고 다시 성으로 돌아와, 가장 처음 시행한 일은 다름아닌 주변에 함정을 깔아버리는 것이었다.
새로운 영역을 손에 넣을때마다 했던 일인만큼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함정을 깔아놓고, 그들만의 표식으로 함정을 피하는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요새에서도 고블린들의 체제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이 탈출 시도를 못하고 있는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이미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제대로 정비된 길이, 성문에서 이어져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까지 뻗어있었다.
그나마 요새에서는 딱히 길이 정비되어있다고 하기 힘든 상태였기에 별 상관이 없었지만, 제대로 정비된 가도는 고블린들에게도 편리함을 느끼게 했다.
굳이 파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자니 함정을 만드는 의도가 희석되고 만다. 그저 가도 이외의 장소에서 처들어오는 이들을 막는 기능밖에 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험난한 길을 이용하지 않을 인간들이 그런 함정에 걸려들리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프스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