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영역 확장
요새에 이어서 하나의 성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지만, 더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다고 루프스는 판단했다.
새롭게 영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지켜야 하는 영역도 넓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프스는 전력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가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고블린들을 모은다면, 족히 2만에서 3만에 달하는 병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요새와 성을 차지하면서 여러모로 지식을 쌓아올린 그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전력을 다해서 모으는 병력의 수가 3만인데 비해서, 그가 차지한 두 성의 인구수를 합하면 족히 20만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전투인원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단순하 수 자체로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고블린들의 경우 대부분이 전투원이기 때문에 병력 3만이라는 수는 거의 그가 이끄는 부족의 인구수라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물론 20만의 인구중에서 전투가 가능한 이들은 미처 1할이 될까말까 싶은 수라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차지한 인간들의 영역은 전체의 티끌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로서는 전력을 늘이는 것에 신경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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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임 성의 알현실. 대외적으로 성주가 만나는 이들이 오는 장소에 그가 있었다.
"흐음... 자리가 푹신하니 좋구만"
느긋하니 등받이에 등을 파묻은 그는 평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평소와 같이 트레이와 드란이 자리잡고 있었다.
"상당한 희생을 치뤘습니다만... 이정도면 이제 어느정도 안전해졌다 봐도 되겠지요"
드란도 이번 전투는 제법 힘이 들었는지, 살짝 힘이 빠진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트레이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이제야 제대로된 거점을 손에 넣었다는 기분이로군. 그럼 이제, 다음엔 무얼 해야할지를 의논해야 할 차례군"
의자에 깊게 파고들었던 등을 바로세우면서 그는 눈 앞의 트레이와 드란을 바라보았다. 둘은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이 차례로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기세로 다른 인간들에게 처들어가는게 좋지 않으려나? 과거가 자꾸 떠올라서 몸을 좀 사렸는데... 직접 상대해보니 생각보다 별것 아닌 놈들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지. 그리고 지금이라면 우리 전력도 상당히 늘었겠다, 자신감을 가지고 놈들과 붙어봐도 좋지 않을까?"
어깨를 으쓱인 트레이는 눈을 날카로이 빛내면서 연달아서 전투를 벌이기를 주장했다.
"제 생각에는 한동안 우리가 손에 넣은 영역을 손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란은 트레이와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분명히 우리의 전력이 늘어났고, 놈들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는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을 손에 넣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부에 살아남아있는 인간들이 있고, 빈틈이 많아 처들어오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처들어 올 것입니다. 기껏 얻은 거점을 다시 되돌려주긴 아까우니, 이곳을 정비해서 처들어올 적들에 대비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의견도 분명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너무 사리는 모습이 좋지 않았는지, 트레이가 그의 이야기에 딴지를 걸었다.
"이곳을 잃는게 아깝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충분한 전력을 갖추었어. 굳이 이곳을 지키려 할 필요가 있을까? 얻은만큼 미끼로 사용하고 버려도 별 상관 없을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 트레이의 이야기에 드란은 반박하고 나섰다.
"기껏 얻어낸 거점인 만큼, 형님의 말대로 미끼로 쓰고 버려도 좋겠지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이번 전투로 얻은게 많다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잃은게 적은것도 아닙니다.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많은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녀석들인 중급 녀석들의 희생이 특히나 컸습니다"
한번 숨을 고른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단 한번을 위해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요. 이곳을 잘 정비한다면 충분히 처들어오는 적들의 방패가 되어줄게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한번 숨을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냥으로 성장한 녀석들도 많은게 사실입니다만... 아직 그들 대부분이 본인의 힘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내부를 다지면서 잠시 쉬어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으음..."
트레이도 결국 그의 의견에 수긍을 하고 말았다. 내심 적들을 공격하는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드란의 말을 들으면 손해는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그의 의견을 꺾도록 만들었다.
둘의 언쟁이라고 하기도 미묘한 다툼이 끝나자, 그 때까지 가만히 있던 쿠알론이 움직였다.
"그럼 드란의 의견대로 하는게 좋겠군. 그럼 내부를 정비하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당분간은 인간들도 우리를 경계하느라 제대로된 공격도 못할테니까"
그렇게 그 날의 회의는 끝을 맞이했고, 쿠알론의 부족은 잠시동안의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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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영역을 넓히지 않기를 루프스가 결심하고 다음날. 루프스는 성을 함께 온 고블린들에게 잠시 맡겨두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엘라와 엘프들이 만들어놓은 숲으로 이루어진 함정이었다.
그가 그곳에 도착하자, 그동안 그를 기다렸던 것인지 두 고블린과 엘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했군"
그들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루프스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는 요새에서 출발할때, 이미 프리트와 파인피를 요새에 머물도록 지시해뒀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둔 것이다. 그리고 전날, 그는 둘에게 전령을 보냈고 그 때 둘에게 전달된 말이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둘은 그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 이곳 이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놈들의 영역을 하나 또 집어삼키시는데 성공하셨다면서요"
"그래, 그리고 나는 이쯤에서 잠시 확장을 멈췄으면 싶어서 너희를 불렀다. 나 혼자 결정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의견이 듣고 싶었거든"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는지, 프리트도 파인피도 그리고 엘라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 홀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드물었으니, 충분히 예쌍하는 것도 가능 했을 것이다.
긁적 긁적
"그럼 한동안 싸울일은 없다는거 아닙니까?"
파인피는 그 점이 아쉬웠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요새에서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곳도 놈들의 영역인것은 변하지 않으나, 딱히 영역의 주인이라 칭할만한 이가 없었다. 지휘관은 있었지만, 그도 위에서 임명해서 내려온 자. 요새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든 인물이다.
반면 지금 우리가 차지한 성은, 원래의 주인이 있었다. 비록 이번 전투로 목숨을 잃었다고는 하나, 새롭게 주인이 되고 싶은 자들이 나설거고, 그 전력은 요새에 처들어오던 이들의 수배는 되겠지.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싸울일은 많다"
그의 이야기에 수긍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고블린과 한 엘프는 그의 이야기에 수긍했다.
"그래서 어떻게 움직일거지요?"
엘라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본격적으로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그리고 전력을 보강하기 위한 대책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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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잠에 들었던 골렘은, 무슨이유에서인지 다시 깨어났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시 잠에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은 다시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만 두번째로 깨어난 그것은, 처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무 목표도 없이 그저 정처없이 걷기만 하던 과거와는 달리, 명백한 목표를 지닌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골렘을 영토에 들이게 된 왕국에는 큰 재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