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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52화 (252/374)

252화

영역 확장

루프스가 르윅 성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곧 성주가 다스리던 모든 영역을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의 내부는 이미 정리가 끝났지만,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면 아직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요새와 연결된 길목 근방에 있는 마을들도 있었으며, 그 중에는 전투 병력이 남아있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요새를 차지 했을 때 처럼 수송단을 꾸린다면 여러모로 성가신 일이 많아지거나 잘못하면 전멸하는 경우도 생길 정도다.

그래서 루프스와 고블린들은 일단 성의 주변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성주의 영역 모두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주변이라도 정리를 끝내놓아야 성에 자리 잡은 고블린들이 먹을 식량들을 순조롭게 공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의 안에도 밭은 물론이고 근방에 산이 하나 있어, 채집이나 수렵으로 식량을 수급하기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고블린들이 성 안의 모든 인간들을, 하다못해 절반 이상만 죽였었더라면 말이다. 식량을 수월히 구할 수 있었지만, 성에 남아있는 인간들의 수가 고블린들의 수를 압도했다.

성을 차지하면서 벌어진 소동이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많은 수의 인간들이 죽기야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이 고블린들의 수를 압도적으로 뛰어넘고 있었다.

게다가 살아남은 이들은 여러모로 써먹으려는 루프스의 생각으로는 그런 인간들을 굶겨 죽일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성을 차지하고 맨 처음 시행한 일은 요새까지 이어진 가도를 정비하는 일이었다.

///

스스스스

무언가가 풀잎에 스치는 듯한 소리가 나고, 그에 맞추어 산속의 수풀이 넘실넘실 움직였다. 그렇게 풀밭에 숨어있는 이들은 정면을 바라보면서 숨죽이더니, 허름한 목책으로 둘러쌓인 초라한 마을로 들어섰다.

"으으으~"

"아, 왜이렇게 기운없는 소리나 내고 있는거야?"

목책의 입구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는 보초가 그곳에 있었다. 둘 모두 한동안 제대로 된 것을 먹지 못했는지 여러모로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아, 요즘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없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 으으"

그렇게 말하는 그는 확실히 제대로 먹지를 못했는지, 볼이 쏘옥 들어가고 팔다리가 가늘어 보였다.

"쯧, 너만 그러겠냐? 지금 두목 제외하고는 제대로 뭘 먹은 놈들도 별로 없을걸?"

"정말이지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척이 뚝 그쳤냐고?!"

벅벅

보초를 서던 이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짜증을 냈다.

길을 가던 행인의 발길이 뚝 그쳤다고 짜증을 내는 이들은 다름아닌 산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마을이 잘 들어서지 않는 산속 깊은 곳, 어디서 찾아오기도 힘든 장소에 조악한 마을을 짓고 생활하는 이들의 생계 수단이 다름아닌, 행인을 습격해서 돈과 물건을 강탈해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최근들어 그들의 주 무대인 길목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생활이 쪼들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계를 서던 그들은 두런두런 서로 불만을 나누었다. 이런곳에 적들이 올리가 없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듯 보이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초록빛 수풀의 안쪽에서 안광을 빛내는 그들은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단번에 움직이면 금방 목책에 닿을만한 장소에 도착한 그들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수풀에 숨어있던 이들이, 목책 앞의 보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손도끼를 던졌다. 그들이 던진 손도끼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회전하더니, 이야기를 나누던 보초중 한명의 머리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콰직 콰직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타이밍에, 두개의 손도끼가 보초를 서던 두명의 머리를 쪼개 버렸다. 목책의 보초를 서던 두명은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고, 거의 동시에 목책의 문을 쏜살같이 통과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어...?"

문을 통과한 그들은 가까이에 있는 한 명의 목을 날렸고, 그 눈에 띄는 등장은 목책 안에서 느긋하게 잡담을 하던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적이다!"

"이 산속까지 어떻게?!"

그리고 한명이 외치는 소리에 의해서 여기저기서 보이지 않던 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동안, 처들어온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확실하게 그 목숨을 거둬가고 있었다. 그 때, 온 몸을 칭칭 감싸고 있던 천의 모자가 떨어졌고 처들어온 무리들의 모습이 그들의 눈 앞에 드러났다.

"몬스터...?"

"어째서, 이런데 저런 놈들이"

그들은 다름 아닌 성과 요새 사이를 정리하고자 출발한 고블린들의 무리였다. 루프스는 이미 성 내에 있는 인간들 만으로 충분하다며, 밖으로 떠나는 고블린들에게 반항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여도 좋다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산적인 이들이, 기습까지 받은 이상 가만히 항복할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고블린들에게 그냥 항복하는 이들은, 정말로 싸울 수 없는 이들 뿐이라 자포자기한 이들 뿐일 것이다. 애초에 지금까지 이렇다 할 교류는 커녕, 서로 죽자고 싸우기만 했던 고블린들이 항복한다고 살려 줄 것이라고 그들로서는 생각 할 수 없다.

고블린들은 적들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최대한 하나라도 죽이려 했고, 그런 고블린들을 상대하는 산적들도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그렇지만, 산적들로서는 지금 눈 앞의 고블린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과거 한없이 나약하기만 하던 그들이라면 모를까, 많은 실전을 겪어 굳건한 정신에 성장한 육신을 가진 고블린들이 약자를 상대로 한 산적들에게 질 요소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산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이렇다할 반격도 제대로 못 한채로 그저 고블린들의 검과 창, 도끼의 아래에 그 목을 가져다 바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산적들의 두목이 나섰을 때, 어느정도 반항하는 기미가 보이기라도 했지만, 산적두목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이 자리에 모여있는 상급 고블린만 셋. 그리고 기껏 중급 고블린과 비견되는 그로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산채가 그날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무너진 산채들도 셋이나 되었으며, 요새와 성 사이의 길목에 그 어떤 인간들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

루프스의 무리가 요새와 성을 차지했고, 쿠알론이 이끄는 무리가 하나의 성과 그 영역을 차지해갔다. 이런 상황이 되자, 왕국도 그저 주변의 성주들에게만 맡겨둘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고작 고블린들의 공격이니 그들만으로 충분할거라 생각했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입은 피해만 보면 과거 일어났던 군락지의 이변과 비슷하거나 더 큰 피해를 본 상황이다.

왕국의 수도에서도 그저 맡겨두고 잊고 있었지만, 성이 두개나 빼앗기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 일 수 없었다. 하필이면 고블린들 뿐만이 아닌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

요새를 지나서, 쿠알론과 그의 무리가 자리잡은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쿠구구구구

커다란 진동이 울리면서, 갑작스럽게 한 돌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덜덜덜덜

부르르 온몸을 떠는 듯한 움직임으로 그 위에 있던 동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워낙 가파른 곳이라 사람이 찾아가지 않는 곳이었고, 실제로 그 위에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내 흔들리던 산과 같은 그것은 일시에 무너져내리더니 다시 밑에서부터 쌓아올려졌다.

그렇게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사람과 같이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골렘이었고, 간만에 깨어난 것을 과시하듯이 소리없는 포효를 뱉어냈다.

ㅡㅡㅡ

몇년만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그것은 이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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