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영역 확장
르윅 성의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가장 외곽에 외성벽으로 일차적으로 외부의 침입을 막고 있으며, 내성벽까지 많은 가구와 그들의 가계를 꾸리는 시장과 농장 따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는 성문쪽에 있는 경비초소와 치안 유지를 위한 경비병들이 지내는 숙소가 있었다.
그리고 보다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내성벽을 넘으면, 성주의 가신들이 살아가는 주택이 있다. 그리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성주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의 휘하에 있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사는 숙소와 훈련소가 마련되어있는 거대한 성이 나온다.
고블린들이 나타난 곳은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에 있는 민간 거주구역이었고, 그들이 목표로 하고 다가가는 것은 내성벽이었다.
조심스레 움직이는 고블린들은 보통 사람들은 잠에 들어있는 자정을 넘는 시간이었던 덕분에, 간혹 질이 안좋아 보이는 인간들을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소란 피우기 전에 목숨을 취함으로서 비교적 조용히 내성벽의 근처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루프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내성벽이 가까이 보이는 주택의 뒤편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띄엄띄엄 이었지만 확실히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고블린은 지붕의 굴뚝 뒤에 몸을 숨기기도 했으며, 어떤 고블린은 그와 마찬가지로 주택을 이용해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중에는 직접 집의 안으로 들어가 안의 인간들을 제압하고 아예 주택 전체를 차지해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성벽 쪽에는 단 둘뿐인 인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자 루프스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성문을 향해 달려갔고, 그의 뒤를 따라서 나머지 고블린들도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신호가 되었을까, 여기저기서 조용히 몸을 숨겨서 때를 기다리던 고블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잠자리에 들었던 르윅 성주는, 타의에 의해서 잠에서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으음..."
긁적 긁적
피곤함에 절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깨어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잠들기 전과 별다를 바 없는 풍경의 방이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꾸웅-
으아아- 적...어... 왔...
성주는 순간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방에 얕은 달빛만이 슬쩍 들어올 뿐, 여전히 어두운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그가 잠든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치 대낮과 같이 소란스러운 소리는 그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렇게 그가 아직 잠기운이 남아있는지 상황파악을 못하던 그 때.
벌컥! 쿵!
문이 요란스럽게 열리고 그곳으로부터 한 인영이 그의 침실로 들어섰다.
"성주님! 깨어나 계셨군요! 얼른 대피하십시오! 고블린들이 처들어왔습니다!"
순간적으로 누군지 못알아보았으나, 그는 분명히 바로 몇일전 새롭게 그의 호위기사가 된 이였다. 전임자가 고블린들과의 전투에서 앞장서다가 목숨을 잃은 뒤 새롭게 임명된 이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고블린들이 처들어왔다 하니 성주로서는 아직도 꿈에서 해매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님! 정신차리십시오! 얼른 대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내성의 병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외성의 병사들이 올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몸을 피하셔서라도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성주가 계속 움직이지 않자 그는 답답해졌는지, 얼른 그가 움직여주기를 재촉했다.
그때서야 대경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성주는 그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었다.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그는 빠르게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집무실의 안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두 부인은 물론이고, 아들 하나와 딸 둘, 그들의 자식인 손자들도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잠옷차림인 것이 다급하게 움직인 티가 났다.
성주는 빠르게 움직였다. 얼른 움직이지 않으면 지금 성으로 처들어온 고블린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으리라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책장에 다가선 그는 몇권의 책을 반쯤 빼고는, 벽의 장식과 책상 위의 장식을 건들더니 마지막으로 책상 서랍의 손잡이를 돌렸다.
쿠구구구궁
그에 맞춰서 숨겨진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집무실의 귀퉁이에 있는 바닥이 밀려서 열리더니, 버젓이 통로가 드러난 것이다. 탈출구가 생기자 방안의 모두가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위험한 장소에서 벗어나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걱-
탈출구로 다가가던 그들은 갑작스럽게 섬뜩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그들의 공포감을 부추겼고, 그들은 더 빨리 도망치려 했다. 다시 들려온 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서걱- 서걱- 서걱- 퍽!
무언가가 날카로운것에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타격음이 연달아서 들려왔다. 소리 하나 하나가 순차적으로 가까운 장소에서 들려오자, 탈출구를 눈 앞에 두고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공포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에 무슨 일이 벌어진것인지 알아야 겠다는 호기심이 성주와 그의 가족들의 고개를 돌리도록 만들었다.
"꺄아아아악!"
"으아, 으아아악!"
"귀... 귀신?!"
뒤를 돌아본 그들은 깜짝 놀라는 태도를 취했다. 바닥에는 그들의 호위를 위해 뒤따르던 기사들의 몸뚱이와 그들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마지막에 들린 소리가 착각이 아니라는 듯이 한 기사는 머리에 도끼를 박고는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의 시체 한 가운데에는 검은 피부에, 어지간한 거구의 인간들보다도 큰 덩치를 지니고 뾰족한 귀와 코에 째진 눈을 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잇는 고블린의 모습이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성주의 가족들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단 둘은 침음성을 흘려야만 했다.
다름아닌 성주와 그를 구하러 달려갔던 그의 아들이었다. 둘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다름아닌 그가 직접 상대해야 했던 고블린들의 대장임을 이미 한차례 눈에 담은 적이 있기에 알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고블린들과는 다른 그의 모습이 더욱 그의 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성주는 허탈한 한숨을 쉬면서 도주하기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가 이곳에 없었다면 모를까, 그를 눈 앞에 두고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칠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그 자리에 서 있던 고블린, 루프스는 걸음을 옮겼다. 자신감에 차있는 느긋한 발걸음이었다. 그는 멍하니, 자지러지면서 서있고 쓰러진 인간들, 성주의 가족들을 지나치고는 성주의 눈 앞에 몇일만에 다시 서게 되엇다.
"허... 허... 허..."
성주는 그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고, 루프스는 굳이 그의 태도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아귀에 쥐고 있는, 방금 기사의 머리통에서 뽑아낸 도끼를 조용히 들어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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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해가 떠오르자, 르윅 성은 그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본래의 주인이었던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종족인 고블린의 손에 떨어졌다.
고블린들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은 인간들은 그 사실을 해가 떠오른 뒤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웃중 몇은 더 이상 모습을 비추지 못하는 것에 소름까지 돋았다.
성의 주민들은 내성벽의 입구에 매달려있는 성주의 목을 보았을 때, 반항하고자 하는 생각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그들도 성주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을 뚫고 성주의 목을 얻어내고 성까지 빼앗은 고블린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들도 고분고분 따르는 주민들을 건드리는 경우는 없었다. 간혹 지인의 죽음으로 발광하듯이 반항하는 이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런 이들만이 고블린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뿐이었다.
그렇게 르윅 성은 온전히 루프스와 그가 이끄는 고블린들의 손에 완전히 들어오게 되었다.